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방학.
이사하고나서 두 달 반 정도가 지났다. 출퇴근이 일상이다 보니 아직 완전히 동네를 익히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냥 이렇게... 놀러와 한 달 살기 하듯, 반쯤은 이방인처럼 살기로 마음 먹었다. 완전히 익숙해져서 내 동네같이 느껴지면 그런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주어진 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그러겠다고 결심하고 온 거니까...
오늘 드디어 방학한 날이다. 2주 전부터는 하루하루 손꼽을 정도로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다. 어제는 전체 직원연수로 여의도 한강공원에 있는 애슐리에서 저녁을 먹고 유람선을 타고 한강 야경을 즐겼다.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러고 나서 한가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바탕 꿈을 꾼 것만 같았다. 해가 더 일찍 지는 계절이 되면 아이와도 꼭 같이 하고픈 코스였다. 그리고 오늘, 일찍 퇴근했다가 다시 일터에 다녀오는 일이 있긴 했지만... 잘 해 주니 만만하게 보고 성질 버럭 부린 일터의 어떤 이때문에 기분 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방학이다.
때맞춰 텅 비어버린 냉장고를 채우러 저녁 늦게 장 보러 다녀왔다. 땡볕 아래 장 보러 다녀올 기운도 없고, 그렇다고 내일 오전에 장 보러 가기 위해 일부러 나가기도 싫어 해가 졌지만 부랴부랴 다녀왔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고만고만한 슈퍼 세 군데 모두를 들러 양 손 가득 채소며 과일을 사 왔다. 꼭 '원미동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의 현실판 버전인 것처럼 슈퍼 세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시장. 어쩌자고 그렇게 가게를 열었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한 슈퍼에서는 사과를, 다른 슈퍼에서는 채소를, 마지막 슈퍼에서는 다른 슈퍼에서 사지 못한 대추방울토마토를 사며 골고루 필요한 것들을 사가지고 왔다.
방학 초입에 늘 그랬듯이 며칠은 멍하니 보낼 생각이다. 방학 동안 해야 할 일들의 계획이나 슬렁슬렁 짜면서...
방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