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수다

진정한 평안을 찾아서...

블랙커피원샷 2013. 10. 2. 20:46

저렇게 쓰고 보니 제목이 어찌나 거창한지...흠...

오후에 영재원 특강에 참석해야 하는 아이를 데려다 주러 조퇴를 하고 평소보다 한참 일찍 귀가했다.

남들은 나더러 주관이 뚜렷한 엄마, 아이를 똑 부러지게 잘 키우는 엄마라고 하는데,

내 마음 속에서 '나'는 늘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 몰라 시소 중앙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아이의 영재원 일정은 학기초에 1년치가 미리 계획되어 나온 것이었는데,

오늘의 학생특강이 마침 딱 내 일터의 시험기간 중에 있어 조퇴하고 올 생각을 진작에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서 보니 내 앞에 산적한 일이 산더미...

집에서 영재원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다.

큰 8차선 도로를 건너가야 한다는 게 위험하긴 하지만

아이 혼자서도 갈 만한 거리라는 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본 나의 생각.

게다가 어제 본 중간고사 서술형 답안지를 오늘 채점해야 그나마 일이 덜 바쁜데 하는 생각까지...

그래서 월요일에는 아이 혼자 보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제,

전직원 야외연수가 있어서, 게다가 나는 진행부서라 뒷마무리 하느라 6시가 넘도록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엄마와 수다 떨며 저녁식사를 하고 싶어서 저녁도 안 먹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를 본 순간 바로 결정했다,

오늘 조퇴하고 와서 아이 데려다 주는 걸로.

슬쩍 물어보니 아이도 엄마가 와서 데려다 주면 좋겠단다.

너 혼자 갈 수 있는 거리니 혼자 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나는 그 시간 일터에서 산더미를 조금 덜어낼 수 있겠지만,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

늘 아이가 원하는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엄마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엄마와 함께 있는 것, 그거다.

평소에 일 때문에 이 소박한 아이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할 때가 많아,

할 수만 있으면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가 언제까지 엄마와 시간 보내는 걸 원할지 모르니까

원할 때 같이 있으려고...

언젠가는

내가 아이와 함께 있기를 원해도 아이가 원하지 않을 날이 올지 모르니까...

그래서 오늘 일터에서

점심식사도 미룬 채 빛의 속도로 답안지 채점을 끝내고 예정된 시각에 나왔다.

늦을까봐 쏜살같이 집에 왔더니 오히려 조금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빵과 커피로 간단히 점심식사까지 하고 아이 손을 잡고 나섰다.

아직 보들보들하고 부드러운 아이 손을 잡고 걸으면

없던 책임감도 막 용솟음치는 것 같다.

내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아이를 위해서라도 남들이 우러러 보는 사람, 자랑스런 사람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맞춰 아이를 영재원에 들여보내 놓고,

역시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가서 아이를 맞아 함께 오는 길에 한 어머니와 안면을 텄다.

아이네 학교에서 교육청 영재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은 아이 포함해서 딱 두 명뿐.

그 나머지 한 아이와 그 엄마를 만난 것이다.

그 엄마는 남매의 교육 때문에 다니던 직장까지 재작년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들은 이야기를 조각조각 맞추어보니 남매를 영재로 키우기 위해 치마꽤나 펄럭이는 분위기.

아이의 교육을 위해 교육적인 지원을 열심히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치맛바람집단에서의 전체간식 제공, 교사와 사적인 친분 만들어 내 아이 앞장 세우기 등

교육 외적인 측면에서의 과열은 딱 질색인지라 한 10분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무척 피곤했다.

어쩌면 그게 현실이고 나도 인정하고 알아야 할 지도 모르는데,

그 부류에 섞이는 게 참 불편하다.

일단 마음이 평안하지가 않아서다.

내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해서 꿈을 이루면 좋겠다는 게 나의 궁극적인 소망이고,

그러기 위해서 주입식으로 지식을 무작정 머리에 집어넣을 게 아니라 이해를 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간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스스로 찾아라, 그래야 즐기며 공부할 수 있고, 그래야 성적이 잘 나온다,

엄마가 자료를 찾아주고 방향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공부는 스스로 깨달아 하는 것이라는 게 나의 교육관인데,

이처럼 소박한 교육관이 어디 있다고 교육관이 투철하고 지조 있다고들 하는지...

어찌 보면 너무나 이상적인 방법인데,

내 아이가 이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있고, 아직까지는 성적도 잘 나오고 있고,

스스로 꿈을 정해 그 꿈을 향해 자기 동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나는 이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생활만으로도 피곤해 하는 아이에게 학원, 과외 등 추가의 프로그램을 강요하는 것은

일단 내 마음의 평안을 깨는 일이다.

아이가 먼저 원한다면 당연히 지원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야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면서 내 마음의 평안을 깨면서까지 뭘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치마 펄럭거리는 엄마들이 들으면 한심해 할 말이겠지만 말이다.

오늘 그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마음 편하자고 아이를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잠깐 들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아이와 엄마가 동행한 모자 무리들과 피자집으로 우르르 들어가는 것을 본 아이가

자기도 피자 먹고 싶다고 해서

저렇게 질 안 좋은 재료 쓰는 동네피자 말고 좋은 재료 쓰는 맛있는 피자 먹자고,

피자헛의 신제품 피자 주문해서 테이블 세팅 제대로 해서 맛있게 먹고,

올드팝 들으며 좋아하는 책 읽다가 스르르 쪽잠에 든 아이를 보노라니

내가 잘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좋고, 꿈을 찾아 전진해가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의 마음이 저렇게 평안한데 그 이상 바랄 게 뭐가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지킬 것은 마음의 평안이라고 했다.

우리 마음의 평안이 오래도록, 아니 영원히 유지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