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수다

그런 주말.

블랙커피원샷 2018. 6. 3. 17:28

 

 

 전에 살던 집에서도 창의 방향이 좋아 볕이 잘 들면 커텐을 달지 않고 살았었다. 이상하게도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은 무엇으로도 가리기 아깝다. 이사 오고 나서 보니 침실은 북동향, 아이 방은 남서향쯤 되는 것 같았다. 침실은 아침 해 뜰 때 창으로 가장 많은 볕이 쏟아져 들어오고 이후에는 조금 어둑어득, 아이 방은 해 뜨고 난 직후부터 하루종일 볕이 들어오니 말이다. 그래서 침실에는 당장에는 커텐을 걸 생각이 없었다. 추워지고 나면 방한용으로나 걸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오후, 처음으로 침실 창을 열어놓으니 시원한 바람이 솨아~ 하고 불어들어오는 게 아닌가. 집안의 습도도 조금 떨어지고 해서 앞으로는 침실 창도 열어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니 밖에서 안이 보일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그래서 생각했을 때 움직이자 싶어서 바로 침실 창에는 대나무 발을 걸고 아이 방 창에는 마음대로 다루어도 괜찮은 발을 걸었다. 발만 걸었을 뿐인데 집안이 좀 더 안정감 있는 것 같아졌다면 그건 그저 기분뿐인 건지...

 모처럼 집에 있는 토요일이라 오전에는 그렇게 망치와 드라이버 들고 발 걸고, 그러면서 구석에 방치했던 커텐 봉들도 치워서 아이 방도 좀 더 정리가 되었고, 점심에는 냉면 해 먹고, 저녁에는 고기 구워 먹고, 그렇게 부지런을 떨었다.

 오늘 아침에도 평일과 비숫하게 일어나 빨래 걷고 다림질도 하고, 밥도 하고... 교회에 다녀 온 후 시간에 쫓기며 집안일하는 걸로 주일 오후를 보내고 싶지 않아 아침에 부지런히 움직인 것이다. 교회에 다녀오면서는 교회 앞의 마트에서 장도 좀 봐 왔다. 아직 장 보기의 루틴을 만들지 못 해서 당분간 주일 예배 후에 교회 앞 마트도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점심으로 콩국수를 사 먹었는데, 그 가게에서 파주의 장단콩으로 직접 콩물을 만든다고 하더니 오늘 그 장면을 눈으로 보았기에 콩물도 사 왔다. 콩가루로 만든 콩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고소하고 진해서 안 사올 수가 없었다. 절반은 냉동실에 넣어놓고 주중에 먹고, 절반은 오늘과 내일 사이에 먹을 생각이다. 5월이 시작된 것도 빠르다 했는데, 벌써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콩국수를 먹는 계절이 되다니...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꼭 장점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래저래 이 동네에서의 생활에 적응해가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아직까지도 이 동네에서의 생활에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이 동네로 이사 온 가장 큰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ㅠㅠ 오늘은 "내가 널 너무 철 없는 아이로 키운 것 같다, 내 잘못이다."라는 말까지 해 버렸다. 그 동안 한 이사 중 가장 최악의 이사였던 이번 이사 과정을 알고 있고, 학교에 입학한지 몇 달이 지났는데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어 한 말이었다. 자신이 마음을 다잡고 적응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도 남을 나이인데, 어쩌라고 투덜거리기만 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잔소리와 기도뿐이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우리를 들어 움직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니 더더욱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주말이 가고 있다. 침실 창 밖 바로 앞에서 새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지나가는, 창 바로 앞에 새끼라도 떨어진 것 아냐 싶게 창 가까이에서 여러 새 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런 주말 오후가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