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아이를 따라나서는 길에서는 늘 배울 게 있다. 그래서 늘 즐겁고 고마운 마음에 선뜻 나선다. 이 날 전시회는 아마 아이보다 내가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피카소의 그 단순해 보였던 그림들이 천재성이 낳은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천재인 건 물론 사실이지만, 그 단순해 보이는 그림을 그리기까지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는 이 날 처음 알았다. 단순화는 시와 같다는 설명을 읽고 나니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시인이 시에 쓸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심하는지 알기에... 천재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이는 ET에 대해 모른다, 그 세대가 아니니까... 전시된 코너들을 보다가 이 코너에서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영화 ET 중 달을 배경으로 한 저 장면은 내 유년기의 몇 안 되는 따뜻한 추억이라서... 잠깐 어린 시절에 꿈꾸었던 환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던 코너였다.

 

 

 

 대형 수족관이 아니었다.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과학관 자연사관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물이 어찌나 맑은지, 그 물에서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은 또 어찌나 예쁜지, 게다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저 조명이라니... 넋 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는, 저절로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드는 곳이었다.

 

 

 

 인왕산이지 싶다. 광화문 앞에만 가면 한 번 꼭 저 산을 바라보게 된다. 그냥 편안하고 좋다.그래서 저 산자락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저 산을 볼 때마다 한다. 물론 나처럼 가끔 오가며 보는 거랑 죽 사는 거랑 체감하는 내용이나 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아이가 이번 여름방학 동안 저 산자락 아래에서 봉사활동을 할 일이 있어 동행했었는데, 갈 때마다 무더운 나날이었는데도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깜짝 놀랄 정도로... 그래서 더 '여기 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은 하늘 때문에라도 모든 이들이 사진 한 장씩은 다 찍지 않았을까 싶다. 가을보다도 더 맑고 푸른 하늘이라니... 게다가 구름은 얼마나 많았는지, 그 모양은 또 얼마나 다양했는지, 거기에 손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이 낮게 깔리기까지... 뉴질랜드에서 하늘을 보는 느낌이랄까... 속된 말로 구름이 열일 한 날이지 싶다. 민속박물관 가는 길의 솟대 앞이었다.

 

 

 

 경복궁에 갔던 날이었다. 당연히 무더운 날이었고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햇빛이 내리쪼이는 날이었는데, 오랜만에 내가 매우 좋아하는 궁궐에 간 걸음이었고 하늘이 근래 보기 드물게 예쁜 날이어서 서둘러 돌아올 수 없었다. 헥헥거리면서 볼 건 다 보고 왔던 날... 이렇게 산을 배경으로 바라보는 궁궐의 모습은 편안해 보여서 좋다, 궁궐이 꼭 산에 안겨있는 것만 같아서... 경복궁에 갈 때마다 생각하는 것은 모든 건물들이 온전하게 남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다. 현재 비어있는 땅에 원래는 다 건물이 있었다는데, 만약 그 상태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경복궁의 분위기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화는 있을 수 있겠지만 궁궐은 갈 때마다 안타깝다.

 

 

 

 경회루는 볼 때마다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그 당시 저 2층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은 어떠했을지... 이렇게 바깥에서 보는 경회루가 아름다운 만큼 경회루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도 아름다웠을 것 같다. 왜 난 궁궐에 오면 '그 당시'가 궁금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건물들에 녹아있는 시간의 힘이 자꾸 나를 과거로 이끄는 것 같다. 이 더위에도 연못에 사는 물고기들은 팔팔했다. 내 팔뚝보다도 굵은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퍼덕거리며 유유자적 헤엄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경회루 쪽 하늘의 구름이 새털구름이었다면 그 반대쪽 근정전 쪽 구름은 전형적인 뭉게구름이었다. 게다가 구름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하늘의 반은 덮고 있는 듯했다. 이 사진 밖의 하늘은 다 구름으로 덮여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 밖은 37도의 무더위였는데 근정전 안은 시원했다. 바깥보다 확실히 온도나 습도도 낮은 것 같고, 무엇보다도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나가니 덥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게 다 조상의 지혜인 것 같다. 궁궐에 올 때마다 한옥살이에 대한 열망만 새록새록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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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블랙커피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