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즈막히 일어나 시간에 쫓기지 않는 브런치 먹고,
싸 가지고 온 일거리 얼른 끝내고,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TV를 보며 보내는 토요일.
혈기왕성한 아이에게는 지루한 주말일지 모르겠으나
분단위로 시간에 쫓기며 일주일을 보낸 내게는 이만한 보상이 없다.
샐러리맨 남편들이 TV에 코 박고 뒹굴며 주말 보내는 걸 200% 이해한다는...
점심때가 한참 지나 점심을 먹기에도 저녁을 먹기에도 어정쩡한 시간에 배가 고파
빵과 과일로 대충 허기만 면하고 다시 빈둥거리는 중이었다.
'상어'스페셜이 나와서 그거 보다가 중간중간 잠깐씩 졸다가
'직장의 신'이 나와서 또 미스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한참 통쾌해 하며 보다가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나와서 또 그거 한참 보다가
눈이 뻑뻑해서 잠깐 눈 감고 있기도 했다가...
병원에 갈 시간 내기로 어려울 정도로 바쁜데, 감기 기운이 다시 도져서 힘든 일주일을 보냈다.
타이레놀 콜드를 비타민 먹듯 먹으며 식은 땀을 흘리며 보낸 이번 주.
열에 오한에, 콧물에, 기침까지...
결국 어제는 목소리까지 확 가서 초긴장 상태에서 하루를 버텼다.
오늘 아침까지도 그저 그런 상태라 약만 먹고는 빈둥거리고 있는데,
이 빈둥거림이 약이 되어 내일이면 씻은 듯이 나으면 좋겠다.
병원에 가봤자 들을 말은
만성피로에 과로, 면역력 저하, 그로 인한 감기 바이러스의 침투 등등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지라
병원에 다녀오는 수고로움까지도 빈둥거림으로 대체하고 싶어서 하루종일 그저 TV 앞에서 뒹굴고 있는 중.
이런 시간이 있어야 다시 펼쳐질 일주일을 힘차게 살아가지 싶다.
집안일도 할 건 많지만 '내일도 날이지 않은가?' 하는 마음으로 못 본 척하고 있다.
지금 힘겹게 하는 것보다 힘 날 때 하면 더 즐겁게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기합리화일까...
빈둥거리며 보낸 하루 끝에 어둠이 내려앉으니 이제야 정신이 좀 드나 보다.
휘청거리며 일어나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밥도 앉혔다.
그리고 여기에 이렇게 글도 남긴다.
나중에 보면서 요즈음의 지친 나날이 다시 새록새록 느껴져서 눈물 지을라나...
뭐, 그건 나중 일이고.
당장은 감기 증상을 물리치는 게 급하므로 무조건 쉴란다.
일 년의 반이 갔다, 벌써.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기에 가버린 시간에 후회는 없지만, 여전히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은 시간은 아깝다.
조금만 천천히 갔으면...
커가는 아이도 한번 더 찬찬히 바라보고, 내 살아가는 모습도 지긋이 쳐다볼 수 있게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