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들

새로운 시작

블랙커피원샷 2016. 3. 27. 17:16

 아이의 서울대 영재원 수업이 시작되었다. 입학식을 한 날 분과별로 오리엔테이션을 했고, 어제까지 벌써 두 번이나 수업을 했다.

 아이가 영재원에 가는 날 나는 뭘 해야 할까가 3월초 나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지금껏 아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 적은 아이의 수학여행 때말고는 없었기에 갑자기 툭 떨어진 토요일의 긴 시간이 정말 황망했다. 아침에 서울대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 왔다가 수업 후에 다시 데리러 가자니 길에 버리는 시간이 아깝고, 혼자 다니라고 하기에는 명분이 없었다. 내가 그 날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아이 혼자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다. 혼자 시간을 보낼 용기가 없기도 했다.

 최고의 답은 아이가 주겠구나 싶어 의견을 물어 본 결과, 영재원에 오가는 길에는 같이 다니면 좋겠단다. 작년에 학교에서 체험학습 나갈 때마다 혼자서 낯선 장소에서 그 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아픔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기에 무조건 전적으로 아이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영재원 수업이 있는 토요일은 5분 대기조로 쓰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아침에 아이랑 서울대학교에 같이 가서 수업 있는 건물 앞까지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는 중앙도서관에 가서 내 할 일 하고, 수업 끝나면 만나서 같이 오는 걸로 영재원 수업 있는 토요일의 스케쥴을 정리했다. 점심은, 아이가 같은 분과 친구들과 어울려 먹게 되면 그렇게 하는 걸로,(이것이 아이를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이니까...) 그러나 만약 아이 혼자 먹어야 할 상황이면 나한테 연락해서 같이 먹는 걸로 결정했다. 어차피 나는 아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는 중앙도서관에 있을 것이니까... 그러면 그 날의 어느 순간에도 아이 혼자 외로움을 느낄 때는 없을 것이라는 게 나의 계산이다. 돌발적으로 생기는 상황에는 그때 그때 대처하기로...

 이러다 보니 한 달에 두세 번, 집 밖에서, 그것도 오랜만에 '대학교'라는 장소에서 혼자 보내야 하는 토요일 하루 긴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집에 있으면 쉰다는 명분 아래 빈둥거리며 흘려보낼 시간이라 지금의 결정에 대해 후회는 없다. 5분 대기조로 아이 가까이에 있다가 아이가 필요로 할 때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게 나도 마음 편하고, 아이가 공부하는 시간 동안 나도 밀린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 아이 보기에도 떳떳하고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이 시간을 헛되지 않게 보낸다면 1년 동안 나도 뭔가 하나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이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은 셈...ㅎㅎㅎ

 수업 첫날에는 아이가 오전 수업을 하는 동안 식당들의 위치도 파악하고 지리를 익히려고 학교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오랜만에 대학교 캠퍼스를 걷자니 기분이 묘했다. 다시 20살로 돌아간 기분이랄까... 작년에 했던 드라마 '두 번째 스무 살'에서 하노라(최지우)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이제야 알겠더라는... 그때 그 드라마를 보면서는, 내가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무런 일렁거림도 없을 것 같았는데, 아마 그 때는 '남의 일'로 봐서 그랬나 보다. '나의 일'로 현실화되고 보니 걷다가 자주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생각이 많아져서... 아,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면 일을 못 하는데...

 어찌 되었건 대학교에서 사 계절을 보낼 기회가 생겼으니,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일단 여기에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었다. 그러면 뭐라도 남기겠지 하는 강제적 의무감 부여의 의미가 있다...ㅎㅎㅎ 여기에 어떤 것들이 담길지 아직은 모르겠다. 엄청난 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제 인생을 충실히 사는 시간 동안 나도 나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겠다는 다짐은 하고 있다. 이러면서 나도 자라겠지... 잘 하면 여기에 나의 성장의 과정도 담길 듯하다...ㅎ

어쨌든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