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다시 출발.

일상적인 수다 2014. 3. 29. 17:28

아이의 올해 첫 영재원 수업이 있는 날.

작년에도 일 년 동안 영재원에서 공부했기에 아이는 숙면을 취한 듯한데 나는...

나는 오늘을 맞이하기가 조금 심란했다.

인성이 덜 된 아이와 엄마와 한 조로 엮이면 어떤 일을 당하는지 겪었기에,

2학기에 들어서서 산출물대회 준비가 시작되면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 알기에,

그래서 아마 심란했던 것 같다.

인간이 앞날을 알 수 없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날을 모르기에 절망하지 않을 수 있고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구나,

경험이 불안을 만드는구나,

요즘 깨닫고 있다.

 

엊그제 회식, 어제도 회식...ㅠㅠ

어제는 오늘 아이가 가져갈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빨리 빠져나올 생각이었는데,

빨리 빠져나오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커피 한 잔만 얼른 마시고 가자'는 동료들의 말에 넘어가 밤 10시까지 '커피 한 잔'을 즐겼다는...ㅠㅠ

게다가 그 커피집에서 2차로 커피 마시러 온 일터 동료들을 무더기로 만나

결국 회식 후 2차로 커피+수다까지 단체로 누린 셈이 되어버렸다는...

도망나온 보람이 없었던 회식.

늦게까지 엄마를 기다려야 했던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던 하루.

그러나 늦은 시간의 건전한 일탈(?)이 조금은 힐링이 되었던 하루...ㅎㅎㅎ

 

오늘 아이가 수업을 하는 시간 동안, 학부모들에게는 특강이 있었다.

앞으로의 영재원 교육과정에 대한 안내와 간단한 강의,

작년에는 없던 일정이어서 궁금하기도 하고 살짝 긴장되기도 했다.

영재원의 전체적인 교육과정이 작년과 달라졌고 작년에는 없던 과제도 있고,

무엇보다도 평가와 시상을 하겠다는 설명을 들으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했고 좋은 성과를 내었던 작년에는

제대로 된 평가도 시상도 안 하더니 왜 이제 와서...

수업이 끝나 만난 아이에게 "안 좋은 소식이 있어."하며 평가와 시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니

아이는 예상밖의 반응을 보였다.

"그게 왜 안 좋은 소식이에요...? 저는 원하던 거에요."

그 순간 나는, 내가 아이를 100% 신뢰하고 있지 못했나 보다 하는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었다.

아이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최선을 다 해 공부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나는 내 아이가 부족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영재원에서 돌아오는 길,

오늘 공부한 것을 재잘재잘 이야기하던 아이의 말이 끊긴 것은 짜장면 집 앞에서였다.

평소같으면 춘장에 든 MSG의 양을 이야기하면서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오늘은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한번에 OK를 했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공부,

그래도 난다 긴다 하는 제법 쟁쟁한 아이들과 경쟁해서 합격한 영재원에서의 수업 첫날,

아이의 작은 소망 하나쯤은 들어줄 마음이 있었다.

기분 좋게 짜장면을 먹고 집에 돌아와 긴장이 풀린 아이는 이내 잠이 들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 상태에서 아침에 바삐 나가느라 약도 못 먹고 갔기에

집에 돌아와 약부터 먹게 했더니 이래저래 노곤했던 모양이었다.

이럴 때에는 푹 잘 자게 두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주말이지 않은가.

이럴 때 쉬지 않으면 언제 쉬겠는가, 아이가 기계도 아니고.

양껏 푹 자고 일어난 아이는 깨자마자 책상 앞에 가서 앉아있다.

오늘 가져온 영재원 과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 같다.

늘 생각하는 것 하나, 네가 나보다 낫다...ㅠㅠ

이 일정을 올 한 해 또 어찌 소화할까 하는 생각에

나는 오늘 받은 영재원의 교육일정을 다이어리에 표시하는 것조차 미루어두고 있는데...

올 한 해 열심히 달려나갈 아이 뒤를

나도 열심히 좇아가야 겠다.

다시... 출발이다.

 

 

 

 

'일상적인 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통  (0) 2014.04.19
이 시간에 시작하기.  (0) 2014.04.03
밤...유혹.  (0) 2014.03.25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그리고 꿈 이야기  (0) 2014.03.13
때가 되었다는 신호.  (0) 2014.03.07
Posted by 블랙커피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