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아이의 기숙사 체험기
아이의 기숙사 생활은 열흘 정도로 끝날 듯하다. 끝나게 되어서 아이에게나 나에게나 다행이다 싶다. 아이의 짧은 기숙사 생활은 평생 기숙사 생활 해 본 적 없는 내게 큰 경험이 되었다. 불합리함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아이와 나-의 성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고, 세상에는 아직도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배운, 값지지만 열불 나는 일이 되었다. 정말 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속에서 열불이 났다...ㅠㅠ
아이는 3월 19일 학교 기숙사에 입소해서 5일 지낸 후 집에서 주말을 보냈는데, 그 다음 주 1학년 기숙사생 중에 수두환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1학년 기숙사생들은 1주일 동안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에서 통학해야 했다. 고등학생이 수두에 걸리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럴 거면 뭐하러 기숙사에 들어간 건지...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 12월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에 맞는 학교 3군데에 지원을 해 놓고 나는 선택권을 하나님께 맡겼었다. 이 중에 어디로 가게 될지 저는 모르니 하나님께서 보내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고 아이가 가게 된 곳이 지금의 고등학교였다. 우리가 지원한 3개의 학교 중에서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은 가장 마음에 들지만 집에서 가장 거리가 먼 곳이라 만약 여기로 가게 되어도 통학할 일이 염려스러운 곳이었다. 알아보니 학년당 20명 정도씩 들어갈 수 있는 기숙사가 있었고 기숙사 입사생 선발 기준이 성적이라고 해서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면 기숙사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지원했던 곳이었다. 중학교 3년을 성실하게 생활한 덕분에 아이의 성적이 매우 좋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문제는 아이가 기숙사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느냐였다. 그래서 아이가 기숙사에서 생활하더라도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자는 결심을 했고, 이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는지 이제 와서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순차적으로 일이 착착 진행되어 이사를 앞두고 있다.
아이는 기숙사 생활을 힘들어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들어 해서 아이가 기숙사에 있었던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나는 이틀에 한 번꼴로 기숙사에 갔었다. 집에서 통학할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은 몸이 힘들어서 그렇지 참을 수 있는데, 전형적인 꼰대스타일의 사감 선생님이 사사건건 감시하고 소리 지르고 이유 없이 벌점을 주면서 모욕감을 주는 것은 정신까지 피폐하게 만들어 너무 힘들다고, 사감 선생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턱 막힌다고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라는 건 나도 아이의 기숙사 입소 첫날 눈으로 확인한 바라 아이가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되었다. 내가 본 바로는 사감 선생님은 '기숙사는 감옥이고, 자신은 죄수들 위에 군림하는 교도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감 선생님과 몇 번 이야기해 보니 강압적으로 대하고 통제해야 아이들이 말을 듣고, 그래야 공부를 잘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새마을운동 때도 아니고 정말 '헐~' 할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감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면서도 개별 어머니들의 연락 받기를 원치 않았기에-딱 그 사감 선생님다운 태도다. 겉 다르고 속 다른... 학부모 대하는 태도 다르고 아이들 대하는 태도 다른... 전형적인 이중적인 태도.- 기숙사 대표어머니를 통해 의견을 전달했다. '스스로 규정을 지킬 줄 아는 아이니 강압적으로 대하지 말아 달라, 건강이 안 좋으니 야간자습시간에 쉬고 싶다고 하면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나중에 아이의 짐을 가지러 간 내게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일부러 와서 변명을 늘어놓은 걸 보면 내 의견이 전달되긴 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사감 선생님은 자신의 문제가 뭔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앞으로도 전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지나친 억압과 규제가 아이들의 학습의욕을 높이고 성적을 향상 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 기숙사에 관련된 어른들 중 나만 하는 것 같았다. 기숙사 대표어머니조차도 청에 세자를 볼모로 보낸 고려 임금마냥 사감 선생님 눈치를 살피는 전형적인 치맛바람맘이어서 뒷담화를 하면서도 사감 선생님 앞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기숙사에 들어간 이후 아이는 계속 아팠다. 장에 문제가 생겼고, 감기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계속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어야 했다. 아이의 문제는 내 생각에도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었고, 의사 선생님의 소견도 나와 같았다. 학교 근처라서 가게 된 가정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다행히 좋은 성품을 가진 스마트한 분이셔서 아이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 주셨다, 상황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코 끝이 찡해질 정도로 고마웠다. 내가 이틀에 한 번 꼴로 학교에 갔던 것은 아이에게 힘 내라는 응원을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녀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다. 낮엔 학교 근처에 집을 보러 다니고 저녁엔 아이를 만나러 학교에 가고 하느라 일터에 출근할 때보다 교통비가 더 많이 나온 시기였고, 힘들어 하는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어서 입 안이 깔깔해 하루에 한 끼도 간신히 넘기던 때였다. 당연히 몸무게가 쭉쭉 내려갔다. 아이도 나도 힘든 강을 건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숙사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한데, 당장 기숙사에서 나와 집에서 통학을 하게 하자니 등하교에 소모되는 아이의 체력과 시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이의 기숙사 퇴소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이사까지는 아직 1개월여가 남아있을 때라서 '집으로의 정기외출은 1주일에 최대한 2회'라는 기숙사 규정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월요일 방과후에 기숙사에 입소하면 주중에 하루는 방과후에 바로 정기외출해서 집에 와서 자고, 금요일에도 방과후에 바로 집으로 정기외출하는 걸로... 그게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쾌하게 결론을 내려 주셨다. 바로 집에서 통학하라고.
집에서 1주일 통학하는 동안 1학년생 1명 이후로 추가로 수두환자가 발생하지 않아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1학년 기숙사생들이 예정대로 기숙사에 다시 입소했는데, 5일 후 이번에는 수두환자가 2명 발생했다. 사실 3월초에 1학년 중에 수두환자가 발생한 적이 있었고 그 후로 1주일 간격으로 계속 수두환자가 나오고 있는 셈이었다. 생활관 같은 층에서 2명이 수두 확진을 받은 데다가 1명은 1학년, 1명은 2학년이라 학교에서 확산될 우려가 있다 해서 이번에는 1, 2학년 기숙사생이 모두 1개월 동안 퇴소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개월 뒤라 하면 학교 근처로 이사한 직후라 아이는 이번에 퇴소하면 기숙사에 다시 입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의 추이를 보면서 나는 '내가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숙사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이 다 힘든 것보다는 집에서 통학하면서 몸만 힘든 게 낫다는...
역시 침구류를 다 가지고 가라는 연락을 받았고, 기숙사에 가서는 침구류뿐만 아니라 아예 아이의 짐을 다 챙겨서 가지고 왔다. 다시 올 일 없게 하려고 아이의 옷장과 침대를 몇 번을 확인했는지... 아이가 있지 못할 곳, 같이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는 곳에서 내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그러나 반이사 수준의 짐 나르기 4번은 정말 힘들었다...ㅠㅠ 집에 와서 세탁기 3번 돌리는 것도 역시...ㅠㅠ
지금 아이는 집에서 통학을 하고 있다. 지옥 같은 기숙사 생활을 겪은 후라 그런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잘 하고, 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유 없이 모욕감을 주는 사람을 안 봐도 되니 정신적으로 편안해져 기숙사에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도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이번 일로 아이는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올 수 있었음에 정말로 감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기까지 얼마나 처절한 백조의 발놀림이 그 뒤에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니까... 낯선 지역의 학교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입학해서 이기적인 아이, 비열한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도 있었는데, 아이가 사교적인 성격이라 마음 맞는 친구들도 여럿 사귀어서 지금은 그 후유증도 이겨나가고 있다.
어제 장학증서 수여식이 있었는데, 아이가 학교 동창회에서 성적우수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400명 정도 되는 그 학교 1학년 중 전교 2등으로 입학한 덕분이다. 중학교 생활 3년 동안 한결같이 성실하게 잘 생활해 준 아이가 다시금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아울러 고등학교 생활도 중학교 때만큼만 해 주기를 기도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보다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무엇도 두려워 하지 말고 비전을 향해 최선을 다 해서 노력하라고, 그렇게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나도 열심히 돕고 기도하겠다고...
기숙사에 아이를 들여보내며 "힘 내. 엄마가 기도할게!"라고 말했던 저녁들이 떠올라 눈물이 어린다. '열흘 간의 기숙사 체험'이라고 짧게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들고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아이도 이번 기회에 세상에 대해 크게 배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불만과 원망으로 남지 않고 부디 아이의 인생에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기숙사로 인도하신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