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10월 마지막 주 아이가 학교에서 단체로 소변검사를 했었는데, 원격수업 중이던 지난 주 담임교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단백뇨가 의심되니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고 회신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아이와 관련되어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마음부터 쿵~ 내려앉는 나... 세월이 흘러도 적응되지 않는 일... 아이가 보는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딸의 단백뇨를 치료하느라 마음 고생하는 분도 봤기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검사를 의뢰할 병원 1순위로 떠오른 곳은 똘똘이 스머프 같은 눈빛을 가진 반백의 의사선생님이 진료 하는 가정의학과였다. 이 동네에 이사 오기 전부터 동네 토박이분으로부터 추천 받은 병원이었는데, 아이가 아파 갔던 첫진료 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의료보험이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라 병원은 돈을 많이 못 벌어도 국민 입장에서는 비용이 얼마 안 드니 아프면 참지 말고 병원에 오라는 솔직한 말씀으로 내 긴장을 무장해제시킨 의사선생님 덕분에 아이의 고정 병원으로 삼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아이가 얼굴이 반쪽이 되어가고 있었고, 퇴근하자마자 아이와 만나서 가느라 병원 문닫기 직전에 진료를 받은 날이었다. 긴장과 피로가 아마 아이와 내 얼굴에 묻어 있었을 것이다. 의사선생님은 예의 그 똘망똘망한(어른이신데 이렇게 표현해서 죄송...) 눈빛과 소년같은 미소를 발사하며 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니 국민으로서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며 수치까지 자세히 인용하셨고, 아이에게 앞으로 아프면 혼자라도 병원에 오라는 말씀으로 끝맺으셨다. 팩트와 유머가 잘 버무러져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는 그분 특유의 표현방식 때문에 나도 모르게 빵~ 웃음이 터졌고, 아이뿐 아니라 나도 재미있으면서 다정한 위로를 받은 날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스포츠에도 일가견이 있는 실력 있는 분이셨다. 그 후 아이가 아파서 갈 때마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아라, 그러나 공부는 열심히 해야 한다며 시크한 큰 형님처럼 위로를 해주셨고, 결정적으로 작년 아이가 위급했을 때 큰 사안이었는데도 응급처치를 바로 잘 해 주신 덕분에 아이의 고생을 덜 수 있었다.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다시 수술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그 때 처치가 잘 돼서 재발 여부만 관찰하면 된다고 했다. 똘똘이 스머프 의사선생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다시 아이 몸에 칼을 대는 일은 생각만 해도, 으... 올해 초 독감 확진을 받았던 곳도 그 가정의학과여서, 그 때 의사선생님께 대학병원에서의 진료 결과를 말씀드리고 고개 숙여 감사를 드렸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생 의사선생님으로 이정길소아과 선생님을 꼽는데, 똘똘이 스머프 의사선생님은, 멀리 이사 와서 아이가 더이상 이정길선생님께 진료 받지 못 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정길선생님의 변신버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믿음이 간다. 두 분 다 평소 잘 웃고 농담을 하는 분이 아닌 것 같은데, 내 아이가 진료실에 들어서면 "우리 **이 왔니?" 하면서 활짝 웃어주신다. 아이와 나의 두려움과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진료하는 내내 이 얘기, 저 얘기 유머 섞어 해 주시는 것도 두 의사선생님의 공통점이다. 이러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치유해주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믿음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담임교사의 문자를 받고 바로 가정의학과에 문의해 보니 단백뇨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이번 주 월요일에 소변검사를 했고, 그 결과가 나오는 날이 어제였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찌나 불안하던지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똘똘이 스머프 의사선생님께서는 우리를 보자마자 "괜찮은데요!?!?" 하며 활짝 웃으셨다.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니 앞으로 주기적으로 검사만 하면 된다고 했다. 웃으면서 그렇게 말씀한 후, 아이를 향해 "요즘 스트레스가 많지? 그래도 죽을 만큼 공부해야 돼~ 아니, 그렇다고 진짜 죽으면 안 되고..." 하셔서 이번엔 내가 웃음이 터졌다는... 의사선생님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아 잠시 숙연했던 아이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선생님의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웃음...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병원에 갈 때에는 하늘도, 가로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따로 식이요법을 할 필요도 없다고 해서 아이가 먹고 싶다는 샌드위치를 사서 달랑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천이 가로수라는 것도, 하늘이 티 없이 푸르다는 것도 눈에 잘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새 날, 오늘... 불안이 100% 가신 건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또 충실히 살았다. 앞으로도 우리 앞에 문제는 주어질 것이고 해결할 수 있는 길 또한 펼쳐질 것이다, 어제처럼... 그 믿음을 가지고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려고 한다.



Posted by 블랙커피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