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수다

하나 더 보태봤자...ㅠㅠ

블랙커피원샷 2014. 2. 3. 23:16

건강검진하는 날이었다.

아침을 안 먹고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어제 저녁부터 내내 했다.

혹시 잊어버리고 아침에 물이라도 마실까봐...

아침을 '안' 먹는 것과 '못'먹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어제 저녁식사 이후부터 아침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내내 했더니

오늘 아침에 깨어서부터 어찌나 아쉬운지...ㅠㅠ

서둘러서 준비하고 병원에 갔다.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아침을 먹지.

건강검진에 걸린 시간은 1시간...

몸 안에 용수철이라도 있는지 키는 1cm 정도 해마다 오르락내리락 한다.

몸무게는 2012년부터 거의 그 자리다.

그래도 겨우내 집에만 있느라 잘 안 먹었고 그마나 있던 근육도 다 빠져서

몸무게가 좀 줄었을라나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살짝 실망했다는...^^

시력은 1.2로 예년 상태 유지.

내 눈은 안구건조증만 없으면 정말 국보급이란 것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의사가 시력이 좋다고 칭찬할 정도~ 뭐, 해마다 받는 칭찬이라...ㅎㅎㅎ

 

배가 고파서 얼른 집에 가서 밥부터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계획했던 대로 피부과에 들렀다.

평소 다니는 이비인후과 옆에 있는 곳, 늘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이라

굳이 다른 곳을 찾아보지 않고 간 건데,

결과적으로 잘못 갔나 싶다...ㅠㅠ

할아버지 의사, 병명부터 딱 적어서 주고

증상을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시켜서 어찌나 장황하게 설명하던지...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을 텐데, 묻길래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하자 그럴 리가 없단다.

각질도 많이 일어나고 가려웠을 텐데, 묻길래 가렵지 않았다고 하자 그것도 그럴 리가 없단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

이 돌팔이 의사가 먼저 병명을 정해 놓고 그리로 몰아가는 느낌이라 기분이 나빠졌다.

그럼 원인이 뭐냐는 내 질문에 원인이 없단다, 타고 나는 거라고...

증상에 대한 극단적인 설명이 길어지길래 이 의사가 고가의 치료라도 권하려고 이러나 싶어서

그럼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어이없게도 치료법도 없단다...헐~

온국민의 30% 정도가 가지고 있는 흔한 질환이라면서

그럼 도대체 의사가 나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뭐란 말인가.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하라는 건가.

한참 혼자 이야기하더니 자기는 설명 다 해 주었단다.

그게 설명이냐? 사형선고지. 그래서 어쩌라고???

증상에 대한 극단적인 설명만 하는 게 의사인가.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해서 '먹는 약도 있어요?'하고 묻자

그럼 '처방해주지 말까요?' 한다.

'할아버지, 장난하십니까?' 할 뻔했다는...

나오면서 보니 '피부비뇨기과'던데 혹시 비뇨기과 전문의로 피부과는 부수적으로 보는 것 아냐 싶었다.

'탈모'부터 시작해서 증상이 온몸으로 다 퍼진다, 고칠 수 없다 등등

온갖 부정적인 말로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어찌나 맥이 빠지던지...

밥맛도 싹 가셨다!!!

그러나 약국에서 기다리며 진한 커피 한 잔 마셨더니 오기가 생긴다.(커피머신이 있는 좋은 약국~)

병명 알았으니 치료법은 찾으면 되지. 내가 누구야, 검색의 여왕 아닌가.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그 의사가 한 말은 정말 극단적인 말들뿐이었다.

게다가 유사한 증상들이 여럿 있어서 딱 그 질환이라고 단정짓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아마 병원에 안 갔으면 심한 건성피부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게 대처하며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증상이 심할 때만 병원 다니면 되겠네 싶었다.

어차피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스테로이드 연고 처방해 주는 것밖에 없으니까...

안 그래도 종합병원인 몸, 하나 더 보태봤자 종합병원인 건 같다고 생각하니

우울함도 사라졌다. 이런 단순함이라니...

어차피 내가 끝까지 지니고 살아야 할 내 몸, 잘 달래가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피부과는 다시는 안 갈 거다.

아이가 신생아 때, 감기 때문에 간 동네 소아과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뜬금없이 아이 아토피를 언급하며 알러지성 비염, 천식으로 발전할 확률이 높다며

그건 100% 엄마로부터 유전받은 거란다, 엄마 책임이라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수학공식 외듯 줄줄줄 하던 할아버지 의사,

정작 처방해 준 감기약은 효과가 없어 결국 아이의 감기는 장염으로까지 발전해

아이가 보름 넘게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오늘 그 피부과 의사의 첫 마디를 듣자마자 딱 예전의 그 할아버지 소아과 의사가 떠올랐다.

같은 사람 아냐 싶게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재수없는 부류...

그 때 아이도 다른 소아과에서 다시 진료 받았고,

거기서 잘 나았기에 그 소아과를 지금도 다니고 있다, 10년 넘게...

비슷한 연령대의 할아버지 의사이지만 지금 다니는 소아과 의사선생님은

아이를 보면 바로 아이스크림 녹는듯한 부드럽고 따뜻한 웃음으로 맞아주신다.

뵙는 것만으로도 병이 나을 것같은 웃음으로...

10년 넘도록 그 웃음에 변화가 없었다.

그런 게 의사의 자세가 아닌가.

아이의 아토피, 그래, 의학 서적에 모계 유전이라고 나왔으면 그게 맞는 거겠지.

그러나 더 나빠질 거라고 했던 아토피 증상도 지금 거의 가라앉았고,

알러지성 비염도 그 의사 말처럼 심하지 않다.

천식, 오지 않았고 앞으로 올까봐 신경써서 관리하고 있다.

그 의사가 그 날 내게 했던 악담은 거의 대부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내 증상도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마치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듯 온갖 부정적인 말로 환자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던 오늘의 그 의사,

의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원인도 없고 치료법도 없다며 최악의 상황만 설명하는 것은 인터넷 검색해 보고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해 흰 가운을 입고 앉아있는 거라면 '흰 옷 입은 저승사자'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피부과 다녀와서 내내 심란했는데,

인터넷 찾아보고 마음 정하고 나자 내가 문제인 게 아니라 그 의사가 문제였다는 데 생각이 도달했다.

다른 피부과를 갔더라면

같은 병명을 들었을지라도 오후 내내 그토록 심란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뭐 밟았다고 생각하지,뭐.

한 주일의 액땜 끝.

2월의 액땜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