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수다

D-3 마음 속이 복잡했지만...

블랙커피원샷 2018. 5. 1. 20:01

 

 이사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끊임없이 메모하고 확인하고 있지만, 그래도 뭔가 빠진 게 있을까봐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나의 고질병인 불안증폭증 때문에 스스로를 들볶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처음 치르는 정기고사 마지막날이었다. 한 달여 전 기숙사에서 나와 집에서 통학을 시작하면서 이번 중간고사 성적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을 했었다. 왕복 2시간 거리를 매일 다니는 것만 해도 아이에게는 힘에 부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사하기 전까지는 아이가 아프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 학교 다니기만을 혼자 조용히 바랐었다. 그랬는데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중간고사 점수를 듣자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중학생 시절에도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점수는 공부한 양 이상으로 나왔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그게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인가 보다. 아이가 먼저 자기 점수에 충격을 받아 내 잔소리는 짧게 끝냈다. 지난 겨울 내내 공부의 양을 늘여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귓가에 스치는 바람소리처럼 듣더니, 꼭 이렇게 직접 당해봐야 깨달아지는지... 점수보다 아이의 이런 동물적인 우둔함에 더 속이 상한다. 왜 미리 예상하고 대비할 생각은 못하는지...

 시험기간 4일 중 3일 내내 속상함의 연속이었기에 마지막 날인 오늘은 무슨 말을 들어도 더 속상해 하지는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시험이 모두 끝나고 종례가 끝난지 1시간이 넘었는데 집으로 가고 있다는 의례적인 문자가 오지 않자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오늘 시험을 너무 못 봤나?',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등등... 참다 못해 전화를 해 보니 휴대전화가 꺼져있다는 안내가 나왔다. '보통 하교하면서 휴대전화를 켜는데 왜 전화를 아직 켜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걱정이 더 증폭되었다. 아이가 너무 속상해서 나와 말하고 싶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더 참았다가 걱정하고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 계속 전화해 보는데 아이의 휴대전화는 계속 꺼져 있고...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 되어서 그냥 화장실로 갔다. 문을 걸어잠그고 앉아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가 집에서 통학하게 되면서 가졌던 나의 첫마음이 떠올랐다. 아프지 않고 학교 잘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이번 중간고사 성적은 마음에서 내려놓자고 했던 그 때의 그 생각들... 그 간절했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점수에 연연하는 모진 엄마가 되어 있었다. 성적 때문에 가장 자존심 상했을 것은 아이 자신인데 말이다. 아이에게 전화가 오면 시험 점수를 물어보지는 말자고 다짐한 잠시 후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조금 전에 집에 들어왔다고... 얼른 전화해 보니, 기숙사 퇴소 신청을 하기 위해 찾아간 담당선생님과 못 만나서 기다리느라 늦어졌고, 휴대전화는 배터리가 없어서 꺼진 것이었다고 했다. 나의 마음 졸임이 기우로 끝나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시험 결과는 역시나 기대 이하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점심부터 챙겨먹고 쉬라고 했다. 아이가 무사하면 그걸로 되었지, 성적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아이의 무사함보다 앞서지 않는다는 걸 기도하면서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이 학교로 인도해주신 것이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모르지만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지 않을까, 이 상황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아이의 점수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도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앞에 놓인 이사부터 해결해 놓고 고민해 보려고 한다.

 3월말, 이사 갈 집을 계약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새 일터에서 연락이 와서 다음 날부터 바로 출근하게 되었었다. 그 타이밍이 얼마나 절묘했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여서 '이건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 일터에서의 일도 아무 조건도 따지지 않은 채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거라 생각하니 아무 것도 물어볼 것이 없었다. 낯선 환경이지만 일해 보니 역시나 좋은 사람들이 많고 내 능력을 인정 받는 분위기라 마음도 편안하다.

 아침에 전철역에서 일터까지 15분을 오솔길 같은 길을 따라 걸어오는데, 매일 기도하면서 걷는다. 새 날과 새 힘을 주셔서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힘과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나와 아이에게 감사한 일이 넘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시고, 우리가 복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그래서 더 좋은 것들을 많이 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우리가 욕심 때문에 인간적인 선택을 할지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달라고... 우리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길 원한다고... 물론 이사의 전과정도 하나님께 의탁하고 기도하고 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더 깨닫게 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풍족하심을 믿고 나의 짐을 내려놓게 된다. 내가 지고 있으면 짐일 뿐이지만 하나님께는 정말 별 것 아닌 일일 테니까...

 이사 준비가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머리와 마음이 복잡했는데 오랜만에 이곳에 들러 지난 번에 쓴 기숙사 이야기를 읽고 나니 어수선한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맞다,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었지', '저 때의 저 마음을 왜 잃어버렸을까?'하면서... 그리고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왜 지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종종거리면서 속상해 하는지... 부끄러운 기록이지만 이 글 역시 나중에 언젠가 읽었을 때 반성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남겨본다.

 오늘도 역시 내 몫은 '절대믿음', '오로지순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