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어제로 독감약 복용이 끝나고 아이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콧물도 많고 호흡기 전반이 안 좋긴 하지만, 아이의 상태가 안정적이고 가벼워 보여 이제야 마음을 놓은, 그런 하루가 갔다.

고생은 아이가 다 했겠지만, 늘 아이가 아프면 어릴 때 아이가 앓던 밤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내가 고생한 기억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아이의 모습, 아프다고 말하는 옹알거림,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재생되는 것이다. 그 때도 아이는 어지간하면 아픈 내색을 안 해서, 나중에 발견한 후 더 속상해 했던 그런 기억... 내겐 아프면서 미안한 기억이어서, 열로 끙끙 앓으면서도 어릴 적에 앓던 이야기들을 들려달라고 하고는 남의 이야기처럼 듣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망각은 정말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아이라도 그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전염력도 없다 해서 앓는 동안 덮었던 아이의 이불커버며 패드, 베개커버를 몽땅 세탁해서 널었다. 목화솜이라 세탁하기 어려운 이불 속통은 환기가 잘 되는 곳에 널었다가 알콜을 흠뻑 뿌려 말린 후 새 커버를 씌웠다, 베개도 마찬가지로 알콜을 뿌린 후 새 커버를 씌웠다. 이것만 하는 데에도 몇 시간이 훌쩍 갔다. 어제는 쇠고기를 큰 덩어리로 배송 받았다. 앓는 동안 아이는 차려주는 대로 평소와 같은 양의 밥을 꼬박꼬박 먹었지만 숟가락질의 속도는 슬로우모션이었다. 입맛이 없지만 나 생각해서 먹어주는 것...ㅠㅠ 단백질 보충해 빠진 살 좀 붙여 볼 생각으로 아이가 앓는 동안 주문한 것이었다. 문제는 한 덩어리로 와서 내가 직접 잘라야 했다는 것. 근막이나 힘줄은 구우면 쫄깃해지는 식감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부위라 슬라이스해서 따로 모으고, 살코기는 스테이크로 먹을 수 있게 잘라서 소분했다. 냉동실에 넣으니 마음이 든든... 오늘 그 중 한 봉지를 꺼내 구웠는데 다행히 맛도 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대로 소금, 참기름에 찍어 먹게 했더니 먹는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다. 그것만으로도 뿌듯... 걸려오는 전화 한 통화, 문자 하나 없이 그저 오늘 하기로 계획한 일들을 조용히 하나씩 해나가는 하루... 그게 내가 바란 일상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마음이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더욱 더 감사하다.

'슈가맨' 7회, 귀가 즐거워서 이미 본 방송임에도 또 보고 있다. 별이 진다네, 옛 친구에게, 운명은 지금도 여전히 즐겨 듣는 여행스케치의 노래들인데 이제야 소개되다니... 대중에게 메이저급의 인기를 끈 팀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시인과 촌장도 소개될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싶다. 귀도, 마음도 감사한 하루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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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블랙커피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