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진작에 보고 싶었으나 아이의 시험 때문에 나중에 보자고 미루어 두었던 영화 '마션'을 드디어 아이와 보았다. 인터넷에서 각종 스포와 '기대 이하'라는 안 좋은 평을 보고 갔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적으로 본 건 두 가지였다.

아무래도 우주에 관심이 많은 아이를 둔 엄마다 보니, 미래의 우주과학자를 키우는 엄마의 눈으로 영화를 봤나 보다, 나... 이 영화에서 마크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이, 아이가 우주를 연구하는 우주공학자가 되는 건 좋지만 직접 우주로 나가는 일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이의 꿈에 반대되는 것이라 할 지라도 내 마음은 그렇다. 아이가 내 곁에서, 내가 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싶다.

화성에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마크가 저렇게 앉아서 '내가 죽으면 대장님이 엄마를 만나주세요...' 하면서 엄마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이 차 올랐다. 얼마 전에 본, 아이의 도덕 수행평가지가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더 그랬나 보다. 자신이 곧 죽는다고 생각하고 유서를 쓰는 것이 도덕 수행평가라고 했고, 이렇게 쓰면 되는 건지 봐 달라고 아이가 내게 건네준 것이었다. 이제 갓 어린이 티를 벗은 아이가 죽음을 얼마나 이해할 것이며, 수행평가로 쓴 것이니 형식만 갖추어서 대충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몇 줄 읽기도 전에 벌써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 세상에서 얼마 살지도 않은 아이가 잘못을 하면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을 것이며, 죄를 지으면 얼마나 큰 죄를 지었을 것인가. 그런데도 아이의 유서는 지난 삶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올바르고 고지식한, 아이의 평소 성품을 생각할 때 유서의 내용은 진심일 것이었다. 그 글을 쓴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자 엄마로서 가슴이 저려왔다. '자신이 죽으면 부모님의 무덤이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서의 끝부분을 읽고는 기어이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무것도 해 주는 것 없이 그저 아이 뒤만 따라가기에도 벅찬 부모인데도 그렇게 해서라도 가까이 있기를 원하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서였다. '죽을 때까지 나는 아이에게 빚진 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장면에서 죽음을 예상하며 멀리를 바라보던 마크의 눈빛과 내래이션은 꼭 유서 안의 내 아이가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나를 울렸다.

두 번째로 내 눈을 끈 것은 우주역학 과학자인 리치 퍼넬이었다. 생활인으로서는 정리가 안 되고 실수 연발이지만 여섯 명의 우주인을 살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 젊은 천재 과학자. 그를 보면서 과학자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고, 평소에 늘 보는 우리 집의 미래 과학자와 비슷해 빙그레 미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멋지다... 저것이 과학자의 모습이구나... 어쩌면 저렇게 내 아이와 똑같을까... 뭐, 이런 생각... 한편 과학자로서의 생활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그의 모습이 참 좋아 보였고, 내 아이도 저렇게 자기가 꿈꾼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행복해 하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평소 아이로부터 우주에 대해 주워들은 게 많은 덕분인지 '인터스텔라'보다 더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라 몰입해서 볼 수 있어 좋았고, 인간에 촛점을 맞춘 영화라 더 마음이 갔다. 아이가 맷 데이먼이 '인터스텔라'에 나온 사람인 것 같다고 하더니, 지금 검색해 보니 '인터스텔라'에서 만 박사로 나온 게 맞았다. '인터스텔라'도 아이와 함께 보았건만 왜 나는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 흑... 평소에 마초적인 느낌의 얼굴 때문에 그를 별로 관심 있게 보지 않았던 게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오늘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 중 하나가 '맷 데이먼이 원래 이렇게 목소리가 좋았던가?'였다. 적당히 굵으면서 감미롭고 울림이 있는 그의 목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목소리 때문에 그가 출연한 다른 영화들도 찾아 보게 될 것 같다.

영화는 주로 동네의 롯데시네마에서  보았는데, 오늘은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신도림CGV에서 보았다. 동네의 롯데시네마는 가까워서 좋긴 하지만 관람 환경이 정말 짜증스러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듯 보이는 아이들만 극장에 들여보내는 부모도 있고(그러면 그 아이들이 조용히 영화를 보겠는가. 주위에 팝콘 어지르고, 콜라 쏟고, 영화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자기들끼리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주고 받느라 떠들고... ), 아이와 함께 들어와 관람한다 해도 영화 상영 도중 자주 스마트폰 화면을 보느라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하고(어떤 엄마는 영화 상영 내내 카톡을 하고 있기도 했다. 정말 개념 없는...), 그래서 집중해서 영화 보기가 어려웠다. 돈 내고 영화 보면서 이렇게 짜증스럽게 봐야 하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여서 차라리 좀 나중에 보더라도 집에서 편하게 다운 받아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도림은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지역이라 적어도 내가 싫어하는 진상 관객은 적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늘 '마션'을 거기에서 본 것이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 관이 250여 명 들어가는 작은 규모인데도 좌석 간의 거리가 길어서 반 눕다시피하고 다리를 꼬아도 앞 좌석에 부딪히지 않아 좋았고, 모든 관객이 어른 관객이어서 영화 상영 도중 떠들거나 스마트폰을 꺼내 보는 일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아 온전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아이도 영화 보는 환경은 여기가 훨씬 좋다고 해서 다음에도 여기에서 보는 걸로 아이와 합의했다. 기분 좋게 영화 본 후 전망 좋은 높은 곳에서 좀 비싼 걸로 저녁 먹으면서 영화 이야기로 수다도 왕창 떨었다. 집에서 나가기 전만 해도 컨디션이 좀 안 좋았는데, 즐거운 토요일 오후를 보낸 덕분에 다 잊어버렸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실감한 날...

Posted by 블랙커피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