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제목:소설 대신 드라마

몇 년 전부터 난 소설을 읽지 않고 있다. 소설은 상상의 여지가 너무 커서 상상력발전기인 나는 일상까지 영향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설 대신 TV드라마 보는 것으로 스스로와 합의했다. TV드라마는 방송을 전제로 하기 때문인지 여러 제약이 있어 상상의 범위가 소설만큼은 아니었으니까... 내겐 그랬다.
요즘 나를 웃게 만드는 건 드라마 '철인왕후'다. 이 드라마도 다른 드라마처럼 중간에 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화제성을 가지고 기사화되는 드라마가 눈에 들어오면 한두 회를 보고, 그 내용이 마음에 들면 앞부분의 줄거리를 찾아 읽고 지금 보는 내용과 이어 맞춘 후 끝까지 보는 게 내가 드라마를 보는 방법이다. 드라마는 종영 후에 전체를 재방송해 주는 채널이 여럿 있기 때문에 그 때 1회부터 순서대로 보는 편이다. '철인왕후'도 앞부분의 디테일한 내용이 궁금해서 아마도 1회부터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역사적인 인물을 차용하다 보니 논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난 픽션은 그저 픽션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픽션을 사실성의 잣대만을 가지고 재면 세상에서 문학은 존재할 수 없어진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이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데에는 사실성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 전공자의 어설픈 생각 펼치기, 여기까지만~😏
처음 '철인왕후'에서 나를 웃게 한 것은 중전의 조선에서의 생존기였는데, 어느 때부턴가 최상궁 얼굴만 봐도 입꼬리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최상궁 얼굴만 봐도 그녀 특유의 억양으로 외치는 '아니되옵니다~'가 귓가에서 이미 울리고 있더라는...😂 그녀의 요술경 사랑은 또 어떻고...🤣 이 배우, '사랑의 불시착'에서 보고 표정 덕분에 1점은 먹고 들어가겠구나 했더니 1점만 먹는 게 아니라 표정 자체가 만 점이다. 고지식하면서 성실한 미련퉁이가 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게 웃길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12회의 내용은 슬펐다. 선과 악의 대립, 특히 악이 득세한 모습 보는 걸 원래 힘들어 하기도 하지만, 불의 앞에서 정의가 무너지는 내용은 픽션임을 알고 봐도 슬퍼진다.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철종과 중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한편으론 최상궁에 키득거리면서 마지막회까지 보게 될 것 같다.

#일상으로의초대
#드라마보는동안손은뜨게질
#최상궁의팔자눈썹만봐도푸핫
#철인왕후12회 #철종김정현 #중전신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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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노래들이 주로 Folk여서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노래를 대부분 안다. 내가 아는 그 노래를 자기만의 노래로 만들어 버리는 참가자가 나오면 그 매력 때문에 눈을 떼지 못하고 보게 되는데...
8회를 보면서는 부활의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아 원곡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프트가 부른 'From Mark'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남긴 긴 여운때문에 노래가 끝나자마자 또 듣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보컬 이주혁의 목소리가 주는 매력 때문인 것 같았다. 마법사의 주문에 걸려드는 것처럼 은근하게 홀리게 된다는... 김승주는 표현 방식이 세련되지 않았지만, 음악 바탕에 깔린 그의 가족애 때문에 응원하고 싶은 참가자였다.
노래를 듣는 것만큼이나 이 프로그램을 보고 싶게 만드는 건 역시 심사위원들. 총 5명의 심사위원 중 3명을 좋아한다면 그 프로그램은 그 3명을 보기 위해서라도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이 프로그램에서 김윤아 심사위원은 특유의 똑 떨어지는 면 외에 엄마로서의 촉으로 참가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여 즐 때가 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다.
모든 순간이 좋을 수는 없다, 그럴 때 별 것 아니게 지나갈 수 있는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는 박학기 심사위원의 조언은 어른스러우면서도 따뜻해서 마음에 와 닿았다. '향기로운 추억',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를 부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이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하던 가수 박학기로서의 모습이 아니어서 더 멋지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부터 좋아하게 된 사람은 넬의 김종완 심사위원이다.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타는 듯 입을 가릴 때가 많고 잘 했다는 칭찬을 할 때에는 참가자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말하는 그이지만, 음악적으로 고칠 점을 말할 때 부드러우면서도 조목조목 예리하게 지적하는 모습에서는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져 그를 다시 보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을 품고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를 주목하게 되고, 그의 말을 귀담아 듣게 된다.
이 프로그램을 계속 보면서 느낀 게, 좋은 노래와 진심어린 말은 듣는 이의 마음을 닦아준다는 것이다. 노래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시 같은 가사뿐만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하는 진심어린 말이 주는 정화효과란 참으로 크다. 내가 아닌 참가자들에게 하는 말임을 아는데도 그런 걸 보면, 경연 프로그램 이전에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존재 가치가 아닐까 싶다.

#일상으로의초대
#Mnet포커스8회노래좋고심사위원좋고
#기프트의이주혁어디서봤나했더니슈퍼밴드에서몽환적인목소리란평을들었던바로그사람
#FolkUs #기프트 #부활 #김윤아 #박학기 #김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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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기업의 사보 인터뷰를 읽고서였다. 평소 인간의 정신과 관련된 분야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명리학과 관련된 콘텐츠를 눈여겨 읽곤 했는데, 저자의 인터뷰 내용은 내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명리학 연구가들이 말하는 것과는 좀 달랐다. 분명 명리학적인 내용을 말하는데 그걸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해석해 설명해서 읽는 이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조용한 힘이 있었다.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찾아보니 '예스인터뷰'에 올라온 저자의 인터뷰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런 팔자라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건 제가 창안한 건 아닌데, 첫째, 적선(積善)을 많이 해야 해요. 그래야 자기 마음이 밝아집니다. 둘째, 독서를 해야 합니다. 기질을 변화시키는 길은 학문하고, 독서를 많이 해야 합니다. 셋째, 명상을 해야 합니다. 하루 시간의 10분의 1은 자기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바쳐야 해요. 십일조죠. 넷째, 선생을 만나야 합니다. 나를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 인생의 기로에서 중요한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다섯째, 명당을 찾는 길입니다. 묏자리나 주택. 그런데 요즘은 풍수의 시대가 갔죠. 여섯 째, 사주팔자 공부를 해야 해요. ‘오버’하지 말아야 하는 거죠. 자기 분수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사주와 팔자만 따지는 게 아니라 현대인도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부, 독서, 기도, 멘토링 등의 방법을 이야기하니 누가 이걸 사주명리학 연구가의 말이라 하겠는가?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저자가 하는 말에 좀 더 신뢰를 갖게 되었고, 저자의 신간이 나오면 찾아 읽게 되었다.

 

 

저자는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강호동양학자, 사주명리학 연구가로 알려져 있다. 미신으로만 여겨지는 사주명리학을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방편이면서 철학과 인문학으로 대접받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인의 ‘마음의 행로行路’, 즉 먼 과거에서 시작해 미래로 이어지는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여행을 통해 경험하고 실천함으로써 이치를 궁구하고, 마침내 무한한 대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그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조용헌의 사찰기행》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방외지사》 《조용헌의 고수기행》 《동양학을 읽는 월요일》 《조용헌의 휴휴명당》 《동양학을 읽는 아침》 등이 있다. 현재 〈조선일보〉 칼럼 ‘조용헌 살롱’을 2004년부터 14년 넘게 연재중이이기도 하다. 아주 짧은 내용이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간결해서 오히려 임팩트 읽게 읽힌다.

이번의 신간 <조용헌의 영지순례>는 전국의 이름난 영지에 대한 내용이다. 전국에서 실력을 인정 받는 사주명리학 연구가나 도사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영지가 어딘지, 그곳이 왜 영지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내용이 재미 없거나 지루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자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설명도 이전의 저서에서와 같이 친절히 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사진이 화보급이다. 종이의 질도 다른 책에 비해 좋고 두꺼워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데, 이렇게 큰 사이즈의 책에 두 페이지에 걸친 전경 사진이 많아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가 이렇게 사진을 통해서 영지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들을 보니 대부분의 영지는 경관이 좋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리는 곳이었는데,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없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절경으로 유명한 곳을 이렇게 큰 사진으로 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반쯤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만 볼 만한 것은 아니었다. 소석 구지회님의 그림과 짧은 글이 실려 있는데 각각이 작품이라 이 부분을 보는 재미도 컸다.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진 사주명리학적인 내용과 함께 장대한 스케일의 사진과 예술작품과 다를 바 없는 그림까지 실려 있으니 추천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책에 소개된 영지를 언제 가 볼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바위산을 보면 올라가 앉아있고 싶어질 것 같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강물의 흐름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 그저 조용히 강물을 내려다 보게 될 것 같다. 길을 걸을 때 땅의 기운이 느껴지는지 내 몸의 반응에 좀 더 예민하게 주목할 것도 같다.

자연의 이치가 궁금하다면, 복잡한 현대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자연스럽게 날리고 싶다면, 그래서 평온한 마음과 몸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 책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그저 사진과 그림만 훌훌 넘겨 보아도 얻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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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소개글을 보고 단번에 떠오른 것은 호프 자런이 쓴 '랩 걸'이었다. 학자로서의 치열한 삶과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즐거움, 그리고 학문에 쏟는 열정을 자세하게 보여준 책이었다. 두께가 꽤 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학자로서의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에 빠져 앉은 자리에서 정신없이 독파했기에 열정의 전염성을 믿게 되기도 했다.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라는 이 책 역시 기린과 함께한 군지 메구라는 과학자의 열정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린을 유독 좋아했던 소녀 군지 메구가 18세에 평생 기린을 연구하겠다고 결심한 뒤 기린 박사가 될 때까지의 기록을 담은 치열한 성장의 기록이다. 

군지 메구가 '기린의 제1흉추가 8번째 목뼈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 논문으로 제7회 일본학술진흥회 이큐시상을 수상한 만큼, 기린에 대한 해부학적 정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보다는 학문하는 사람으로서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고 해서 이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다는 말을 미리 하고 싶고, 오히려 이 책을 읽음으로써 기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무언가에 몰입하는 경험에 대해 동경하게 될 거라는 말도 미리 하고 싶다.

 

이 책의 감수자는 '지식은 일상을 풍성하게 만들고 익숙한 것에 가치를 부여해 새로운 깨달음을 낳게 함으로써 일상을 빛나게 해 줍니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동의하는 내용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자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10년 동안 30여 마리의 기린을 해부하며 기린의 8번째 목뼈 여부를 연구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기린의 사체가 났다는 연락을 받으면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사체를 가지러 가고, 연구 주제의 해답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문에 대한 저자의 열정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학문을 하면서 저자가 느끼는 즐거움도 고스란히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면 저렇게 끈기 있게 매달릴 수 있고 결국 찾기 원하던 바로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우주 물리학자로부터 '아인슈타인은 수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성공의 비결을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쭉 아이의 마음을 한 채 살았다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도 군지씨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채 어른이 되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 생각한 내용을 적은 부분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겠다거나 이 세상을 구할 연구를 하겠다는 고상한 뜻을 품고서 연구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 그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을 추구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내 인생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틀림없이 앞으로 노력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행복한 것은 분명히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채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과 저자가 말한 '어린아이의 마음'이야말로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 지금 현재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하는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루하루 그런 삶을 산다면 그 인생에 대해 성공이냐 아니냐를 논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을 때마다 '기린이 죽지 않는다면 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었고, 이토록 몰입할 무언가를 찾은 것만으로도 그녀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적인 부분 또 하나는, 저자가 지식을 익히는 즐거움과 위대함을 배운 것이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서였다는 사실이었다. 저자의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살면서 문화센터에서 향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해 저자가 기린 연구자로 성장한 15년 동안 향 만들기에 대해 공부해 지금은 조향사로 강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을 통해서 누군가 억지로 지식을 쑤셔 넣는 공부와 스스로 기꺼이 주체적으로 지식을 얻는 학문의 차이를 깨달았다고 하면서, 자신이 연구자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반을 다져준 사람은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공부의 중요성을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저자의 어머니처럼 학문을 생활에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이유를 또 하나 얻었다. 

 

저자의 연구 주제와 연구 방법에 대해 아는 것이 이 책의 중심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 책에는 기린의 해부학적인 지식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렇게 그림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번역서다 보니 문장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는데 그림을 참고하니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각 장의 마지막에 '재밌는 읽을거리'라는 부분이 있는데, 기린이라는 이름의 유래, 동물원에서 기린 종을 나누는 법과 같이 정보적인 내용도 있어 흥미있게 읽었다. 나중에 동물원에 가면 기린 몸의 무늬를 유심히 보게 될 것 같고 기린의 뿔이 몇 개인지도 관찰하게 될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거나 길을 개척해 주길 기다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힘들다며 포기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 갈 수밖에 없다.' 하는 각오를 다진 것이 연구자로서의 시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이 학문의 즐거움과 열정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 이전 단계로 도전하고자 하는 용기가 먼저 필요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한다면 즐거움도 얻고, 열정과 용기도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저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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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깜짝 놀랐다. 표지가 온통 꽃천지였다. 흔히들 말하는 몸빼, 시골 할머니들의 일바지 원단과 다를 바가 전혀 없어 보였다. 이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줄지는 몰랐다. 그런데 계속 보고 있으려니 좋았다.

 

 

정말 원단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어서 띠지를 벗기고 손으로 표지 앞 뒤를 쓸어보기까지 했다. 바탕색이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남색이라, 표지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길 이유가 충분했다.

 

 

표지를 넘기자 속지가 나왔는데 이것도 역시 꽃천지... 두 가지 색상의 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꽃밭이었다. 분위기는 표지와 확연히 달랐지만 속지는 속지대로 부드럽고 은은하게 예뻤다. 아직 내용은 읽지도 않았는데 이미 마음이 반 넘게 넘어가버렸다. '이건... 반칙이야...' 하는 중얼거림이 저절로 나왔다.

 

 

차례에서도 챕터별로 색을 다 달리 사용해서 구분을 짓고 있었다. 네 가지 색 모두 눈에 잘 들어오면서 튀지 않고 조화로워서 좋았다. 새 책을 읽을 때 디자인을 맡은 회사를 눈여겨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 책은 예외다. 기억해 둘 생각이다. 

 

 

이 책은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보니 맛에 대한 이야기지만 객관적이고 묘사적이지 않고 다분히 주관적이고 서사적이다. 저자는 '들어가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작고 허름하고 낮게 엎드린 동네 식당들, 그 식당들을 오래 지킨 사람들, 그 사람들이 켜켜이 쌓아온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하고 나누는 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그 소사가 저에게는 대사였습니다. '할머니 식당'은 제게 우주입니다.'

그렇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 각지에서 작고 허름한 식당을 운영하는 많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구성으로 실려있다. 겉모양만 봐서는 선뜻 들어갈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는, 간판도 제대로 달려있지 않은 그런 식당을 운영해서 자식들을 다 공부시키고 가족들을 건사한, 그 험난한 이야기들... 이 책에 나오는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지도 않고, 손님이 너무 많이 오는 게 오히려 걱정되고, 마음에 맞는 손에게는 뭐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하신다. 그러고 보면 음식의 진짜 맛은 음식에 있는 게 아니라 그걸 먹는 분위기와 정에 있지 싶다. 전화가 너무 많이 오는 게 싫어서 간판의 전화번호 일부를 일부러 떼었다는 정회식당, 나는 들어본 적도 없는 갓냉이동치미를 준다는 갓냉이국수, 신기한 모양의 일미만두, 저자가 책 곳곳에서 언급해서 읽는 내내 그 맛이 궁금했던 삼태기꽈배기 등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단지 맛이나 가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책 내용 중 성원식품 어머니의 말씀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싼 걸 먹는다고 저렴한 사람이 아니야. 사람마다 가치가 있어." 이 책 곳곳엔 철학자의 명언 같은 할머니들의 말씀과 정신이 나타나 있는데, 모두 수십 년간의 노동으로 입증된 것들이어서 그런지 더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노동의 신성함이 담보된 말씀이니... 어쩌면 저자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이 많은 음식점들을 다닌 게 아니라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고파서 다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 하나하나가 정감이 있었다.

다른 사진들은 큼직하게 컬러로 실어놓으면서 주소, 전화번호, 영업시간, 메뉴 등 가게의 정보가 나와있는 'MEMO' 페이지는 사진도 글씨도 희미하게 인쇄되어 있어서 뜻밖이었다. 알려는 주되 잘 알아볼 수 있게 알려주지는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인가 하는 의심이 들어 이게 광고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맨뒤 찾아보기 페이지에 지역별 할머니 식당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따로 나와있는 것이 어찌나 다행스러웠는지...
이 혼돈의 코로나 시대가 종식되어 다시 이전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때가 오면 이 책에 실린 할머니 식당들에 찾아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물씬 들었다. 저자처럼 곰살맞게 구는 성격이 못 되는 내게도 할머니들이 따뜻한 정을 베풀어주실지 정말 궁금하다. 그때까지 할머니들 모두 건강하시면 좋겠고, 계량이 필요 없는 그 손맛도 여전하면 좋겠다.
위로가 필요한 때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제대로 된 책을 만나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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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나라, 독일의 뮌헨 대학에서 7년 반을 유학한 덕에 초록이 주는 힘을 굳게 믿으며,

그에 기대어 근근이 살아가고자 하는 기생형 인간이기도 합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우연히 찾게 된 대관령에서 여름 두 달을 보내며 생활여행의 새로운 챕터를 열게 되면서,

여행이라는 작은 삶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여행자로서 보냈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기꺼이, 이방인』을 엮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든 책 소개 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말미암아 그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되면서취미인 '여행기 읽기'에서 큰 위안을 받고 있던 중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두 달을 산 이야기라니... 나 역시 낯선 골목길 걷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책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활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것이 다 낯선 것들이니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게 되는 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이다. 속속들이 자세한 요소들을 알 수 없으니 그저 보이는 만큼만 보며 만족하는 게 이방인의 생활이기도 하다. 이런 생활 방식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아니, 몇 안 되는 단점까지도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조금 불편한 점이 있어도 그 낯섦의 새로움에 감탄하고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넘기게 되니까...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점들 때문에 기꺼이 이방인의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런 점에서 저자와 나는 찌찌뽕이다~

 표지를 보았을 때에는 약간 실망했다. 나는 작년 5월 대관령에 다녀온 적이 있다. 시야가 탁 트인 대관령의 광활한 전경과 머리칼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세차고도 시원한 바람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왜 이 멋진 대관령의 경치를 흐릿하게 처리했을까?', '배추밭을 비롯한 초원의 초록빛을 선명하게 보여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책에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치를 묘사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사진으로라도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정말 컸다. 사진이 없다면 그렇게 발행한 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 그 이유를 헤아려보고 싶지 않을 만큼 경치에 대해 욕심이 나는 곳이었나 보다, 내게 대관령은... 그러니 저자도 매혹 당해 두 달 살이를 하게 되고 책까지 내게 되지 않았을까?

 약간 노르스름하고 손에 닿는 감촉이 까슬까슬해 넘길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종이의 질, 적당히 큰 사이즈라 여러 번 되읽고 싶게 만드는 크기의 활자, 민트색 속지까지도 마음에 쏙 들었는데... 

 '지금 여기서 충분히 행복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어딜 가더라도 그 곳에서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만약 그 곳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그럴 만한 충분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테니까... 순간순간의 소소한 행복을 다 누리겠다는 저자의 적극적인 태도가 나를 빠르게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겼다. 

 저자소개와 '들어가며'를 읽고 나니 문득 저자가 궁금해졌다. 앞부분에 소개된 내용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져 버린 것... 요만큼 읽었을 뿐인데 '도대체 누구지? 누군데 이렇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하는 생각에 참을 수 없어져 버린 것이다. 친절한 인터넷 검색의 세계는 내게 저자의 얼굴까지 보여주었다. 내가 예상하던, 예민하고 까칠한 인상이 아니어서 뜻밖이었다. 저자는 '대충 잘 살자.'는 문장을 떠올려야 할 정도로 '대충대충'이 안 되는 사람인데... 너무 순한 인상이었다...@@

 한 장 두 장 읽다 보니 이 책은 여정에 따른 장소에 대한 정보, 감상 등을 적은 '여행기'가 아니라 그냥 저자의 '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관령에서 사는 두 달 동안의 일기... 누군가의 일기를 읽고 나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 이야기 한 번 나눠 본 적 없어도 그 사람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게 일기의 매력이지... 그래서 나도 저자와 일면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와 생활을 같이 해야 할 수 있는 사항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렇게 저자에 대해 알고 보니 나와 참 비슷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끝내는 공감하는 부분마다 밑줄을 그어가며 읽게 되었다는... 어떤 페이지는 내가 쓴 게 아닐까 싶게 모든 내용을 다 밑줄 긋고 싶기도 했다. 특히 '생래적 프로불편러를 응원하며'와 '같이 놀아야 제맛', '대관령 북캉스'는 200% 공감하는 내용이라 읽고 또 읽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 지구에 나말고 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기쁨, 이방인의 마음으로 사는 일상의 참신함을 아는 저자를 만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참 마음이 시원했다. 마치 저자와 직접 만나 차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들은 느낌... 아니, 저자가 아니라 오랜 친구와 만나 잔잔하지만 편안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나눈 느낌...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공감 받고 위로 받은 느낌. 책을 읽고 이런 느낌을 받는 게 참 오랜만이라 여운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아 조만간 다시 이 책을 잡게 될 것 같다.

 이 책의 '차례' 바로 뒤에 실려 있는 지도에서도 다른 여행책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름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대관령에서 두 달을 사는 동안 대관령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라 강원도 전반을 돌아다녔다, 마치 현지인이 일상을 사는 것처럼... 저자가 다녔다는 곳들이 내게도 생소한 것을 보면 유명한 관광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책 내용을 다 읽은 후 다시 지도를 보니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다정한 곳들인 것 같아 나도 가 보고 싶어졌다. 이런 것이 저자의 글이 가지고 있는 '조곤조곤'의 힘이겠지... '에필로그'를 보니 저자는 올해 대관령 두 번째 여름살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용기에 응원을 보내며, 이 책을 통해 나도 이방인의 마음으로 타지에서 일상을 보낼 용기를 얻었음을 저자에게 감사하고 싶다.

삶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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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정성갑님을 이 책이 집필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래 전 우연히 알게 된 한 블로그때문이었다. 그 블로그의 주인은 부정기적으로 긴 글을 올리곤 했는데, 표현이 솔직하면서도 글에 담긴 성정이 따뜻해 마음에 와 닿는 게 있었다. 나만 느끼는 점이 아니었던 것이, 그녀가 한 번 글을 올리면 호응의 댓글이 많이 달리곤 했다. 배려, 슬픔, 감동, 외로움 등이 물결치며 잔잔하게 와 닿는 마력 때문에 한 번도 댓글을 남기는 용기를 못 내면서도 그녀의 글을 읽으러 블로그에 자주 들렀고, 여러 글을 통해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알 수밖에 없었다. 한 작가의 수필집 몇 권을 읽고나면 저절로 그 작가의 개인사에 대해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은밀한 독자였던 셈이다. 그녀가 SNS로 옮겨가면서는 그녀의 SNS의 숨은 팬이 됐고, 그녀의 남편의 SNS도 읽게 됐다. 물론 그녀의 글을 통해 남편의 직업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대강은 그녀의 블로그에도 올라온 이야기여서 나는 본의 아니게 배경지식이 풍부한 이 책의 독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읽으면서 보니, 그녀의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이 아내 시점의 이야기였다면 이 책의 내용은 그 이야기의 남편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점이 달라져서일까? 블로그의 글에서 느낀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재미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저자가 오랜 기자 생활로 명료하면서도 세련된 글을 쓰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저자가 SNS에 올리는 글을 통해 유머또한 넘치는 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글을 쓸 줄은 몰랐기에 그저 저자가 이끄는 대로 웃기도 하고 안스러워 하기도 하며 조련 당할 수밖에 없었다. 펼치고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내려간 책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한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 제목에 왜 '좇는'이 아니라 '쫓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둘째, 집에 대한 책인데 왜 사진이 하나도 없는지...

 국어사전을 검색해 보니,  '좇다'는 '목표, 이상, 행복 따위를 추구하다', '남의 말이나 뜻을 따르다'라는 뜻이고, '쫓다'는 '어떤 대상을 잡거나 만나기 위하여 뒤를 급히 따르다', '어떤 자리에서 떠나도록 몰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집을 만나기 위해 뒤를 따르는 모험'이라는 의미일까?' 하는 생각과 전세일지라도 이사할 때마다 자비를 들여 인테리어를 취향에 맞게 바꾸었던 부부의  행보로 미루어 볼 때 '집을 추구하는 모험'이라는 의미가 맞을 것 같고, 그렇다면 '제목은 '집을 좇는 모험'이어야 할 텐데...'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앞서 적은 대로 저자의 조련술에 이미 넘어갔기에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눈으로 책의 문장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아, 블로그의 그 글이 이런 상황에서 씌어진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연이어 떠올랐고, 그 두 개의 이해의 톱니바퀴가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책의 내용은 두 배로 확장되어 내 안에 들어왔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6억을 손해 봤다는 말로 시작한 작가 소개를 볼 때부터 '이렇게 솔직하게 다 드러내셔도 되나?' 하는 걱정이 들었었는데, 본문을 읽다보니 더 솔직한 손해의 내역이 씌어져 있었다. SNS를 통해 저자가 활달하고 긍적적이며 유머가 넘치는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텍스트로 알았다는 게 정말 다행스러웠다...ㅎㅎㅎ 만약 대면한 상태에서 저 내용을 들었다면 정말 표정 관리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이걸 '가련'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유머'로 받아들여야 할지...에효...

 이 책은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진이 하나도 없다. 책의 앞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그 점이 불편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녀의 블로그와 저자 부부의 SNS에서 본 사진이 내용에 맞게 머릿속에서 자동재생 되어 '아하~' 하며 읽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사진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텍스트에만 오롯이 집중해 읽는 것이 상상의 부피를 얼마나 풍성하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이 점을 예측해서 일부러 사진을 안 넣은 것이 아니었을까...?

 사진이 없는 대신 중간중간 파란 일러스트가 들어가있는데, 긴 시간의 스토리가 집약된 크로키나 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내용을 예측할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미를 추구하는 저자의 인문학적 특성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일러스트도 한참을 요모조모 뜯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일러스트를 보면서는 저절로 빙그레 웃음짓게 되었다. 새로 지은 협소주택 안에서 고양이 핀을 안고 창 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저자 가족의 평화로운 모습이라니... 역광으로 찍은 단란한 가족사진 한 장을 보고 있는 따뜻한 느낌이 물씬 전해졌다, 일러스트 하나에... 이미지의 힘이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공감 가는 부분에 줄을 그었었는데 이내 포기했다. 스토리를 쫓아가며 읽다보니 줄 긋기가 재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문장이 너무도 많아 어록집을 만들어야 할 판... 내가 그토록 그녀의 글을 좋아했던 이유, 저자 부부의 SNS에 올라오는 글을 찾아 읽었던 이유가 저자 부부의 가치관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어나가며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ㅎㅎㅎ 이 부분 이후가 이 책의 백미였는데-적어도 내게는 그랬다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제목에 왜 '좇는'이 아니라 '쫓는'을 사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뒷부분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더 좋은 것은 또 다른 집을 꿈꾸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내게 더 맞는 집, 우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과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집을 갖고 싶다...(중략) 집이 집을 부르는 경험을 하는 중인데, 앞으로도 집을 찾는 모험을 계속하고 싶다. 좋아하는 집에 살면서 한옥 구조를 차용해 지은 양옥도 좋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계속 또 다른 집을 꿈꾸는 것. 집을 중심으로 펼쳐진 그간의 모험과 여정이 내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중략) 돌아보니 집을 찾는 모험은 나를 찾아가는 모험이기도 했다. 집의 모험을 통해 진정 나답게 사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세상에나, 그 고생을 하고도 또 다른 집을 꿈꾼다니... 집을 '쫓는' 모험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이상의 매력이 있는 게 확실하다. 내게 이 책이 저자가 어느 수다자리에서 들려준 재미있는 이야기로 기억되면 좋겠다. 그래서 집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불쑥 떠올라 내게 잘 맞는 집을 선택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해주길... 그래서 나도 내게 잘 맞는 편안한 옷 같은 그런 집을 누릴 수 있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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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드라마가 이도우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을 알고 원작 소설의 내용을 검색해봤었다. 1회와 2회를 보고 나니 드라마에서 앞으로 펼쳐질 내용이 궁금해서였다. 과연 해원과 은섭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해원의 이모는 왜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지, 해원의 어머니는 왜 남편을 죽였는지, 은섭은 왜 산에 남다르게 익숙한지 궁금한 게 많았다. 이쯤 되면 차라리 책을 후다닥 읽는 게 더 낫겠다 싶었으나, 언젠가부터 나는 소설책은 사지 않는다. 나를 홀릴 만한 소설책을 찾아 늘 기웃거렸으나 찾지 못했고, 그래서 소설책을 사지 않은지 한참 됐다. 내용이 궁금한 소설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곤 했다. 그러고 나서 소장하고 싶어지면 살 생각이었는데, 책욕심 많은 내게 그런 욕구를 불러 일으킨 소설은 한참 동안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변수가 됐다. 도서관이 장기휴관에 들어가면서 책을 빌릴 수 없게 되었는데, 내용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사기는 싫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전자도서관이었다. 문제는 전자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의 종류가 많지 않다는 것. '날씨가...'는 없고 이도우 작가가가 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라는 소설만 있었다. 안 그래도 이도우 작가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많이 본 글이 '날씨가...'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게 '사서함...'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바로 대출하고는 읽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 먹은 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밤이 깊어가도 뒤의 내용이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잡으면 결국 끝을 보고야 마는 성향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성향 때문에 소설책을 쉽게 손에 잡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 내 현실에는 소설책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가하니까... 결국 밤을 새워가며 읽은 끝에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서야 잠들었다.

앞부분에 등장하는 공진솔의 오랜 습관을 보고 이미 내 마음은 진솔에게 기울 수밖에 없었다. 일이 손에 안 잡히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 연필 몇 자루를 깎는 습관은 내게도 오래된 습관이라... 그것말고도 긴 종로 거리를 걸어 교보문고에 도착해서는 아픈 다리를 쉬어간다는 개념으로 오래 책을 읽곤 한 청춘시절의 이야기도... 시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생각도... '어쩌면 이 여자는 '나'일지도 모르겠구나.'하는 생각으로 계속 읽게 되었다. 세상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무의식적인 끌림이었다.

'비죽거렸다, 민숭민숭하네, 거치적거리다, 피식 실소했다,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나왔더니 복장도 헐렁하고, 도 닦는 사람처럼 헐렁헐렁, 입가에 미소가 묻은 채로' 등 흔하게 볼 수 없는 단어를 접한 반가운 느낌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함께 쓰여 오히려 빛을 발하는 데서 오는 신선한 느낌,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질 정도로 상황과 대상을 구체적이면서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서술 방식, 인물이 머릿속으로 생각하거나 혼자 읊조렸을 법한 문장까지도 서술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여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세련됨 이 모든 것이 차분하지만 힘 있게 느껴졌다. 앞 부분을 어느 정도 읽었을 때 이미 '아... 이 작가는 이 이야기를 깔끔하게 잘 마무리 짓겠구나.'하는 믿음이 갔다.

처음엔 뭐든 가볍게 여기고 멋대로 행동하는 한량 같아 보였으나 100%의 진정성을 가지고 사랑 앞에 섰던 남자 이건, 그의 군대 시절 이야기로 인해 '양떼같이'의 새로운 쓰임을 알았다. 사랑 앞에서 주춤거리다가 결국 도망을 선택한 진솔의 마음을 돌린 그의 진정성, 자신의 마음을 용기 있게 직시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 인생에서 달아나지 말라고 말하는 그의 용기는 잔잔하지만 뜨거웠다. 매사에 심드렁하게 보였지만 적어도 자신의 현재의 삶에 대해서는 진솔하고 열정적이었으니까... 그의 모습에서 그의 할아버지 이필관의 모습도 보이는 것도 재미있었다. 호탕하고 자유분방하게 산 것처럼 보였지만 그 분도 매순간 자신을 들여다 보고 뜨겁게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주춤거리는 진솔의 마음을 잡아 이건에게 건네준 분.

읽어가다 보면 어느 새 이야기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이 때는 진솔이 이런 표정을 지었겠구나, 이 장면에서는 이건이 이렇게 행동했겠구나 하며 저절로 머릿속에서 드라마로 바꿔 상영하게 만드는 것도 이도우 작가의 필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다. 이래서 그 많은 서평에서 오랜만에 마음을 설레게 만든 소설이라는 찬사가 쏟아졌구나, 나도 저절로 이해 당하고 말았다. 인물의 정서를 이토록 따뜻하게, 그러면서 섬세하게 표현하니 저절로 빠져들 수밖에...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도 아마 그럴 것이다. 매 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보게 되겠지. 기대가 된다.

이틀 동안 이 작품을 읽으면서 현실에서 쌓인 불안감과 초조함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이것이 설렘이 가진 치유의 능력이고, 소설이 가진 힘이 아닐까. 이도우, 그녀의 작품 안에서 이틀 동안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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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에서는...

 유진에게 보낸 요셉 선교사의 편지 내용이 다했다.

'고귀하고 위대한 자여, 나의 아들아.

네가 어디에 있든 너를 위해 기도하마.

기도하지 않는 밤에도 늘 신이 너와 함께 하길 바라며...'

 요셉 선교사는 유진에게 정말 아버지가 맞았다. 부모의 소망과 사랑이 여실히 담긴 내용이라 유진의 목소리로 나올 때도, 애신의 입에서 나올 때도 뭉클했다. 드라마가 끝나고나서도 저 기도문 같은 글이 머릿속과 입안에서 맴돌았다. 내 아이를 위한 엄마의 기도로도 딱이라서... 어느 구절 하나 버릴 게 없고 넘치는 것도 없으니 정말 명문이라 아니할 이유가 없다.

 

 

16화에서는...

 김희성과 애신의 파혼 문제로 고사홍 대감댁이 뒤집힌 후, 김희성이 함안댁과 행랑아범에게 국밥을 사 주는 장면. 애기씨, 도련님, 공사관나리 아무도 잘 된 사람이 없고 쓸쓸해 보이기만 한다며 함안댁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말하는데, 왜 내가 눈물이 고이는지...

 함안댁이 말한 그 셋 중 누구 하나도 상처 입지 않으면 좋겠다. 구동매도, 빈관 주인도, 고사홍 대감도... 대상이 누구건 마음에 사랑을 품은 자 모두 그 희망이 헛되지 않으면 좋겠고 오래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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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안댁의 재발견

 애신의 최측근 중 왼팔처럼 보이나 실은 오른팔이라고 행랑아범이 인정한, 왠지 정말 그래 보이는 배포 큰 여인, 그러나 '알리바이'라는 유진초이의 말에 "아, 그래 자꾸 알리싸코 하면 안 된단 말인데..."하며 기겁 하는, 귀여운 면도 있는 이, 애신이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애신이 몰래 하는 모든 것들을 몸을 던져가면서까지 덮어주는 진정한 애신의 오른팔... 오늘은 함안댁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는 인물... 두 번째는 행랑아범. "그것이 나으 전략이제."는 들을 때마다 치명적이다.ㅋㅋㅋ

 

2. 유진초이의 수난시대

 행랑아범이 약방출입의 알리바이로 쥐어 준 한약은 마시는 게 아니라 족욕용이었고, 국문을 모른다는 사실을 애신에게 들켰고, 유난히 미끄러운 겨울강을 애신과 나란히 걸으며 애신에게 주의하라고 하다가 자신이 오히려 미끄러지고... 결국 자신이 9살에 도망치듯 조선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애신에게 말하게 된다. 조선에서 자신은 노비였다고도... 앞으로 둘은 어떤 관계로 변화될지...

 

3. 외무대신 이세훈의 최후

 자신보다 힘 약한 이는 자신이 소유한 물건보다도 못하게 여기고, 자신의 이익 앞에서만 고개 끄덕이는 용수철인형마냥 잘도 수그러지는 고개를 가진 이... 정의, 신념 이런 건 단어조차 모르는 듯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비열한 이... 어찌나 얄미운지 모함을 당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해도 하나도 불쌍하지가 않다. 내가 좋아하는 한자성어가 두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인과응보'다. 그를 두고 한 말 같다.

 

4. 그밖에...

 -변요한은 이전보다 얼굴이 더 헬쓱해졌다. 정혼을 깨자고 일부러 찾아온 애신에게 동무로 남자며 당구를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애신에게 더 빠진 것 같다, 그의 눈빛이... 고동매가 자신의 총에 맞은 의병이 젊고 다리 저는 사내라 하자 일부러 다리를 절며 나갔다. 말마다 '꽃' 운운해서 애신의 무시를 받는 터라 안 그래도 안스러운데 불쌍지수가 1 증가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조선이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 믿기에 무기력하게 살 수밖에 없는 당시 인텔리 조선인의 표상이 아닐런지... 그러나 "그쪽 다리 아닌데... 뭘 알고 저러는 건지..."라는 고동매의 말에 나도 모르게 풉~.

 

-김희성, 고동매, 유진초이, 이 세 남자가 모이면 모두 굳은 표정, 진지한 분위기인데 웃기다. 서로 주고 받는 문장이 짧은데 박자에 라임까지 딱딱 맞춰가면서 언어유희의 향연이 펼쳐져서... '-인 조선인', '안다', '진심이다', '다리 저는 놈은 이완익이어야지' 등등...

 

 

-"작금의 조선이 어떤 줄 아느냐? 작금의 조선엔 조선의 것이 없다. 이런 나라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보통 내 앞에 오면 불문곡직 무조건 살려달라고 부탁하거든. 그 자는 그냥 죽이래. 그런데 그게 진짜인 거야. 거기서 내가 이미 졌더라고. 이해가 가야 말이지. 한낱 지게꾼이 나라에 목숨을 건다는 게..."

"칼로도 벨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의롭고 뜨거운 마음 같은 거... "

이 대사들을 듣는데 촛불집회가 떠올랐다. '이게 나라냐?'라는 슬프고도 뭉클한 구호도 함께... 그때나 이때나 나라를 구하는 건 백성들인가 보다.

 

-인터넷에 도는 다른 애청자들 말처럼 자막을 켜고 봐야 할 것 같다. 유진초이의 대사는 여전히 정확하지 않게 들리는 부분이 많다. 고종이나 이정문 대신이나 외무대신, 고동매 등 다른 인물의 대사가 알아들을 수 없었던 적이 없는 걸 볼 때 음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낮고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발성은 배우의 기본일 텐데,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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