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아이가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다. 수학여행을 제외하면 긴 시간 동안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게 된 것이다. 같은 서울 안에 있고 한 시간 남짓 가면 만날 수 있지만, 아이의 얼굴을 못 본 채 24시간을 넘겨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참... 괴.로.웠.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 학교에 통학하느라 눈이 퀭해진 아이를 보는 것만큼... 집에서 통학하는 것보다 시간이나 체력 면에서 아이에게 더 잘 된 일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는데도 그랬다. 집 문제로 몸도, 마음도 힘든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물도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입사식을 하고, 준이사 수준으로 가져간 아이의 짐을 정리해주고, 기숙사 일과에 따라 자율학습을 하는 중인 아이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아이의 옷장에 급하게 쓴 메모를 남겨두고 돌아오는 길은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의 손길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살짝 흐트러진 이불, 벗어놓은 아이 실내복과 수면양말, 설거지통에 담겨있는 아이의 아침식사 밥그릇, 소지불가라 집에 두고 간 아이의 휴대전화,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된 아이의 방... 무엇보다 아이의 방을 보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전날 밤 마치 '떠나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한참을 청소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는데, 휑한 아이의 책상을 보니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금요일이면 올 텐데, 머리로는 그걸 아는데 마음은 아니었다.
이렇게 마음이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사감 때문이다. 기숙사 입사 첫날이라 잔뜩 긴장해 있는 아이들을 권위적이고 고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았고 나도 겪고 나니 신뢰감이 생길 겨를도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질서를 잡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다는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사감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휴대전화도 못 가져갔는데 아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떡하지?', '나도 싫은 저런 사람을 아이가 참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기숙사에 아이를 보낸 것이 잘못한 일은 아닐까 하는 공포가 밀려왔다. 그런 곳에 아이를 두고 왔으니 내가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입사 다음 날 수업이 끝났을 무렵 학교 공중전화로 전화를 했다. 사감이 '-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감시, 통제해서 감옥에 있는 것 같다고, 집에 가면 안 되냐고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자니 당장 데리러 가겠다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집에서 통학하면서 힘들었던 걸 생각해 보라며 아이를 달랬다. 나 역시 그걸 생각하니 아이를 데리러 갈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돈이 많았더라면 학교 근처에 바로 집을 사서 아이가 기숙사에 안 들어가고 편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아이가 고생을 하는 것 같아 그래서 더 괴로웠다.
수요일, 기숙사 입사 서류를 갖다주러 학교에 가서 만난 아이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병원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가까운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원인은 역시 스트레스...ㅠㅠ 아이의 상황을 대충 말씀드렸더니 나이 지긋한 의사선생님께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며 여러가지 친절한 조언을 해 주셨고, 약을 사러 들른 약국의 할머니 약사님께서도 처방전만 보고도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며 안스러워해 주셨다. 처음 만난 분들인데도 아이의 입장을 헤아려주고 이해해주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는 걸 보면서 아이도 조금은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나 고맙던지...
목요일, 종례가 끝났을 무렵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도 학교 근처에서 볼 일이 있어 가던 중이었다. 기숙사 입사생 중에 수두 환자가 발생해서 전원 퇴실하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했다. 짐을 대강 챙겨두고 저녁식사 하고 있으라고 하고는 서둘러 갔다. 이유가 뭐건 간에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는 게 얼마나 좋던지... 가 보니 기숙사 소독은 다 끝난 상태라 했고 급한 대로 아이들이 짐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짐을 다 가지고 나왔고 수두 잠복기가 지난 후에 다시 입사하기로 결정되었다. 그 사이 아이는 감기에도 걸려서 지금 약을 한 수저씩 먹고 있다...ㅠㅠ
금요일, 다시 집에서 일어나 등교하는 길.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등교하는 건데도 3월초처럼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기숙사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장도 집에 오자마자 증상이 확 나아졌다는...ㅠㅠ 웃프게도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나도 입맛이 생겨서 밥을 먹게 되었다는...ㅠㅠ 아이가 없는 동안에는 하루에 한 끼도 의무적으로 간신히 먹었는데... 이러다 큰 일 나지 싶었지만 정말 입맛이 없었다.
집에서 통학하는 동안 아이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먹여서 몸의 건강도 회복하게 돕고, 어디에 있든 하나님이 항상 함께 있고 엄마가 기도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다독이고... 아울러 내 마음도 재정비해야겠다. 다시 아이를 기숙사에 들여보낼 때에는 이번 주처럼 힘들지 않도록...
아이나 어른이나 변화를 받아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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