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일터에서 옆자리 분이 말씀하시길,

나와 아이가 통화하고 있는 걸 들으면 꼭 친구하고 대화하는 것 같댄다.

야호! 딱 내가 원하는 바인데...

어릴 때부터 아이라고 해서 무시하고 강요하며 키우지 않았고

아이의 의견도 나와 동일한 한 사람의 의견으로 존중하며 키우긴 했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를 끌고 가야 하는 사람이 아닌, 아이와 나란히 걸어가야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내가 하는 생각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엄마'로서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5학년이 된 아이는 여전히 씩씩하게 자기 생활을 잘 해 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중간고사에서 평균 98점 정도 나왔으니 공부도 잘 하고 있는 것 같고,

잘난 아이를 시기, 모함하며 거칠게 대하는 요즘 아이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경우에 맞게 잘 대응하고 있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보면 학교생활 또한 내가 간섭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교육청 영재원에서도 그 뛰어난 아이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오히려 발표도 잘 하고 조 아이들을 리드하며 공부하고 있고

같이 공부하는 아이들의 성격이나 수준이 내 아이와 잘 맞아 아이가 만족해 하니

그 또한 감사하다.

작년부터 온 그분(=사춘기)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가끔 말투가 반항적일 때가 있으나

영민한 아이라 차분히 이야기하면 금새 잘못을 수긍하고 반성하니

아직은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감사한 일.

아이의 말대로 그분이 큰 회오리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 주길 기도할 뿐이다.

올해와 내년은 중학교 생활을 준비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

올해 들어 아이와 중학교 생활과 중학생으로서의 공부 방법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리 준비해서 습관이 들면 중학교에서도 지금처럼 자기 생활을 잘 하리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내가

초등학생인 지금까지보다 중학생이 된 이후에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그 또한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오늘 아이는 학급 예선을 1등으로 통과해서 교내 독서퀴즈대회에 나갔으나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마침 산행대회가 있는 날이라 일찍 퇴근해와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아이를 보자마자 그 결과부터 물어봤는데,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는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아이에게 너무 많이 미안해졌다.

아이의 말투부터가

자기 스스로에게 속상한 것보다 엄마에게 미안해 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게 확 느껴져서

엄마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하는 걱정에 아이가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재작년과 작년보다 열심히 준비하지 않은 과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과 함께

시험은 반이 운이니 운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해 주고는

아쉽겠지만 어차피 지나간 일이니 잊어버리라고 했다.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마음에 짐으로 두는 일은 그야말로 감정의 낭비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1교시부터 4교시까지 내내 과학행사의 도우미를 하느라 힘들었을 아이에게

5교시에 있었던 독서퀴즈대회 골든벨은 체력적으로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에

속상한 마음도 든다.

체력이 딸리는 자식을 둔 엄마 입장에서의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ㅠㅠ

다행히 아이는 많이 속상해 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전환이 필요한지

내가 이마트에 장 보러 갈 예정이라고 하자 같이 가겠다고 했다.

산행대회로 지친 내가 잠깐 낮잠에 빠진 후 저녁을 먹고나서야 이마트로 출발할 수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외출에서 돌아올 시간에 집을 나서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이사한 후 이마트에서 조금 더 멀어져서 잘 가지 않았던 터라 이것 저것 살 것이 많았다.

그리하여 이마트에서 집으로 돌아온 것이 저녁 10시 반이 넘은 시각.

4시간에 걸친 과학행사 도우미에, 독서퀴즈대회까지 하느라 지쳤던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옷도 벗지 못하고 거실에서 잠들어버렸다.

그 정도로 피곤했으면 차라리 이마트에 가지 말자고 하지...ㅠㅠ

잠든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물티슈로 얼굴과 손, 팔을 닦아주고,

전자모기향을 꺼내 매트를 끼웠다.

아이와 나, 새 집에서의 첫 여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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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블랙커피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