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투병일기2
정확한 병명이 나왔으니 제목도 바꿔야겠다, '팔 투병일기'라고.
8월말, 예약해두었던 오른쪽 어깨와 팔의 각종 검사 끝에
어깨충돌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X-ray를 다양하게 자세를 바꿔가면서 20장은 찍은 것 같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찍은 양만큼을 하루에 다 찍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
한번에 이렇게 많이 찍어도 되나 조금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만큼 정확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가지게 되었다.
초음파를 하면서는 기기를 어깨와 팔에 문지르던 담당 선생님이
자기도 모르게 "어휴, 굉장히 말랐네요." 하는 바람에 약간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앓는 몇 달 동안 오른쪽 팔을 거의 쓰지 않아 근육이 다 빠져 버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남이 확인해 준 셈이니...
힘 쓰는 일을 주로 오른쪽 팔로 했기에 평소 오른쪽 팔이 왼쪽보다 더 굵었는데
오른쪽 팔이 아픈지 3달쯤 지났을 때 만져보니
단단한 느낌이 하나도 없고 왼쪽보다 가늘어져 있었다.
무슨 근육이 붙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더니 겨우 몇 달만에 다 빠지는지...ㅠㅠ
X-ray와 초음파만 하는 데 오후를 다 보낸 우울한 날이었다.
처음에 큰병원에 갔을 때
운동치료가 제일 중요하니 다음 진료 때까지 하루 2회씩은 하고 오라는 말을 들었는데,
2회는 무슨...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하루 1회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의사가 기대했던 만큼 호전되지 않아서
약도 진통소염제로 바꾸고 어깨에 연골주사를 2대 맞았다.
진료 전에 직장에서 동료로부터 연골주사에 대해 들었는데,
뼈와 뼈 사이에 정확하게 놓아야 하는 주사라서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고
맞을 때 무척 아프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걸 내가 2대나 맞아야 한다니 주사실 앞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사실 조명을 다 끄고 어깨에만 불빛을 비추고 어깨 주변을 다 드러낸 상태에서
어깨의 뼈와 뼈가 최대한 벌어질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한 채
어깨의 앞과 뒷쪽에 주사를 맞는데...
의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간호사가,
운동 치료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서 주사를 맞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증상이 호전되려면 하루에 3회는 운동 치료 해야 한다고...
주사는 주사액이 다 들어갈 동안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이 좀 긴장되었지,
못 참을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다.
그 직장 동료의 말은 허풍이었나 보다.
그러나 '내가 다음 진료 때까지 운동 치료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이 주사를 또 맞아야겠구나.'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쌌다. 그 비싼 주사를 2대나 맞다니...ㅠㅠ
검사 결과, 뼈에 이상 없고 힘줄도 파열된 곳 없고 괜찮단다.
의사는 힘줄이 파열되었을 것을 더 염려한 듯했다. 그러면 수술해야 한다고...
나는 근육이 굳어서 나타나는 증상이란다.
수술은 안 해도 된다니 기뻐해야 할런지...흠.
해결 방법은
진통소염제로 통증을 줄인 상태에서 운동 치료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단다.
그 날 이후 하루 3회까지는 못해도 2회는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운동 치료는 총 6가지 코스의 팔 운동인데,
매뉴얼에는 총 20분이 걸린다고 나와있지만
아픈 근육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거라 통증 때문에 중간중간 쉬었다 하기도 해서
실제로는 최소한 30분 이상이 걸리니 하루 2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운동을 하고나면 통증이 더 심해진다는 것도 하루 2회 운동하기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다.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안 하고 운동만 하는 그 시간을 내가 못 참는다는 게 제일 문제.
그래도 다음 진료 때까지 운동 치료에 매진해서
오른팔의 운동범위를 최대한 늘여서 가는 게 지금의 목표다.
이제는 평소에 약 먹는 걸 잊어버릴 때가 많을 정도로 통증이 많이 줄었고,
오른팔의 운동범위도 전보다는 많이 늘었다.
몇몇 동작이 안 된다는 게 아직 문제인데,
앞으로 꾸준히 운동하면 해결될 거라고 믿고 있다,
뭐든 잃고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건 여전한가 보다.
오른팔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내가 그동안 오른팔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는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른팔에 힘을 주지 못하니 단단한 것을 써는 일조차 하지 못해
여름 이후로 무, 콜라비, 감자 등을 아예 사지 않았는데,
바로 얼마 전 용기를 내어 감자를 샀고 썰어넣어 된장찌개를 끓였다.
내가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조금 찡했다고 해야 하나,
기분이 참 묘했다.
팔이 아픈 이후로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이,
이 상태로 끝까지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으니까...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셈이라 내 나름으로는 조금 울컥할 수밖에...
이러면서 삶에 대해, 나이듦에 대해 또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