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마다
텅 빈 이 공간을 찍어보고 싶었는데,
텅 비어 있을 때가 없었다.
이 날도
우연히 텅 비어 있는 순간을 포착하고 카메라를 꺼냈는데,
셔터를 누르고나니 이미 텅 빈 공간이 아니더라는...
관악산의 저녁 어스름은 유난히 감성적으로 느껴진다.
대운동장 주변의 너른 평지나 슈퍼 301동처럼 아예 높은 곳에서 보면
주변이 시선을 막는 것 없이 탁 트여있어
넓은 하늘을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 영재원 수업이 조금 늦게 끝나면 딱 이 시간인데,
그러면 조금씩 변해가는 하늘을 보느라
평소와 다르게 느릿느릿 걸어서 내려오곤 했다.
이 날은 1월인데도 하늘이 마치 가을 같았다.
오랜만에 나타난 맑고 푸른 하늘이어서
방향 없이 그저 하늘이 많이 보이는 쪽으로 하늘을 보면서 걷다보니
역시 대운동장에 서 있더라는...
멋진 하늘이 배경이 되니 나무 한 그루도 그림 같이 보였다.
아이 영재원 수업은 토요일.
서울대 박물관은 주말 휴무라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리러 가고 하면서 박물관 앞을 그렇게 지나다녔어도
제대로 된 관람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겨울방학 하면서 평일에 영재원에 갈 일이 생겨
일부러 챙겨서 들렀다.
마침 특별전시하고 있는 것은 내가 관심 있어 하는 한복.
상설전시도, 특별전시도 천천히 양껏 보고 나오니
박물관 중정에 저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겨울이 맞긴 한 건지...
싱그러운 풍경.
평일에 영재원에서 한 프로그램은 저녁 6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겨울이라 해는 이미 넘어가서 시시각각 어둠이 덮이고 있었다.
분 단위로 달라지는 하늘색을 보는 것에 홀려
또 느릿느릿 내려오다 보니 행정관 앞에 섰을 때에는
이미 이런 매혹적인 하늘이 되어 있었다.
처음 본 서울대의 야경.
올 겨울은 참 눈 내린 날이 적었다.
영재원의 눈 내린 모습도 아름다울 것 같아 눈 내리는 날 가자고 아이랑 약속했는데,
적절한 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눈 한참 내린 다음 날, 드디어 갔다.
여기는 슈퍼 301동.
역시 가장 높은 곳에 눈이 제일 많이 남아있었다.
여기에서부터 바퀴 달린 신발 신은 것마냥 내리막길을 쭈욱 쭉 미끄러져 내려왔다.
스릴 넘치게...
여름에 처음 갔던 하유재.
내 이럴 줄 알았다.
여름에도 소담하게 예쁘더니,
가을에도 울긋불긋 단풍 사이에서 기죽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겨울 되면 더 예쁘겠네 싶어서 눈 내리면 여기에 꼭 와 봐야지 했는데,
정말 예뻤다.
주변에는 온통 콘크리트 건물들뿐인데도
전혀 생뚱맞지 않고 계절 상관없이 다채롭게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있어
선이며 색이 어느 계절에 봐도 주변과 잘 어울리게 아름답다.
이런 게 한옥의 아름다움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눈 온 후라
나무마다 생크림을 한 스푼씩 얹은 것마냥 눈이 쌓여있었다.
길에 커다란 생크림컵케이크를 하나씩 놓아둔 것 같아
마주칠 때마다 혼자 피식거리며 웃었다.
매운 칼바람이 부는 날씨였는데도
눈 구경을 하며 돌아다니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부지런한 분들의 손길로 인도의 눈은 다 치워져 있었다.
내린 그대로의 눈을 보려면
사람들의 발길이 안 닿은 언덕 위, 잔디밭, 나무 아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남들이 안 보는 곳을 보고 남들이 안 가는 곳을 가면서 눈 구경을 한 날.
올 겨울 들어 겨울을 제대로 누린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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