아이 영재원의 여름캠프 마지막 날...
영재원 아이들 모두 뮤지컬 '모짜르트'를 보는 일정이었다.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다 해서
나는 끝날 때까지 로비에서 책 읽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뮤지컬을 보러 공연장으로 들어갔던 아이가
인터미션이 끝난 직후 담당 선생님들과 웬 남자아이와 함께 로비로 나왔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운듯 아이 눈이 부어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좌석때문에 한 남자아이와 신경전이 있었더랬다.
그 아이가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앉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내 아이가 가위바위보로 좌석을 정하자고도 제안했으나
그 아이가 듣지도 않고 자기 주장만 하는 것을 나도 보고 들었던 터였다.
로비에서 바로 내 가까이에서 벌어진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아이는 공정한 방법을 제안한 내 아이에게 욕까지 해서
화가 난 아이는 분한 마음을 삭이느라 눈물까지 글썽거렸었다.
일단 무사히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해야 겠기에
그러면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고,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에 말이 오가는 것 같았고,
아이는 조금은 나아진 얼굴로 공연장에 들어갔었다.
그랬던 아이가 한 시간 반만에 가슴 철렁한 얼굴로 나온 것이다.
선생님과 아이 둘의 말을 다 들어보니...
좌석을 선생님이 지정해 주셨는데, 하필 아까 신경전 벌인 아이가 내 아이의 바로 옆자리였단다.
자리에 앉고나서도 팔걸이에 팔을 올려놓는 문제로 계속 서로 툭툭 치다가
그 아이가 주먹으로 내 아이의 입을 가격했다는 것...
머리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세게 맞아서 아이가 손을 들어 선생님을 불렀고,
선생님이 내 아이와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뮤지컬 시작 직전의 일이었다는데,
한 시간 반 후에야 나온 것이다.
선생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나서 손을 내린 아이 입 주변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떨어지며 '어떡해...어떡해...'하는 말만 되풀이했다.
손이 바르르 떨려서 얼마만큼 다쳤는지 만져보기도 어려웠다.
윗입술이 거의 코에 닿을 정도로 부어있었고 입술에 터진 상처가 있었다.
입술도 문제지만 그 순간 걱정되는 것이 치아였다.
아이는 지금은 입술이 아파서 이가 아픈지 안 아픈지는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다쳤으면 뮤지컬이고 뭐고 바로 나와서 병원에 갔어야 하는 것 아닌지...
아마 선생님이나 때린 그 아이는 내 아이가 그 정도로 다친 것은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다가 시간이 가면서 입술이 겁나게 부어오르고 내 아이가 아프다고 하니
그제서야 내게 연락을 한 것으로 보였다.
나는 계속 손을 떨면서... 울면서... 병원에 가야 겠다고만 말했다.
시내 한복판이니 주변에 치과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아 아이를 데리고 선생님과 치과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가까이에서 치과를 찾아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입술은 꿰맬 정도는 아니라고 했고, 붓기도 약 먹고 시간 지나면서 차츰 가라앉을 거라고 했다.
X-ray를 찍어 본 결과 치아는 지금은 괜찮단다.
그러나 신경에 손상이 가도 금방 나타나지 않고 시간이 흐른 후에 나타나기 때문에
지켜보아야 한다고 했다...ㅠㅠ
일단 한동안 단단한 것 씹게 하지 말고 지켜 보라고...ㅠㅠ
치과에서는 입술의 상처에 소독만 하고 나왔고, 의사의 말에 따라 약국에서 진통소염제를 사서 먹였다.
너무 놀란 탓에 계속 떨고 있는 내가 걱정스러운지 선생님께서 우황청심원액을 사서 주셨다.
많이 놀랐을 거라며 아이에게도 사서 주고는 그 자리에서 먹게 하셨다.
확실히 우황청심원이 효과가 있는지 마음이 좀 진정되고 나니
영재원 생활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날에 이런 일이 생겨서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내게 선생님께서는 잘 관리하지 못해서 오히려 죄송하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내 앞에서 자기가 때릴 만한 근거가 있다고 말했던 그 아이...
세상에 그 어떤 이유도 때릴 만한 이유는 없다고 정색을 하며 쏘아붙였던 나...
어린이하고 나눌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그 아이 보호자를 찾으니,
이 곳 공연장에도 아이 혼자 왔고 집에도 혼자 가야 한단다.
그 아이가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그 부모님도 아셔야 한다고,
그래야 이후에 다시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가정에서도 지도하지 않겠느냐고 선생님께 말했다.
그리고 부모님과 그 아이로부터 미안하다는 말도 들어야 겠다고,
그래야 나중에 영재원에서 마주쳐도 남은 감정이 없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그 아이도, 내 아이도 아직 한 학기 동안 영재원에서 계속 보게 될 테니 말이다.
제대로 된 사과는 이래서 필요한 거다.
우리가 치과에 다녀온 동안 그 아이는
뮤지컬 마저 보는 것을 포기하고 로비에서 다른 담당선생님과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아이가 가정 상황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욱 하는 기분에 사고를 쳤다는 것이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나는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그 아이를 지지해 줄 보호자도 한 명 없는 상황에서 그 아이를 나무랄 수도 없는 일.
나도 엄마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남의 집 귀한 아이에게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 아이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에 위축된 상태였다.
어쨌거나 그 아이와 우리는 서로 화해를 했고,
나는 앞으로 다투지 말고 잘 지내라, 똑똑한 아이들이 이러면 안 된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그렇게 공연장을 나선 것이 퇴근시각 무렵...
전철에서 퇴근인파에 끼어 갈 걱정에, 그리고 아직 남은 가슴 벌렁거림도 진정시킬 겸
가까이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조금 있다가 가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그 아이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가 때려서 다쳤다고 하는데 괜찮느냐고...
나라면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올 것 같은데, 그 아버지는 한참 동안 그 말을 안 한다. 헐...
그래서 나도 평소에 안 하는 말까지 해 버렸다.
우리 집에 하나뿐인 아이라 나름 귀한 아이인데 이런 일을 당해서 무척 당황스럽다고...
영재원에서 한 학기 동안 계속 봐야 할 텐데 앞으로 이런 일 또 생기지 않도록 가정에서 잘 이야기하라고...
집에서 잘 단속하겠다고 하고 끊기는 했는데, 그 아버지의 말투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느낌...
게다가 병원비 이야기는 전혀 없다. 뭐지, 이거...?
병원비랑 약값, 다 선생님이 내셨는데 이 아버지 싹 다 모른 척하는 걸까...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에잇, 이런 기분까지 맛 보아야 하다니...
다행히 영재원의 바뀐 2학기의 조에 그 아이와 같은 조는 아니다.
그리고 영재원에서의 조별 좌석도 그 아이와 가까이 있지 않도록 떨어뜨려 놓겠다고 선생님이 먼저 말하셨다.
아이에게도 이번 일을 통해 배울 게 있다고 이야기했다.
저렇게 거친 아이들은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고...
사람들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고,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지...
다음부터는 처음부터 아예 가까이에 있지 말라고...
너처럼 공격적이지 않고 반듯한 애들도 있으니 그런 아이들하고 가까이 지내라고...
그리고 다쳤으면 바로 병원에 가야 겠다고 선생님께 말하라고 했다.
네가 괜찮은 것인지는 의사가 보고 판단할 문제니
선생님이 괜찮아 보인다고 해도 병원에 가겠다고 말해야 한다고 일러두었다.
오늘도 아예 처음에 데리고 나왔으면 바로 병원에 갔을 것이고,
그때부터 얼음찜질이라도 했으면 그렇게까지 붓고 아프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원래는 뮤지컬 관람 후에 주변에서 저녁도 사 먹고 돌아올 계획이었는데,
다 틀어져 버렸다.
아이나 나나 뭘 먹어도 맛을 느낄 기분도 아니었고,
아이는 치아 때문에 부드러운 것만 먹여할 상황이어서 집으로 왔다.
현미는 꼭꼭 씹어야 해서 현미를 넣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갈 백미로만 밥을 해서 저녁부터 먹였다.
천천히 조금씩 먹고 어금니로만 씹으라고 하고 나도 밥을 먹는데,
목이 따끔따끔하면서 밥이 목에 탁 걸려서 안 넘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안 그러면 내가 드러눕게 생겨서 씹지도 않고 대충 밥 공기를 비웠다.
다행히 아이는 입맛은 그대로라고 했다.
다시 약도 먹이고 입술에 얼음찜질도 하고 하니 통증이나 붓기 모두 덜해진 것 같았다.
혹시 밤중에 아이가 놀라서 깨기라도 할까봐 우황청심원액 반 병은 잘 보이는 자리에 두었다.
아까 마신 우황청심원의 약효가 떨어지는지 내가 다시 불안해 보인다면서
오늘 잠 못 주무실 것 같다며 나를 걱정하던 아이...
큰일 겪은 하루에 대한 위안으로 단잠은 허락해 주시면 좋겠다.
아까 병원에서는 아이가 진료받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제발 다치지 않았기를, 아이에게 올 모든 안 좋은 것들은 다 내게 주시기를 기도했다.
조금 전에 자려고 누운 아이에게는
자고 일어나면 입술 아픈 것도 다 없어지고 부은 것도 다 가라앉고 싹 나아 있을 거라고 말했다.
정말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런 것이 엄마 마음이지 싶다.
내 아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 슬프고 분한 마음도 있지만 다 접어두고
아이의 한 발 앞만 바라보게 되는 것,
지금은 이럴 지라도 아이의 한 발 앞부터는 내내 평탄하기를 기도하는 것,
이게 엄마 마음이다.
나는 어젯밤 내가 꾸었던 그 재수없는 꿈이 아이에게 현실로 나타난 것 같아
그 죄책감때문에 실은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다.
나 때문이라는 생각...ㅠㅠ
이래서 나는 아무 꿈도 꾸지 않는 것이 좋다.
꿈을 꾸는 것이 두려워서 잠을 자고 싶지 않은 밤도 있다.
오늘 밤은 이러저러한 생각들로 쉽게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긴 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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