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수다

'10개'에 대한 사색.

블랙커피원샷 2015. 9. 3. 14:22

 

  집 가까이에 공산품부터 시작해서, 고기, 채소, 과일 등을 파는 제법 큰 마트가 있다. 물론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형마트와 비교할 때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고 가까이에 있어서 오히려 대형마트보다 더 자주 들르는 곳이다. 나는 여기의 과일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과일을 자주 산다. 오늘도 지나는 길에 들렀다가 홍로를 산처럼 쌓아놓은 것을 보게 되었는데... 10개씩 판단다, 10개... 왜 10개냐구...

  지난 번에 역시 10개씩 파는 참외를 큰 맘 먹고 샀다가 끝까지 남은 3개 중에서 2개는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믿을 수 없어서 속 다 긁어내고 간신히 먹고, 1개는 끝내 버려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 아무리 욕심 나도 그렇게 많이씩 파는 것에는 손을 뻗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사과다. 사과라니... 아이도 나도 제일 좋아하는 과일, 게다가 요즘은 홍로의 철이 막 시작되는 때가 아닌가. 빨간 사과는 마녀가 내밀어도 속아주며 받아먹고 싶을 정도로 색도, 향도 좋았다. 다행히 크기가 그리 크지 않으니 저녁마다 1개씩 먹으면 금방 먹겠지 하는 생각으로 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꼭지 부분의 향을 맡아보고 사과를 고르는 나의 취향은 역시 주위의 시선을 끌고... 그러나 그 방법이 제일 정확한 걸 어쩌랴...

  계산을 하고 나와 막 시장을 벗어나다 보니, 입구의 과일가게에서 내가 산 사과보다 한참 더 큰 사과를 같은 가격에 팔고 있다. 게다가 거기는 더 적은 갯수를 사도 된다. 이런... 이럴 때 나의 선택은 '안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선택했으니까... 선택한 것을 후회하는 것보다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보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훨씬 이롭다고 생각하므로 나는 과일가게를 유유히 지나쳐 올 수 있었다. 이미 선택해서 산 사과를 맛있게 먹으면 선택하지 않은 그 사과가 아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지 않은 그 사과는 오늘 산 사과를 다 먹고 사면 되는 것이고.

  역시 시간이 여유있으니 생각을 깊이있게 하게 된다. 접시에서 고일 새 없는 1cm 깊이 물만 푸는 게 그 동안의 일상이었다면, 이제는 우물물을 길을 수 있고 고인 물에 나를 들여다 볼 여유가 생겼다. 요즘의 생활 중에서 가장 좋은 점이다. 그래서 해봤다, '10개'에 대한 사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