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더 불안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는 데만 한 시간 걸리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너를 보는 일은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는 너를 보는 것, 여느 때 같으면 냄새부터 싫다고 고개 돌렸을 인삼을 아침 저녁으로 군말 않고 받아 먹고 아침에만 먹던 비타민을 저녁에도 먹는 모습을 보는 것, 네 대답이 평소보다 조금만 곱지 않아도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지금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 알고 있다. 보는 나도 힘이 들어서 당사자인 너의 힘듦을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가슴이 먹먹했다. '마르고 심약한 네가 이 고단한 일상을 잘 버텨줄까?' 하는 생각에 내가 더 불안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니 나도 아이만할 때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는 이 시기가 긴장되었었다. 거칠게 자란 덕분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지만, 아니 어찌 보면 받았는데 그걸 드러내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낯선 이들 속에서 그걸 티내지 않으려고 데면데면한 척하며 살았던 것 같다. 다행히도 금세 친구 하자며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은, 오히려 남들이 보기에는 인기있는 아이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에게서 날 닮은 면을 볼 때마다 급긴장하곤 했는데, 요즘은 아이가 이런 나의 인복도 닮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며칠 간의 강행군이 힘들었는지 오늘은 커피도 마다하고, 점심식사도 생략하고 긴 낮잠을 잤다. 고생 중인 아이에게 미안해서 낮잠은 안 잤는데, 오늘은 기운이 없어 누워야 했다. 스트레스 받으면 잠이 몰려오는 이상한 체질 때문이기도 한 것 같고... 요 며칠 잘 버텼다 했는데...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손발이 금방 따뜻해지지 않아 혼자 신경질을 부리다가 잠들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머리의 무거움이 가셔서 좋았다.
아이에게 줄 인삼을 끓이면서 즐겨 가는 인스타그램에 들렀다가 찜닭을 봤다. '당면 가득 넣은 뚝배기 반찬을 한 번 해 먹어야지.' 계속 생각하기도 했고, 마침 냉장고에 아이가 슬슬 싫증내는 것 같은 닭백숙도 있고, 당면도 있다. 쫄깃한 버섯과 아삭한 청경채가 좀 들어가면 더 맛있어질 것 같아 하교한 아이에게 인삼을 내주고는 얼른 나가서 사 왔다. 이럴 때는 시장이 5분 거리에 있다는 게 좋다.
넓적한 팬에 물을 끓여 당면을 불린 후 물은 따라 버리고 그 팬에 닭백숙을 약간의 국물과 함께 넣었다. 국간장, 키위시럽을 넣어 단짠의 맛을 맞춘 후 방금 사온 청경채와 팽이버섯을 씻어서 수북하게 넣었다. 진간장의 순간적인 쨍한 짠맛이 싫어서 간장은 국간장만 쓴다. 키위시럽은 아이가 여름에 팥빙수에 넣고 싶다고 해서 산 건데 다 먹지 못했다. 그래서 재료 소진 차원에서 음식에 단맛이 필요할 때 넣고 있는데, 신맛이 없어 그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집에서 해 먹는 음식에 단맛이 거의 없어서 언제 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먹기 직전에 참기름 한 번 두르고 참깨 갈아 뿌리면 될 것 같다. 오늘 저녁의 메인 메뉴, 간장찜닭.
올 겨울 내내 그 어느 때보다 먹는 일에 결사적이었는데, 아이의 몸무게가 하나도 늘지 않았고 볼도 홀쪽하다. 끼니 때마다 밥도 가득 주고 고기 종류를 돌아가며 해 먹였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 살찌게 하는 식단을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하교한 아이는 지금 낮잠 중... 잘 자고 잘 먹고, 해서 힘 내라. 잘 버텨서 얼른 뿌리 내리고 쭉쭉 자라서 너의 꽃을 피워라. 너의 곁에 서서 나도 힘껏 도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