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늘 식사시간 전이면 아이에게 뭘 먹고 싶은지 묻는다. 아이의 취향을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은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난 딱히 먹고 싶은 게 없기 때문에 아이의 선택에 맞춰 준비하려는 의중이 숨어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이도 나와 똑같다는 것이다. 둘 다 지독히 입 짧은 스타일...😭
어제 새해 첫날 아침에 떡국을 먹을지 물어봤는데 아이가 대답을 안 하는 것이다. 아직 마음에 결정이 안 되었나 싶어서 한참 후에 다시 물어봤는데 또 대답을 안 하고 슬쩍 자리를 피한다. 참고로, 난 같은 질문 두 번 이상 하는 것을 싫어 하는 성격이다. 내가 듣는 것도 싫을 뿐더러 남에게 하는 것도 싫어 하는데, 그걸 참고 두 번을 물어봤는데, 으...😬 떡국을 끓이면 사골국물에 매생이를 넣고 끓여볼까 했기에 준비가 필요해서 묻는 건데, 왜 대답을 안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단 냉동실에서 매생이 한 덩어리를 꺼내 놓았다.
드디어 새해 첫날인 오늘 아침,
👩:아침에 떡국 먹을 거야? 매생이떡국 끓일까 하는데, 괜찮아?
아이:......
👩:😡 왜 대답을 안 해??? 어제부터 지금까지 세 번이나 물어 보잖아???(유치함 폭발🔥🔥🔥)
아이:😢... 떡국 꼭 먹어야 해요?
👩:아니. 다른 것 먹어도 돼. 보통 새해 첫날 아침에 떡국을 먹으니까 먹을지 물어 본 거지.
아이:성인이 되는 것 싫어요. 떡국 먹으면 한 살 더 먹잖아요...😭😭😭😭😭
👩:얘!!! 나이는 시간 가니까 드는 거지, 떡국 먹어서 나이 드는 거 아니잖아???
아이:아는데... 그래도 싫어요😭😭😭😭😭
이게 이렇게 진지하게 싫을 일인지... 아이의 진지함에 웃음이 삐죽삐죽 나오기도 하고, 한편 안스럽기도 했다. 얘는 세상 이치를 뭐 이리 정확하게 보는지... 5살 때에도 어린이집에서 다른 애들을 보니 동생이 책에 낙서하고 장난감 망가뜨려서 힘들어 한다면서 자기는 동생이 없어서 좋다고 진지하게 말해서 '얘, 뭐지???' 생각하게 하더니, 지금도...🤔 '역시 너의 까칠함은 천성이었구나... 꺾으려 하지 않길 잘 했어.' 생각하게 하는 2021년 첫 아침이었다.
오늘 중 해 먹으려고 재어 둔 소불고기가 있어 익혀서 섬초무침과 함께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떡국떡은 꺼내지도 않았고😂 매생이는 조용히 냉장실에 두고... 불고기를 싱겁게 간 했더니 밥과 함께 김치에 싸 먹기에 딱 좋았다. 아이도 기분 좋게 잘 먹었다, 밥.
'올해 네가 더 많이 행복해 하면 좋겠다.'는 기도로 시작하는 2021년 첫날... 하지만 대답은 한 번에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는 2021년 첫날... 오늘도 일상은 변함없이 흐른다.

#일상으로의초대
#나이먹는게싫다해도나만큼싫을까👉👈
#속으로만궁시렁궁시렁🔥🔥🔥
#소불고기 #매생이 #떡국 #새해첫날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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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릉하는 천둥 소리가 신호였다. 아이가 창을 열고 밖을 보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눈이 많이 쌓였고, 지금도 펑펑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나가서 눈을 맞아야지~
다행히 골목엔 아무도 없었다. 잠깐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데도 어깨에 눈이 쌓이고 옷 색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붙었다. 조금만 더 서 있으면 인간눈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실내복 차림으로 달려나간 거라 오래 있기엔 추.웠.다.
골목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밤이라고 생각한다. 추운데 따뜻한 정취가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때... 뭘 더 생각하나, 아름다움은 할 수 있을 때 느끼고 누려야지~

#일상으로의초대
#길다니는분들은미끄러지지않게조심
#내일많이춥다는데그대로얼면도로큰일
#함박눈내리는밤 #낭만가득 #아름다움 #골목밤

풍경 #가로등 #철없는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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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부터 마약김밥이 먹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사람들이 겉만 보고 내가 음식을 깨작깨작거릴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편견이다. 내가 아는 '나'는 입에 맞는 음식 앞에선 제일 먼저 수저를 들고 제일 늦게까지 수저를 놓지 않는 사람이다. 한꺼번에 왕창 많이 먹진 않지만 눈에 안 띄게 조금씩 꾸준히 먹는 스타일...😂 게다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끝내 먹고야 마는 스타일. 먹고 싶은 게 분명한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마약김밥은 단무지와 당근이 들어가는데, 무슨 연유에선지 단무지와 오이가 들어간다고 굳게 믿고 오이를 사 놓은 나.😓 거기에 집에 있는 단무지는 김밥용이 아니라 꼬들단무지. 떡볶이를 해 먹을 때에도, 우동을 끓여 먹을 때에도 꼬들단무지를 함께 먹어야 해서 얼마 전 아예 1kg을 사 놓은 터였다. 원래 마약김밥은 파래김으로 싸는데, 현미와 귀리가 많이 든 밥으로 쌀 거라서 터질까봐 김밥용 김을 준비했다. 여러모로 내 식대로의 마약김밥일 수밖에 없는 상황.
1/4 크기로 자른 김 위에 밥 한 숟가락을 펴고 오이와 단무지를 넣고 돌돌 말면 끝~ 들어가는 재료가 간단하니 속이 가운데 오지 않을까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마약김밥은 겨자장 맛으로 먹는데, 그것도 *뚜기 가스오부시 장국에 연겨자 푸는 걸로 끝~
국은 봄동된장국. 멸치 없이 다시마만으로 기본국물을 내고, 깻잎찜에서 남은 양념을 넣어 향긋하고 담백하면서 칼칼한 끝맛이 있어 좋았다. 덜 짜고 안 맵고 끝맛만 잠깐 찌르르 매우면서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고추지를 좋아하는데, 바로 그걸 찾아 사서 요즘 아껴가며 먹고 있다. 썬 무를 살짝만 말려 불리지 않고 바로 되직한 양념에 버무려 꼬들함과 아삭함이 둘 다 살아있는 무말랭이무침도 요즘 최애반찬.😋 둘 다 오늘의 마약김밥과도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김밥도 그렇지만 마약김밥도 먹다 보면 평소의 밥양보다 많이 먹게 된다. 이 점을 노리고 아이 좀 많이 먹게 하려고 했는데, 오늘 나만 과식했다. 내가 먹고 싶어 만든 거라 당연한 결과인가...

#슬기로운식생활
#내식대로마약김밥무말랭이무침봄동된장국내가했는데도맛있어
#간단하고맛있는겨자장만들기 #고추지취향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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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주 아이가 학교에서 단체로 소변검사를 했었는데, 원격수업 중이던 지난 주 담임교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단백뇨가 의심되니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고 회신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아이와 관련되어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마음부터 쿵~ 내려앉는 나... 세월이 흘러도 적응되지 않는 일... 아이가 보는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딸의 단백뇨를 치료하느라 마음 고생하는 분도 봤기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검사를 의뢰할 병원 1순위로 떠오른 곳은 똘똘이 스머프 같은 눈빛을 가진 반백의 의사선생님이 진료 하는 가정의학과였다. 이 동네에 이사 오기 전부터 동네 토박이분으로부터 추천 받은 병원이었는데, 아이가 아파 갔던 첫진료 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의료보험이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라 병원은 돈을 많이 못 벌어도 국민 입장에서는 비용이 얼마 안 드니 아프면 참지 말고 병원에 오라는 솔직한 말씀으로 내 긴장을 무장해제시킨 의사선생님 덕분에 아이의 고정 병원으로 삼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아이가 얼굴이 반쪽이 되어가고 있었고, 퇴근하자마자 아이와 만나서 가느라 병원 문닫기 직전에 진료를 받은 날이었다. 긴장과 피로가 아마 아이와 내 얼굴에 묻어 있었을 것이다. 의사선생님은 예의 그 똘망똘망한(어른이신데 이렇게 표현해서 죄송...) 눈빛과 소년같은 미소를 발사하며 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니 국민으로서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며 수치까지 자세히 인용하셨고, 아이에게 앞으로 아프면 혼자라도 병원에 오라는 말씀으로 끝맺으셨다. 팩트와 유머가 잘 버무러져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는 그분 특유의 표현방식 때문에 나도 모르게 빵~ 웃음이 터졌고, 아이뿐 아니라 나도 재미있으면서 다정한 위로를 받은 날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스포츠에도 일가견이 있는 실력 있는 분이셨다. 그 후 아이가 아파서 갈 때마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아라, 그러나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한다며 시크한 큰 형님처럼 위로를 해주셨고, 결정적으로 작년 아이가 위급했을 때 큰 사안이었는데도 응급처치를 바로 잘 해 주신 덕분에 아이의 고생을 덜 수 있었다.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다시 수술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그 때 처치가 잘 돼서 재발 여부만 관찰하면 된다고 했다. 똘똘이 스머프 의사선생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다시 아이 몸에 칼을 대는 일은 생각만 해도, 으... 올해 초 독감 확진을 받았던 곳도 그 가정의학과여서, 그 때 의사선생님께 대학병원에서의 진료 결과를 말씀드리고 고개 숙여 감사를 드렸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생 의사선생님으로 이정길소아과 선생님을 꼽는데, 똘똘이 스머프 의사선생님은, 멀리 이사 와서 아이가 더이상 이정길선생님께 진료 받지 못 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정길선생님의 변신버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믿음이 간다. 두 분 다 평소 잘 웃고 농담을 하는 분이 아닌 것 같은데, 내 아이가 진료실에 들어서면 "우리 **이 왔니?" 하면서 활짝 웃어주신다. 아이와 나의 두려움과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진료하는 내내 이 얘기, 저 얘기 유머 섞어 해 주시는 것도 두 의사선생님의 공통점이다. 이러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치유해주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믿음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담임교사의 문자를 받고 바로 가정의학과에 문의해 보니 단백뇨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이번 주 월요일에 소변검사를 했고, 그 결과가 나오는 날이 어제였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찌나 불안하던지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똘똘이 스머프 의사선생님께서는 우리를 보자마자 "괜찮은데요!?!?" 하며 활짝 웃으셨다.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니 앞으로 주기적으로 검사만 하면 된다고 했다. 웃으면서 그렇게 말씀한 후, 아이를 향해 "요즘 스트레스가 많지? 그래도 죽을 만큼 공부해야 돼~ 아니, 그렇다고 진짜 죽으면 안 되고..." 하셔서 이번엔 내가 웃음이 터졌다는... 의사선생님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아 잠시 숙연했던 아이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선생님의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웃음...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병원에 갈 때에는 하늘도, 가로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따로 식이요법을 할 필요도 없다고 해서 아이가 먹고 싶다는 샌드위치를 사서 달랑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천이 가로수라는 것도, 하늘이 티 없이 푸르다는 것도 눈에 잘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새 날, 오늘... 불안이 100% 가신 건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또 충실히 살았다. 앞으로도 우리 앞에 문제는 주어질 것이고 해결할 수 있는 길 또한 펼쳐질 것이다, 어제처럼... 그 믿음을 가지고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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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의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났다. 그 다음 주는 원격수업이었다. 고3도 이제 격주 등교라는 학교의 알림을 받았으나, 그래봐야 수능 전 고3이 등교하는 주는 이번 주와 11월초의 한 주가 전부였다.

중간고사와 이어진 원격수업 후 등교한 첫날이 이번 주 월요일이었다. 이번 주에 중간고사 답안지 확인도 해야 했고 고3용 학사일정들이 몰려 있었는데, 월요일 아침부터 11월에 등교하는 5일 모두 가정학습을 신청하겠다는 아이들이 많았나 보다. 담임교사가 11월에 가정학습을 신청할 학생의 수를 조사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고 한다. 하긴, 기말고사 범위는 교과서 전체라고 하며 자습만 시키는 교실 상황에 등교하겠다는 고3이 얼마나 있겠는가. 몇몇 어이 없는 담임교사의 대응이 이어졌으나,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아이네 학급에서 8명을 제외한 모두가 가정학습을 신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이 아이가 수능 전에 마지막으로 등교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수능 전날, 수험표를 받으러 학교에 가긴 하지만 그건 수업일은 아니니까...

돌이켜 보면, 아이를 제도권 교육으로 들여보낸 뒤의 12년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강에 아이를 보내는 마음이었다. 매일매일이 그랬다. 아침마다 그랬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아슬아슬함이 더 심했다. 그래서 오늘, 하교한 아이가 담임교사의 분통 터지는-내가 보기엔 유치할 정도로 감정적인... 물론 내 아이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대응 때문에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말들을 다 들은 후 이렇게 말했다, 12년 동안 고생했다고... 진심이다. 그 12년 동안 아이를 학교에 볼모로 보내는 심정을 참고 참아온 나도 고생했다.

이제 아이는 수능 전까지 오롯이 내게 맡겨졌다. 긴장된다. 하지만 학교에 보낼 때와 비교도 할 수 없게 마음이 편하다.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 24시간을 함께 보내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기도 하다. 누가 아이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할까봐 불안해 할 필요 없이 나만 잘 하면 되니까... 한달여가 남았다. 잘 먹이고 잘 키워야지. 3년 동안 받은 상처, 다 아물도록 많이 쓰다듬어 주고 토닥거려 주어야지.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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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오랫동안 비워놓은 게 티가 난다. 여기에 안 오는 동안 휴면처리가 되어있었다는 걸 오늘 알았다...ㅠㅠ

다시 들락거릴 거야. 그 동안 외롭게 두어서 미안...

이유를 들자면, 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난생 처음 겪는-남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팬데믹 상황에 초예민해져서 살다가 잠깐 정신줄을 놓았었나 보다. 그 틈을 비집고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다. 그게 아마 5월 중순쯤... 다행히 내가 정신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는지, 그들이-남자 하나, 여자 하나였다.- 사칭한 AK몰 고객센터와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직접 전화를 해서 확인했기에 그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자임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기사에서나 읽던 그런 사기꾼들과 직접 통화를 하고 대화를 했다는 사실이 가장 소름끼쳤다. 다들 살기 힘들어 하는 이런 팬데믹 와중에도 보이스피싱으로 남의 돈을 갈취하려고 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어이 없기도 했다. 나쁜 것들. 다행히 나는 기분말고는 손해본 것은 없었지만, 이 일로 인해 이 다락방에 발길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뭘 쓰려고 해도 이 일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심적 충격이 컸나 보다...ㅠㅠ

다락방에 안 오는 동안, 고3 엄마로 충실하게 살았다. 원격수업하는 기간엔 뭘 먹여야 하나 고심하며 틈틈이 아이 공부하는 것 잔소리하고, 대입에 대한 자료 찾아 공부하고 뉴스 확인하고... 집 밖은 위험하니 가급적 외출을 삼가다 보니 장 보기도 주로 온라인으로 하고, 과일과 채소를 사야 할 때만 집에서 제일 가까운 가게에 후다닥 다녀왔다. 그것도 열흘에 한 번이었다. 아이가 등교를 시작하고 나서는 더욱 더 긴장 백배해 위생에 신경 썼다.

평소 교육부 장관이 누구인지 이름도 모르고 살아왔기에 아무리 이상한 결정을 내려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 교육부 장관은 정말 싫어서 이름이 외워졌다. 하는 말마다 어찌나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지... 아무것도 책임지긴 싫으니 모든 구체적인 결정은 다 학교장 재량으로 돌려버리고, 플랜B가 없으니 수능은 절대 연기할 수 없고... 그럼 교육부 장관이 하는 일은 도대체 뭔지... 하필 이 엄중한 시기에 저런 사람이 결정권자라니...ㅠㅠ 30명이 넘는 인원이 책상 간격만 몇cm 더 띄운 채 하루종일 한 교실에서 생활해야 하는 긴장감,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해서 오는 호흡 곤란과 두통과 귀 아픔, 이런 것을 교육부 장관이 단 하루만이라도 꼬박 학교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겪어보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도 '고3 매일 등교'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지쳐서 두어 시간은 자야 했다. 하필 이런 시국에 고3인 아이가 안스러워서 눈물이 날 때가 많다. 

2학기 들어서도 고3은 매일 등교했는데, 하루 6-7교시 중 거의 대부분이 자습시간이라는 말을 듣고 학교의 처사에도 실망이 컸다. 다른 학년의 격주 등교로 빈 교실이 남는데도 30명이 넘는 학급인원을 분반하지 않을 때부터 이미 학교에 실망은 했지만... 학교생활하느라 버려지는 시간이 올해의 고3들에게 얼마나 금쪽같은지 정말 모르는 걸까. 입시때문이라면 필요한 학생만 학교에 부르고 고3 전체는 다른 학년들처럼 격주 원격수업을 하면 될 텐데... 결국 아이의 공교육 기간 12년 중 단 한 번도 이용한 적 없는 체험학습을 올해 2학기에 신청했다. 아이를 키우며 우리나라의 교육을 점점 더 신뢰하지 않게 되긴 했지만 올해는 정말 대실망이다. 교육부 장관과 학교의 콜라보가 이룬 결과다. feat. 코로나바이러스ㅠㅠ

보이스 피싱 사건 이후에도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쓰지 않으련다. 이 곳에 적느라 다시 생각하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올해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이 '끝까지 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올해가 갈 때까지 이 마음으로 버텨보려고 한다. 당장은 뭘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 와중에 얻은 게 있지 않을까. 

다음 일기엔 좋은 말들을 쓰고 싶다. 올해 집순이로 살면서 내 생활습관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쓸 일이 있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적기엔 맥락이 영 아니어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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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다. 어린이 있는 가정들은 다들 놀러 갔는지 동네가 조용했다. 물론 그래서 좋았다는 뜻...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부터 우리 집에서 어린이날은 그저 휴일일 뿐이지만, 난 어린이날이면 혼자 속으로 아이의 어린 시절을 조용히 꺼내어 본다. 후회한다고 해도 소용 없고 그 당시에는 분명 최선을 다한다고 한 것이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미안한 것투성이다. '제발'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바라기는, 그 미안한 일들이 아이에게 상처로 남지 않는 것. 이상하게도 올해는 자꾸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앞을 봐야 할 텐데...

이번 주 들어 기온이 많이 올라 한낮엔 이미 여름 느낌이다. 이제는 냉면을 먹어야 할 때가 온 것 같기도 하고, 오이부추김치를 거의 다 먹어 김칫물만 남을 조짐이 보여 얼른 면을 주문했다. 오이부추김치의 김칫물에 약간의 양념을 더해 냉면을 말아서 먹으면 매운 맛 없이 정말 시원하다. 매운 것 못 먹는 아이가 좋아할 맛. 등교 개학 일정 발표를 보고 나니, 아이가 집에 있을 때 더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큰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등교 이후 매우 바쁜 일정을 보내야 할 것이 뻔하게 보여서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도울 수 있을지 생각 중이다. 일단은 잘 먹이자.

이 동네의 밤공기는 서늘하다.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그 서늘함이 좋아 어제부터 밤이면 창을 조금 열어놓는다. 가을밤과도 비슷한 공기인데, 가을밤이 서글픈 느낌이라면 요즘의 밤공기는 그렇지 않아서 더 좋은지도... 그저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 손을 잡고 천천히 밤골목을 같이 산책하고픈 느낌... 그래서 이 밤에 뭘 자꾸 사부작사부작 하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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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어제 오후부터다, 텁텁하고 후줄근한 대기. 창을 열어놓아도 닫아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적으로 대기가 매우 건조하다는 안전안내문자는 매일 오는데, 이 동네의 어제 오후부터의 습도는 60%가 넘는다. 이렇게 전국을 하나로 퉁쳐서 보내는 성의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안전안내문자, 왜 보내는지 모르겠다. 안 보내느니만 못하다.

꿉꿉한 집안 공기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과일을 사러 나갔다왔다. 늘 다니는 길을 벗어나 조금 더 돌아가는 길로. 연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나도 마스크를 쓴지 1시간이 넘어가니 답답해져왔으니까... 등교개학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기온이 이렇게 올라가니 아이가 하루 종일 학교에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확실한 치료법이나 백신, 어느 것이라도 빨리 명확히 나오면 좋겠다. 

과일들을 사면서 채소도 사왔다. 돼지고기를 굽고 쌈채소를 준비하고, 도라지를 돼지기름에 볶고, 꽈리고추와 마늘로 향을 낸 기름에 콩나물을 볶아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 사 온 뽀얀 가래떡이 맛있어 보여 식사 후에 조금 먹으려고 했는데, 저녁식사와 사과만으로도 배가 꽉 차버렸다. 아쉽지만 내일 먹어야지. 사과를 자르는데 드라마 '화양연화' 3회가 나왔다. 오며가며 드문드문 보는 드라마다. 유지태는 나이가 드니 20대 때보다 더 멋있구나 하는 생각, 유지태의 캐릭터가 영화 '귀여운 여인'의 리처드 기어 캐릭터 같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이 참 마음을 끈다는 생각을 하며... 뻔한 불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고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음악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될 것 같다.

요즘 요일 개념이 많이 흐려지긴 했지만, 주말이 되면 미루어 둔 정리도 하게 되고 청소도 하고 싶어진다. 아무래도 일주일의 매듭을 잘 짓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오늘도 장 보고 들어온 후 채소들을 다듬어 냉장고에 넣고 반찬을 만들고 하다 보니 저절로 묵은 짐을 치우고 청소도 하게 되더라는...

몸을 많이 움직인 날이니 꿈 없는 단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다. 깊고 짧은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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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주에 동네 채소가게에서 채소와 과일들을 조금 사고, 지난 주에 인터넷으로 여러 종류의 가공식품들을 배송 받고 나니 집 밖에 나갈 일이 없었더랬다. 그래도 2주 동안 현관문 밖에 한 번도 안 나갔는데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면 좀 이상하게 보일라나? 교회도 TV로 예배 드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KFC의 감자튀김, 내가 좋아하는 KFC의 비스켓도 집에서 만들어 먹고, 식소다를 구입해서 뽑기도 만들어 아이와 추억을 공유했다는... 도토리묵도 집에서 쑤어 볼 요량으로 가루를 사 놓았다. 이래저래 나의 집순이 실력이 만렙이라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어제 마지막 사과를 먹고 나니 과일이 떨어졌다. 냉장고의 채소칸도 바닥이 드러났다. 장 보러 갈 때가 된 것이다. 하도 외출을 안 했더니 어느 정도 두께의 옷을 입어야 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지난 며칠 동안은 소리만으로도 그 세기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무섭게 바람이 불어 창을 열지 못했는데, 오늘 창을 열어보니 바깥은 완연한 봄날이었다. 계절의 손짓이 느껴지는 날씨라니... 이러니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돌아다니는구나. 

하지만 우리의 외출 시간을 결정한 것은 계절의 유혹이 아니라 밤하늘의 금성이었다. 어제와 오늘이 지구와 금성의 거리가 가까워져 금성이 가장 밝게 보일 때라는 인터넷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해질녘쯤 동네 시장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금성이 평소보다 얼마나 더 반짝거리는지 밤하늘을 보고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단 길에 발을 디디자 조금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해가 지고 있어 조금 서늘했으나 걷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드는 날씨였다.

먼저 아이와 동네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마스크를 했지만 거리를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었다. 뉴스에서 염려하는 대로 큰 길가의 술집은 빈 자리가 없었다. 퇴근 시간이긴 하지만 주말도 아닌데, 게다가 마스크도 없이... 어느 음식점 앞에는 다닥다닥 붙어 선 사람들의 대기줄도 보였고, 길에서도 삼삼오오 취한 채 모여 선 직장인들을 제법 볼 수 있었다. 큰 놀이터에는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로 시끄러웠다. 마스크를 쓰고 있긴 했지만 이해가 되지는 않는 일. 다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알아서 끝낸 분위기였다. 이래서 질병본부에서 이번 주가 고비라고 했나 보다.

계획대로 산책의 끝은 동네 시장에 있는 마트였다. 나는 채소들을 담고, 아이는 간식거리들을 골랐다. 과일은 신선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사지 못했다. 이번 주에 한 번 더 나와서 과일만 따로 사야 할 것 같다. 오이를 많이 팔고 있어서 오이 10개를 담고, 딱 한 단 남아 있는 부추도 집었다. 적어간 리스트대로 집었더니 가지고 간 두 개의 장바구니가 금방 가득찼다. 

저녁 어스름의 속도는 빠르다. 해가 졌나 싶으면 금세 어둠이 몰려온다. 돌아오는 길, 어두워진 하늘에서 금성을 찾아보았다. 가는 초생달 바로 곁에서 달못지 않은 밝기로 맹렬하게 반짝이는 별이 바로 눈에 띄었기 때문에 달을 보니 그냥 바로 보였다. 아, 네가 금성이구나. 예뻤다. 기사 내용처럼 금성도 초생달 모양인지 눈으로는 알아볼 수 없었으나 빛만큼은 평소보다 밝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별은 겨울에만 밝게 보이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반짝이는 금성을 아이와 한참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집에 들어와서는 오늘 사 온 시래기로 시래기된장국을 끓이고, 오이부추김치를 담았다. 오랜만에 코로나 사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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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블랙커피원샷

 

오늘 든 생각 중 지금 가장 마음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겠다.'

이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7화 속 몇 장면이었다. 의사 5인방 중 이익준이 삶을 포기하려는 환자에게 자신의 이혼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 양석형의  어머니가 상간녀와 남편에게 구정물과 걸레를 끼얹는 장면, 안치홍이 뇌수술 중인 환자에게 담담하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하는 장면...

나이가 들수록 감당해야 하는 일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다. 어떤 때에는 나한테 왜 이런 일까지 생기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아직도 그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다. 답을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내게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하면서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게 삶인 걸까? 다들 그렇게 안개를 헤치며 나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나만 이렇게 사나? 그렇담 너무 억울한데... 왜 나만? 시간이 갈수록 크고 작은 물음표만 많아지고 있다. 요 며칠동안은 그 물음표가 화살이 되어 나에게 꽂혀 많이 아팠다.

그래도 오늘은 드라마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내 마음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은 덕분인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연약하다는 걸 너는 모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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