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환절기라 찾아온 알러지 증상에 감기몸살 기운까지 겹쳐서 이번 주 내내 골골거리는 중이다. 주중엔 시간 내기 어렵고 병원에 가는 것도 귀찮아 그저 자는 게 약이다 하면서 가지고 있는 약 먹고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참을 수 없는 기침에 목소리가 안 나오기 시작하니 슬슬 걱정이 되던 중이었다. 주말까지 버틸 수 있을까... 왜 내 인생에는 이렇게 버텨야 하는 시간이 많은 걸까...
그러던 차에 아이가 오늘 방과후에 전화를 했다, 콧물이 쏟아진다고...ㅠㅠ 내 몸 아픈 것은 그냥저냥 버티겠는데, 아이가 아프다고 하니 바로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뭔지... '깊이 생각하지 말자. 아이 진료 받으러 가는 길에 나도 진료 받으면 겸사겸사 좋지,뭐...'하고는 서둘러서 퇴근했다. 한번도 뒤 돌아보지 않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칼퇴근을 했다는... 왜냐면 6시까지만 진료하는 우리의 단골 이비인후과에 가야 하니까...
전철까지는 괜찮았는데, 버스를 갈아타려니 무려 11분을 기다려야 한단다...헉... 플랜B인 다른 버스도 9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이런 날을 대비해서 플랜C도 짜 둘 걸 그랬다는 생각, 오늘에야 했다. 교통이 안 좋아서 아마도 플랜C는 '걸어간다'가 될 것 같은데...ㅠㅠ
다행히 아이는 감기가 아니고 알러지성 비염 증상이란다. 요즘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고 하더니 인간 센서가 따로 없다, 바로 탈이 나다니...ㅠㅠ 나는 여러 가지 증상이 복합적이라 약도 여러 개... 그 중에 소염제도 들어있는 걸 보니 목에 문제가 있긴 한가 보다. 흑... 워낙 오래 본 의사선생님이라 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묻지도 않았다는...
사실 병원에 내 정신으로 간 것 같지가 않다. 병원에 가기 전... 막 하교한 아이 말이, 4월초쯤에 하는 걸로 생각하고 참가하려고 계획하고 있던 과학 관련 대회가 내일이 마감이란다. 순간 정신이 붕~ 이탈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아무런 안내도 없었는데... 교육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고 내가 챙겼어야 했는데... 아, 어떡하나...'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둥실둥실 머리속에 떠다녔다. 도대체 이 학교는 아이들의 진로를 막자고 있는 것인지, 교육청에서 분명 공문을 받았을 텐데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 이제야 교육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3월 중순에 이미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누굴 탓하랴. 내 탓도 크다. 매일 들어가서 보고 챙겼어야 했는데, 아이 영재원에, 아이 입시 준비에, 내 일까지 하느라 정신을 어디에 빼놓고 있었나 보다. 이제 어쩌지, 하는 생각에 반쯤 멍한 상태로 병원에 가서 진료 받고 약국에 들러 약 사가지고 왔다.
그러나 어차피 물 건너간 것이면 포기는 빠를수록 정신건강에 좋은 법. 어차피 그 대회에서 상 받아봤자 입시에는 쓸 수 없으므로 지금까지 준비된 것들을 토대로 실질적인 입시 준비에 더 신경 쓰고, 영재원에서의 연구에 더 충실하자고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사실 아이가 별로 흥미있어 하는 분야가 아니기도 했다. 작년에 그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것은 정말 어찌어찌하다가 그리 되었던 것이고... 지금 우리에게는 그 대회보다 당면한 입시가 더 중요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꼭 여우의 신 포도 같다. 아이, 셔...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몇 번 쉬었는지, 아이가 "오늘 왜 이렇게 한숨을 쉬세요?" 묻기까지 했다. 자의에 의한 포기가 아닌, 강제 포기하는 마음이 그다지 좋을 리 있겠는가. 어찌할 수 없으니 그저 내려놓을 뿐이지...
수요일만 지나면 일주일이 금방 간다. 이번 주까지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한 것들이 여러 개 있는데, 그것만이라도 최선의 성과물이 나올 수 있게 약 먹고 기운 내야 겠다. 결과는 하나님의 몫임을 잘 알고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나는 나의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새 힘과 지혜 주시길 간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