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숲의 나라, 독일의 뮌헨 대학에서 7년 반을 유학한 덕에 초록이 주는 힘을 굳게 믿으며,

그에 기대어 근근이 살아가고자 하는 기생형 인간이기도 합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우연히 찾게 된 대관령에서 여름 두 달을 보내며 생활여행의 새로운 챕터를 열게 되면서,

여행이라는 작은 삶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여행자로서 보냈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기꺼이, 이방인』을 엮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든 책 소개 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말미암아 그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되면서취미인 '여행기 읽기'에서 큰 위안을 받고 있던 중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두 달을 산 이야기라니... 나 역시 낯선 골목길 걷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책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활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것이 다 낯선 것들이니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게 되는 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이다. 속속들이 자세한 요소들을 알 수 없으니 그저 보이는 만큼만 보며 만족하는 게 이방인의 생활이기도 하다. 이런 생활 방식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아니, 몇 안 되는 단점까지도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조금 불편한 점이 있어도 그 낯섦의 새로움에 감탄하고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넘기게 되니까...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점들 때문에 기꺼이 이방인의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런 점에서 저자와 나는 찌찌뽕이다~

 표지를 보았을 때에는 약간 실망했다. 나는 작년 5월 대관령에 다녀온 적이 있다. 시야가 탁 트인 대관령의 광활한 전경과 머리칼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세차고도 시원한 바람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왜 이 멋진 대관령의 경치를 흐릿하게 처리했을까?', '배추밭을 비롯한 초원의 초록빛을 선명하게 보여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책에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치를 묘사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사진으로라도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정말 컸다. 사진이 없다면 그렇게 발행한 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 그 이유를 헤아려보고 싶지 않을 만큼 경치에 대해 욕심이 나는 곳이었나 보다, 내게 대관령은... 그러니 저자도 매혹 당해 두 달 살이를 하게 되고 책까지 내게 되지 않았을까?

 약간 노르스름하고 손에 닿는 감촉이 까슬까슬해 넘길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종이의 질, 적당히 큰 사이즈라 여러 번 되읽고 싶게 만드는 크기의 활자, 민트색 속지까지도 마음에 쏙 들었는데... 

 '지금 여기서 충분히 행복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어딜 가더라도 그 곳에서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만약 그 곳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그럴 만한 충분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테니까... 순간순간의 소소한 행복을 다 누리겠다는 저자의 적극적인 태도가 나를 빠르게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겼다. 

 저자소개와 '들어가며'를 읽고 나니 문득 저자가 궁금해졌다. 앞부분에 소개된 내용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져 버린 것... 요만큼 읽었을 뿐인데 '도대체 누구지? 누군데 이렇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하는 생각에 참을 수 없어져 버린 것이다. 친절한 인터넷 검색의 세계는 내게 저자의 얼굴까지 보여주었다. 내가 예상하던, 예민하고 까칠한 인상이 아니어서 뜻밖이었다. 저자는 '대충 잘 살자.'는 문장을 떠올려야 할 정도로 '대충대충'이 안 되는 사람인데... 너무 순한 인상이었다...@@

 한 장 두 장 읽다 보니 이 책은 여정에 따른 장소에 대한 정보, 감상 등을 적은 '여행기'가 아니라 그냥 저자의 '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관령에서 사는 두 달 동안의 일기... 누군가의 일기를 읽고 나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 이야기 한 번 나눠 본 적 없어도 그 사람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게 일기의 매력이지... 그래서 나도 저자와 일면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와 생활을 같이 해야 할 수 있는 사항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렇게 저자에 대해 알고 보니 나와 참 비슷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끝내는 공감하는 부분마다 밑줄을 그어가며 읽게 되었다는... 어떤 페이지는 내가 쓴 게 아닐까 싶게 모든 내용을 다 밑줄 긋고 싶기도 했다. 특히 '생래적 프로불편러를 응원하며'와 '같이 놀아야 제맛', '대관령 북캉스'는 200% 공감하는 내용이라 읽고 또 읽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 지구에 나말고 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기쁨, 이방인의 마음으로 사는 일상의 참신함을 아는 저자를 만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참 마음이 시원했다. 마치 저자와 직접 만나 차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들은 느낌... 아니, 저자가 아니라 오랜 친구와 만나 잔잔하지만 편안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나눈 느낌...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공감 받고 위로 받은 느낌. 책을 읽고 이런 느낌을 받는 게 참 오랜만이라 여운까지도 놓치고 싶지 않아 조만간 다시 이 책을 잡게 될 것 같다.

 이 책의 '차례' 바로 뒤에 실려 있는 지도에서도 다른 여행책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름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대관령에서 두 달을 사는 동안 대관령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라 강원도 전반을 돌아다녔다, 마치 현지인이 일상을 사는 것처럼... 저자가 다녔다는 곳들이 내게도 생소한 것을 보면 유명한 관광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책 내용을 다 읽은 후 다시 지도를 보니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다정한 곳들인 것 같아 나도 가 보고 싶어졌다. 이런 것이 저자의 글이 가지고 있는 '조곤조곤'의 힘이겠지... '에필로그'를 보니 저자는 올해 대관령 두 번째 여름살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용기에 응원을 보내며, 이 책을 통해 나도 이방인의 마음으로 타지에서 일상을 보낼 용기를 얻었음을 저자에게 감사하고 싶다.

삶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블랙커피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