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일기를 쓰지 않았다.
오늘이 어제와 같은 날이 반복되고 있었고 난 그 밋밋함이 지루한 게 아니라 오히려 좋은데, 언론에서는 자꾸 '집 안에만 있어서 힘들죠?'를 세뇌하고 싶은 듯 반복하고 있어서 그에 반대되는 내 의견을 여기에 드러내도 되나 싶은 게 첫 번째 이유였다. 쓰고 싶은 내용을 미뤄두고 누군가를 의식하고 쓴다면 그건 일기가 아니니까.
두 번째 이유는 실생활에 충실하고 싶어서였다.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니까.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젖혀두고 클릭 두 번에 없어질 온라인에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쓰고 싶지 않으면 안 쓰는 게 맞고, 그저 내 우선 순위에 충실하게 살고 싶었다. 아이의 개학 예정일이 다가오고 있었다가 일 주일을 남겨놓고 온라인 개학을 하겠다는 발표가 났다. 발표 후 학교로부터 그 준비에 대한 안내가 휴대폰으로 계속 왔고, 학교 홈페이지에도 계속 올라왔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의 문자도 계속... 개학이 여러 번 연기되면서 학교에서 하라고 내 준 과제의 양을 봤을 때 차라리 등교하는 게 낫겠다 하면서 든 생각이 '학교는 왜 이렇게 뭘 하라고 요구하기만 하나?'였는데 이번에도 역시... 가장 효율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느라 머릿속이 바빴다.
세 번째 이유가 가장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틀 반 동안 아팠다. 역시나 편두통과 오한. 약도 안 듣고, 혈자리 자극도 별 효력이 없었다. 아무것도 효과 없는 것 보니 앓아야 낫는구나 싶어서 그저 몸이 하자는 대로 따랐다. 편두통이 심하니 속이 울렁거려 아무것도 먹기 못했고 한기가 느껴져서 자기만 했는데, 자면서도 머리는 계속 아팠다. 드문드문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잠깐 통증이 가라앉은 동안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틀 반이 지난 아침, 일어나보니 몸이 가벼워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 숨이...
앓고 나서 코로나 사태 동안 한 번도 가지 못한 미용실을 다녀왔다. 더이상 머리를 기르기가 힘든데,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으니까 상황이 급변하기 전에 다녀오자는 마음이었다. 그건 미용실에 가야 하는 내 이유고, 온라인이라도 개학은 개학이니 아이 머리도 미용실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동네 토박이에 건물주인 미용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이 동네에서도 확진자가 몇 명 나와서 확진자가 들른 몇몇 가게가 2주 동안 문을 닫아야 했다는 것, 확진자 중 한 명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문을 닫는 중인 가게 중 하나는 내가 채소 사러 자주 들르던 곳이어서 이 사태의 엄중함이 마음에 확 와 닿았다. 그 가게에 안 간지 1주일이 넘어 모르고 있었나 보다. 동네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더 모를 수밖에... 동네 동향에 깜깜인 나는 이렇게 미용실에 갈 때마다 미용사로부터 동네 이야기를 속속들이 듣는다. 잘 들어주는 성향이 빛을 발하는 셈인데, 다행히 듣고 나면 도움이 되는 것도 있어 재미있게 듣고 있다.
오늘은 내게 아주 특별한 날이다. 아이의 생일. 늘 일더미에 눌려 사느라 생일상을 제대로 차려주지 못한 게 도대체 몇 번인지 모르겠다. 올해는 시간도 있으니 그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서 어제 장도 보고 오후 내내 주방에 서서 쇠고기미역국부터 잡채, 오이무침, 연어구이 등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들로만 생일상을 준비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겉절이가 오늘 딱 도착한 것도 생일상에 한 몫 했다. 겉절이, 아이가 좋아하는 건데, 다행히 맛도 있었다. 생일 노래 불러준 후 촛불도 끄게 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는 말도 함께... 그건 평소 아이를 향한 내 눈빛에 늘 담겨있던 말이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새삼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아이와 마지막 인사도 못 나누고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진심은 그때그때 전해야 한다는 것. 오늘 그걸 실천한 것이다. 아이는 어색해 했지만, 나는 앞으로도 죽 이렇게 오글거리는 말로 내 진심을 전해 볼 생각이다.
이번 주 들어 확진자 수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치료 중인 환자 수를 생각하면 31번 환자가 나오기 전으로 돌아가려면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 신경 끄고, 나는 그저 내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게 흘러가는 시간이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일 것이다.
좋은 날이 갔다.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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