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수다

박지원의 <연암집> 중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가 떠오른 아침.

블랙커피원샷 2016. 7. 5. 15:53

 아침에 세찬 빗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창 밖을 보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굵은 빗줄기가 한가득 퍼부어지고 있었다. 마치 위에서 누가 물로 된 창을 입추의 여지가 없게 빽빽하게 내리꽂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심란해서 창을 닫아버렸다. 안 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출근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는 동안에도 빗소리는 계속 같은 강도로 나고 있었다, 1시간이 넘도록... '도대체 비가 얼마나 많이 내리는 걸까?' 생각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예 흠뻑 젖을 각오를 하고 스포츠샌들을 신고 바지도 밑단을 넓게 한 단 접어올렸는데, 어라... 밖에 나와 보니 비는 보슬비 수준이었다. 아마 베란다 옆의 배수관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빗물이 배수관을 울리면서 그렇게 큰 소리를 냈나 보다. 폭포수 소리가 났었는데...

 어이 없어 하면서 출근하는데, 문득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라는 글이 생각났다. 딱 지금 상황에 들어맞는 이야기이다.

조금만 옮겨 보자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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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나는 깊은 밤에 강을 아홉 번이나 건넜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중략> 깊고 지극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지금 내 마부는 말에 밟혀서 뒷수레에 실려 있다. 그래서 결국 말의 재갈을 풀어주고 강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지만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

 옛날 우임금이 강을 건너는데, 황룡이 배를 등에 짊어져서 몹시 위험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한 판단이 먼저 마음속에 뚜렷해지자 용이든 지렁이든 눈앞의 크고 작은 것에 개의치 않게 되었다.

 소리와 빛은 외물이다. 외물은 언제나 귀와 눈에 누가 되어 사람들이 보고 듣는 바른 길을 잃어버리도록 한다. 하물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 험난하고 위험하기가 강물보다 더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병통이 됨에 있어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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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앞 부분의 내용은, 밤에 강을 건널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큰 강물 소리만 듣고 머릿속으로 과장되게 상상을 하게 되어서 그 무서움이 더했다는 이야기와 낮에 강을 건널 때에는 눈에 보이는 세찬 강물 때문에 공포감이 더해 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낮이건 밤이건 강물의 실제 본질은 상관없이 보고 듣는 것이 판단을 좌우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들이 본질 그 자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정말 그럴까?

 나의 눈과 귀를 믿지 말고, 본질을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울러 눈과 귀로 입력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힘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