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 벚꽃이 흐드려졌던 곳은 이제 이렇게 녹음이 한창이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라 사진 찍기에는 좋았는데,
아침 햇살치고는 너무 따뜻해서 오후가 되면 뜨거울 줄 알아봤다.
역시나 오후에는 용광로...
사진 찍기에도, 걷기에도,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알아보기에도
너무 더웠다.
예쁘고 좋아서 내가 직접 누리고 싶은 것이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워서 그저 바라보고만 싶은 것이 있다.
음... 나만 그런가...ㅎㅎㅎ
사범대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있는 저 나무와 벤치가
내게는 보고만 있어도 기분 따뜻해지는 그런 장소다.
앉아보면 그냥 벤치다.
특별히 좋을 것 없는 그냥 보통 벤치.
그런데 저렇게 햇살과 나무 그늘이 만들어 낸 묘한 무늬가 드리워진 벤치는
특별해진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내가 앉았을 때보다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때 더 마음 따뜻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특별한 벤치.
나중에 내가 다시 여기 올 일이 없어진다 해도
저 햇살과 나무 그늘 아래 저 벤치는 기억이 날 것 같다.
이 때 이미 햇살이 지글지글 수준이었다, 아침인데도.
그런데 그런 햇빛을 고스란히 받고 서 있는 저 두 아이를 보니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저 옆에 그늘도 있고만
왜 하필이면 이 뜨거운 햇빛을 고스란히 받고 서 있는지...
가을이면 곁에 가서 한번 앉아볼 텐데, 장난스럽게...
그러기엔 저 돌벤치도 너무 뜨거웠다.
중앙도서관 앞에 이렇게 오가는 차도 사람도 하나도 없는 순간이 있다니...
그냥 바라만 보기엔
나무도 너무 푸르고, 햇살도 너무 밝고, 하늘도 너무 맑았다.
모든 자연의 색들이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싱싱함을 뽐내는 것 같아
나라도 봐 주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한 컷 담았다.
공대 건물의 외부 디자인도 참 마음에 드는데,
옆의 잔디밭에 이런 조형물도 있다.
조형물도 공대스러운...ㅎㅎㅎ 잘 어울린다.
저 조형물 주변에 하얀 클로버 꽃들이 무리지어 군데군데 피어있었는데,
그 꽃들과 뭔가 부조화스러우면서도 조화로워 보였다.
무생물의 차가운 금속과 예쁘고 따뜻한 느낌의 생명체인 꽃...
마치 전쟁과 평화, 죽음과 삶 같은 느낌...
이 날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끈 곳은 여기다.
인문대 사이의 중정 같은 곳.
따뜻한 햇빛도 있고,
벤치와 테이블도 있고,
등나무가 만들어준 그늘도 있고,
시원한 바람도 머리칼을 흐트러뜨릴 정도로 간간이 불었다.
영화 '위대한 유산'의 음수대 같은 분위기도 있고,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 같은 느낌도 있는 곳.
그 두 영화와의 차이가 있다면
'위대한 유산'의 음수대보다는 따뜻하고
'언어의 정원'보다는 밝다는 것이다.
가끔 오가는 이만 있을 뿐, 이 좋은 장소를 나 혼자 누렸다.
이 날 한 메모를 옮겨본다.
'밖에 있고 싶었던 날.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산들산들 시원했다.
건물 안에 있기에 아까운 날씨여서
오전에는 내내 걸었다.
나는 머리속이 복잡해지면 무작정 걷게 되나 보다.
3주 정도 서울대에 오지 않았기에
그 새 달라진 경치를 구경하겠다고 걷기 시작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캠퍼스 가장자리를 따라 걷고 있었다.
하필 내가 가는 방향은 오르막길.
그 길을 왜 이렇게 해가 쨍쨍한 날 걷냐고...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도
하늘이 맑고 바람이 시원하고 햇빛이 따뜻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걷고 나니 뱃속이 허전해져서 좀 이른 점심을 먹고
인문대 앞 정원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2시간 동안
싸 가지고 간 일거리들을 해결하고서야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역시 실내에는 건조한 에어컨 공기가 꽉 차 있었다.
밖에 바람이 얼마나 좋은데...
창은 다 닫은 채 텁텁한 에어컨 바람이라니...'
벌써 저 시간, 저 햇빛, 저 고요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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