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속 끓일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을 낸 보람이 있는 생일을 보냈다.

 

생일 당일 저녁은 작년처럼 빕스에서...

우리 동네 빕스는 샐러드바에 폭립이 있어서 그것만 제대로 먹어도 돈이 아깝지 않다.

갓 구워낸 폭립, 겉은 바삭바삭하면서 안의 고기는 또 부드러운 그 식감이란...

작년에는 고기가 좀 질긴 감이 있더니

그 동안 그 부분이 개선이 되었는지 고기가 뼈에서도 잘 떨어지고 어찌나 부드러운지

그야말로 폭풍흡입을 했다,

구워져서 접시에 올라오면 바로 가서 가져오길 몇 차례...

푸드파이터로 보일까봐 살짝 눈치보였다는...ㅠㅠ

디저트는 역시 리치.

알맹이 먹는 맛에 껍질 까고 씨 뱉어야 하는 귀찮음도 재미있게 느껴지더라는...

수북한 껍질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두 접시에 가득 가져다가 먹었다.

물론 샐러드바의 다른 음식들도 골고루 한번씩은 먹었다.

커피는 에스프레소 두 번+카푸치노를 한 컵에 담았더니

머그컵에 딱 맞게 찰랑거리면서 맛도 좋아서 그렇게 두 번을 마셨다.

잠 못 자는 건 나중에 걱정할 일, 이렇게 맛있는데 어떻게 한 번으로 끝내나...

아이도 작년보다 훌쩍 자란 덕분인지 작년보다는 먹는 양이 늘었다.

잘 먹으니 맛있는 것 먹이는 보람도 더 크게 느껴져서 좋았다.

이번 생일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물론 폭식의 후유증으로 다음날까지 아주아주 소식을 했다는...

 

생일 다음날이 토요일이었다.

서강대 메리홀에서 하는 '포크 인 유'라는 콘서트 표를 주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저녁에 거기에 가기로 했는데,

나름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

내가 좋아하는 박학기씨가 나온다고 해서 적잖이 기대하는 마음을 안고 간 콘서트였는데 역시나...

노래를 많이 외우지 못하는데도 콘서트에 나온 자전거 탄 풍경과 박학기씨의 노래는 다 알겠더라는...

내가 아이와 로얄석에 앉아서 이런 콘서트를 보다니, 그것만으로도 내겐 정말 선물이었다.

박수치고 따라 부르고 하며 얼마나 몰입해 있었는지 2시간 반이 언제 흘러갔는지도 몰랐다.

아이 말이, 항상 이성적이던 엄마가 이렇게 열광하는 건 처음 보았다고...ㅠㅠ

다행히 아이도 콘서트가 재미있었단다.

아이가 요즘 자주 하는 질문이 엄마가 자랄 때는 어땠느냐는 건데,

콘서트 내내 저 노래가 엄마 자랄 때 가장 유행하던 노래라고 설명해 주느라 한편 바빴다.

아이와 문화를 공유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도 상당했던 경험이었다.

 

생일 전에 아동극이지만 연극도 한편 같이 보러 다녀왔었고,

콘서트 다녀온 다음날인 주일 오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시도 보러 다녀왔다.

재미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런 것들이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 같다.

특별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새롭게 정비해서 오픈한 도자기관-청자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래 전부터 청자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날은 청자실에서 정말 나오기가 싫더라는...

나도 청자처럼

남과는 다른 빛깔,

세월이 갈수록 더 깊고 우아한 빛깔을 내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너무 건전한가?

 

어찌 되었건 생일이 지나고 나니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이 일상이 나는 제일 좋다.

 

Posted by 블랙커피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