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네가 어렸을 때는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었다.

한편으로는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혼자 덩그러니 놓여진 이 시간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뭘 해야 1분 1초를 알차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할 정도로

네가 잠들어서 사위가 조용한 시간은 정말 소중했다.

이 시간만큼은

네가 아닌 나를 위해,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때였다.

이제 네가 어느 정도 자라서

내가 스스로를 위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생겼는데도

나는 네가 잠든 이 시간이 되면 갑자기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따뜻해진다.

우선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만든다.

커피를 마시면서 즐겨 가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들을 둘러본다.

인터넷 서점에 가서 읽고 싶었던 책들도 훑어본다.

그러는 동안 가스렌지에서 저녁 때 먹을 국 끓일 기본국물을 우려내고 있다.

다시마가 붇고 마른 멸치가 통통해지고 딱딱한 꽃새우가 부드러워질 때쯤 되면

불을 끄고 남은 열로 건더기에서 맛이 우러나게 둔다.

밖은 어두워지고 집안 전체에 구수한 냄새가 퍼진다.

이제 채소와 유부를 넣고 다시 끓이다가 된장을 풀 때쯤 되면

네가 잠에서 깰 것이다.

너무 많이 잤다며 속상한 얼굴로 일어나겠지만,

체육에 스포츠클럽까지 한 오늘 같은 날에는 아무리 긴 낮잠을 자도 너를 깨울 수가 없다.

피곤한 상태에서 억지로 공부하는 것보다

차라리 푹 자고 맑은 머리로

짧은 시간 집중해서 공부도 하고 숙제도 하는 게 성과가 좋다는 게 여전한 나의 지론인지라

그냥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둔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일어나서 저녁 먹고 다시 자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이 기계가 아니니까, 컨디션이 좋은 날이 있으면 안 좋은 날도 있는 게 당연하지.

어떻게 만날 그 긴 시간 동안 공부만 하라고 할 수 있는가.

원컨대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해서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 동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기를...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삶의 한 부분이고,

지나가버리고 나면 아쉽고 그리워질 시간일 테니까

그저 행복하고 즐겁게 현재를 누리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블랙커피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