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수다

토르티야 30장 구운 이유

블랙커피원샷 2016. 2. 29. 17:30

 

 

 

  느즈막히 일어나 아점 먹고 지금까지 한 일이 only 토르티야 굽기라니...@@;; 엊그제는 일명 '만물상세제'를 만들고는 그 성능에 신이 나서 여기 닦고 저기 닦고 하더니(만물상세제의 엄청난 폐해다!!! 기적같이 잘 닦이는 걸 보면 자꾸자꾸 청소하고 싶어진다!), 오늘은 어쩌다 박력분이 눈에 들어와 지금까지 토르티야를 구웠다.

  몇 년 된 것 같다, 치즈쿠키 구워 먹는다고 산 박력분 1kg... 치즈쿠키는 딱 두 번 구워 먹었고, 그 이후 박력분은 꽁꽁 싸매어진 채 싱크대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과자를 구워 먹으려면 일을 크게 벌여야 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저 박력분을 어떻게든 써야지...'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박력분으로 토르티야 만드는 레시피를 봤다. 재료도 간단했다. 박력분, 물, 소금만 있으면 된다니... 그걸 오늘 실행한 것이다. 해보고 안 되면 버리지 하는 마음으로...ㅎㅎㅎ 함정은, 얇게 하려고 반죽을 묽게 했더니 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점...ㅠㅠ

  박력분 1kg쯤을 다 써서 토르티야 30장 정도를 구웠다. 굽는 와중에 점심시간이 걸쳐져 있어서 집에 있는 재료만 가지고 오랜만에 토르티야롤도 만들어 먹었다. 재작년에 아이 영재원 간식으로 거의 매주 토요일 아침에 만들었던 것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들려니 생소했다. 작게 썬 사보이양배추, 기름 뺀 캔 참치를 토르티야 위에 김밥 속 넣듯 펼치고, 그 위에 홀그레인 머스타드를 쭉 뿌리고, 김밥 말듯 토르티야를 돌돌 말아 유산지로 싸면 끝. 토마토가 들어가면 좀 더 산뜻한 맛일 텐데 아쉽게도 토마토가 집에 없었다. 토마토 잘 안 먹는 아이도 토르티야롤에 들어간 토마토는 먹는데... 이제 토르티야를 이렇게 많이 만들어놓았으니 토마토도 좀 사 놓아야겠다. 올해도 주말에 아이가 영재원에 갈 테니 토르티야롤 자주 만들어 먹어야지~. 구워놓은 토르티야는 냉동 보관하며 두고 먹으면 된다고 하니, 하루 꼬박 서 있었지만 든든하다.

  심란할 때 일로 도망가는 건 여전한가 보다. 아까 딱 저 윗줄까지 써서 입력해 놓고 '내가 오늘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박력분을 꼭 오늘 해결해야 하는 건 아니었는데... 아이의 생활기록부 때문인 것 같다. 담임선생님의 종합의견이 입력된 작년의 생활기록부, 결재가 끝났는지 이제야 열람할 수 있게 되었기에 어젯밤에 나이스에 들어가서 보는데... 이제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속이 부글부글했다. 편견 가득한 선생님의 관점으로 쓴 내용이 불편한 건 둘째치고, 띄어쓰기와 맞춤법 틀린 곳이 왜 그리 많은지... 30년 정도 교직생활했다고 나한테 자랑하더니 그 동안 쓴 생활기록부가 1,000개에 육박할 텐데, 조사는 무조건 붙여 쓴다는 상식을 아직도 모르나... 정말 화 나는 건 아이가 교육청 대회에서 수상한 탐구보고서 제목을 틀리게 써 놓은 것이다. 아이가 직접 적어서 냈고, 선생님이 확인 요청 해 왔을 때 또박또박 다시 읽어드리기까지 했다는데 잘못 입력해 놓았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안 맞아서 어색한 문장, 앞뒤 내용이 안 맞는 문장도 많이 거슬렸다. 차라리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일관되게 쓰지, 앞에서는 못 한다고 했다가 뒤에 가서는 잘 한다고 쓴 문장은 도대체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담임선생님에게야 30개의 생활기록부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소중한 공문서인데, 이렇게 엉망으로 입력해 놓은 걸 보자니 정말 교사로서의 자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생활기록부가 교사 개인의 감정풀이 하라고 있는 것은 아닌데, 그런 생각으로 30여 년 교직생활을 해 온 건지...

  다른 건 몰라도 아이의 탐구보고서 제목은 새 학년 담임선생님에게 정정 요청할 생각이다. 아이의 진로에 관련된 것이라서... 4기 방과후학교 수료한 내용이 빠졌는데 그것도 입력해 달라고 해야겠다. 나머지는 말해 봐야 학부모의 부당한 간섭으로 치부해서 학교에서 정정해 주지 않을 것 같다. 속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생활기록부를 읽는 사람이 조금만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담임선생님이 비상식적이구나' 알 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기도 하다. 띄어쓰기, 맞춤법, 이해불가의 문장들투성이라... 복수는 하나님의 몫이라 생각하지만,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엄마 입장에서의 뒷수습은 해야 할 것 같다. 내 선에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머리좀 써 봐야 겠다. 이런 일에 머리를 쓰고 싶진 않은데...

  처음부터 안 맞은 사람은 끝까지 안 맞는다는 나의 선입견에 확인도장 확실하게 찍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