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방학도 반환점을 돈 것 같다. 2주 동안 진행된 아이의 방과후학교 수업이 끝나 드디어 진정한 방학이 시작되었다. 시간 맞춰 아이 아침밥 해 먹이느라, 미루어두었던 봉사활동 챙기느라, 책은 조금만 읽고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지 잔소리하느라... 2주 동안 내 나름 바빴다. 책 읽기를 워낙 좋아하는 아이라 책 읽는 데 시간을 덜 할애하라고 가끔 잔소리를 해야 하는데, 그 잔소리는 하면서도 매번 스스로가 공감이 안 된다. 이게 과연 맞는 말인지... 허나 부정할 수 없는 건 우리나라의 대입 환경 아래서는 맞는 말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이게 과연 맞는 교육인지... 책 읽기 좋아하는 아이에게 책을 읽지 말라고 해야 하는 교육 환경이라니... '이게 무슨... 교육이야!'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돈지는 오래되었다.

 남은 방학은 2주가 채 안 된다. 때맞춰 무더위도 한풀 꺾인 것 같다. 아님 극한의 더위를 경험하고 보니 지금의 무더위가 견딜 만해진 걸 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아침마다 한 번씩 후두둑 오는 비가 마음에 든다. 비 덕분에 하루의 시작이 짜증이 아닌 긍정적인 기분이라 그것도 의욕 충전에 보탬이 되는 것 같아 좋고... 밤바람이 살랑이기 시작하니 밤시간이 다시 설레는 분위기라 그것도 좋고...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은 동네라 방학 동안 동네 탐험을 해 보려고 했는데 그건 무더위 중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일이라 더 서늘해진 후에 하기로 미루어두었다. 바느질 실컷 해야지, 페인트칠 해야하는데 하는 마음도 미뤄두었다. 무리하지 말고 지금 가능한 일만 하면서 유유자적하기로... 여름방학은 짧고, 무더위는 기니까... 그러자니 요즘 집중하는 것이 먹기와 책 읽기. 너무 건전한가...?

 수박과 참외를 좋아하지 않는 내게 여름은 천도복숭아의 계절이었는데 토마토의 간간하고 달고 새콤한 맛을 알아버렸고, 전자레인지에 5분 돌린 단호박의 부드러운 밤맛이 현미귀리밥의 단맛만큼 맛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스테이크는 시즈닝솔트로 숙성한 것이 우리 입맛에 제일 맞다는 것, 그에 어울리는 채소는 쌉싸래한 치커리나 상추쯤이라는 것에 매우 동의하게  되었다. 쯔유와 들기름으로 비벼 얼음 잔뜩 넣은 면은 두 그릇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재확인했다, 너무 더운 날엔 이마저도 포기해야 했지만... 집 안 온도를 높이지 말자는 방침 아래 외식도 자주 했는데 그 결과, 죠스보다 국대떡볶이가 내 취향이라는 점, 따로 먹으면 충분히 맛있을 고기와 채소와 빵을 함께 먹는 햄버거는 역시 내 취향이 아니라는 점, 튀김은 역시나 소화가 안 된다는 점, 회덮밥은 역시나 김뿌라가 최강이라는 점 등을 확인했다. 

 챙겨 보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10회에 대한 되새김질은 안 하려고 한다. 너무 슬펐다. 즐겁게, 가볍게 남은 방학을 효율적으로 누리려고 하는 현재의 내가 할 일은 아니라서...

 오늘은 또 뭘 먹고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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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일 주일은 정말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더위가 힘들었던 것 같다. '오늘도 폭염'이라는 기사로 하루가 시작되는 날마다 높은 온도 때문에 무기력해지는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확실한 사실을 알았다. 관건은 온도가 아니라 습도였다는 걸... 적어도 내겐...

 기다리던 소나기가 좍좍 퍼붓고 가고 난 후 어제부터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저녁시간의 바람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만 그렇게 느껴지나 싶어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런 것도 같다'는 것. 저녁에 조금 덜 더워진 것 같기는 하지만 확 느껴질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온습도계를 보니 온도는 여느 날의 저녁시간과 크게 다를 것 없었는데, 습도계의 수치가 조금 내려가 있었다. 피부에 끈적거리는 느낌이 사라지니 훨씬 의욕이 나고 기분도 좋아졌다. 어젯밤에는 자다가 선풍기의 바람이 추워서 끄기까지 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본 습도는 어젯밤보다 더 내려가 있었다. 폭염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50% 아래로 내려갔으니...

 오늘도 해가 저물고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창으로 서늘함을 품은 바람이 불어 들어와서 창에 드리웠던 발을 아예 말아올려 놓았다. 기분 좋은 바람이어서... 더 많이 불어 들어오라고... 지난 주 내내 집안에 더운 기운 보태지 않으려고 가스레인지를 켜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가스레인지에 밥도 하고 찌개도 끓였다. 그래도 집안이 덥지 않았고, 피부가 끈적거리지 않았다. 장을 보러 동네 시장에도 다녀왔는데 오가는 길에 피부에 와 닿는 공기가 상쾌했다. 집안 온도는 평소 저녁 때와 비슷했지만 습도계를 보니 45%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역시 습도가 문제였던 게다. 여름 내내 딱 이 정도 습도만 유지해주면 좋겠는데...

 방학을 하고나서 아이의 먹을거리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끼니야 잘 챙기는 것이 당연하고, 아이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간식거리들을 사다 놓았다. 냉장고에 빵이며 음료수, 과일도 여러 종류를 채워 놓았고, 과자도 여러 종류 사 놓았다. 늘 먹던 종합비타민 외에 유산균과 루테인도 방학 시작하면서 먹이기 시작했다. 워낙 입이 짧은 아이라 방학 동안 손 가는 대로 이것저것 잘 먹고 키도 크고 몸무게도 좀 늘면 좋겠다. 학기 중에 시간이 안 나 미뤄두었던 병원 진료도 예약했다. 방학을 했어도 아이의 방과후학교 때문에 평소처럼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해서 마냥 늦잠을 잘 수도 없다. 방학을 해도 할 일이 끊이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학기 중처럼 1분에 쫓기는 일상은 아니어서 좋다.

 서늘함이 든 바람 말고 어제부터 저녁시간에 변화가 또 하나 있다. 귀뚜라미 소리... 어제부터 저녁에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매미 소리는 이틀 정도밖에 듣지 못한 것 같다. 너무 더워서 매미가 못 올라오는지...

 점점 더 잠 들기 아까을 정도로 서늘한 저녁이 올 거라 기대하고 있다. 설렌다, 벌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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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고나서 두 달 반 정도가 지났다. 출퇴근이 일상이다 보니 아직 완전히 동네를 익히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냥 이렇게... 놀러와 한 달 살기 하듯, 반쯤은 이방인처럼 살기로 마음 먹었다. 완전히 익숙해져서 내 동네같이 느껴지면 그런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주어진 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그러겠다고 결심하고 온 거니까...

 오늘 드디어 방학한 날이다. 2주 전부터는 하루하루 손꼽을 정도로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다. 어제는 전체 직원연수로 여의도 한강공원에 있는 애슐리에서 저녁을 먹고 유람선을 타고 한강 야경을 즐겼다.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러고 나서 한가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바탕 꿈을 꾼 것만 같았다. 해가 더 일찍 지는 계절이 되면 아이와도 꼭 같이 하고픈 코스였다. 그리고 오늘, 일찍 퇴근했다가 다시 일터에 다녀오는 일이 있긴 했지만... 잘 해 주니 만만하게 보고 성질 버럭 부린 일터의 어떤 이때문에 기분 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방학이다.

 때맞춰 텅 비어버린 냉장고를 채우러 저녁 늦게 장 보러 다녀왔다. 땡볕 아래 장 보러 다녀올 기운도 없고, 그렇다고 내일 오전에 장 보러 가기 위해 일부러 나가기도 싫어 해가 졌지만 부랴부랴 다녀왔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고만고만한 슈퍼 세 군데 모두를 들러 양 손 가득 채소며 과일을 사 왔다. 꼭 '원미동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의 현실판 버전인 것처럼 슈퍼 세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시장. 어쩌자고 그렇게 가게를 열었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한 슈퍼에서는 사과를, 다른 슈퍼에서는 채소를, 마지막 슈퍼에서는 다른 슈퍼에서 사지 못한 대추방울토마토를 사며 골고루 필요한 것들을 사가지고 왔다.

 방학 초입에 늘 그랬듯이 며칠은 멍하니 보낼 생각이다. 방학 동안 해야 할 일들의 계획이나 슬렁슬렁 짜면서...

 방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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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동안 매일 3시간씩 잔 여파인지, 아님 찬 에어컨 바람을 참은 여파인지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어젝 저녁에 기절하듯 잠든 이후 계속 자다 깨다 하며 하루가 가고 있다. 처음에는 진통제를 먹었으나 약효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두통이 여전하여 4시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타이레놀 콜드를 먹었다. 슬슬 콧물도 많아지는 듯하여... 가져온 일거리도 있어 정신을 차려야겠기에 샤워도 했다. 따뜻한 물이 몸에 닿으니 그제야 '아, 나 아픈 게 맞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물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약 기운이 퍼지는 것도 슬슬 느껴졌다. 머리부터 서서히 얼얼해지는 것이 마취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몸 무거운 느낌도 조금 덜해지는 것 같고... 하지만 피부가 얼어해지는 듯한 느낌은 정말... 혀도 똑같이 얼얼해져서 입맛도 없고...

 아플 때가 되기도 했지 싶기도 하다. 이사한 이후 출퇴근하는 일상을 유지하며 새 동네에 적응하느라 나를 돌볼 수 없기도 했으니까... 이사한 직후에는 기침이 길어져 2주 넘게 약을 먹야 했지만 그 이후 일터의 일이 바빠져서 나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 오른팔의 운동치료도 계속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더니 다시 아파온다. 이제는 몸이 보내오는 경고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운동치료도 다시 조금씩 하고 있다. 작년에 했던 고생을 다시 반복할 수는 없기에...

 하루 종일 자느라 커피를 못 마셔서 그 금단현상으로 머리가 아픈가 싶어 커피도 두 잔 마셨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로 정신은 확실히 깨어났다. 의욕도 깨어나야 할 텐데... 쉬는 날이라는 걸 몸도 아는지 계속 기운이 없다. 가져온 일거리들은 늦게라도 해결해 놓고 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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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은 저녁 늦게까지 일이 있어서 퇴근이 매우 늦었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녁 하늘이 예뻤고 머리카락 사이로 지나가는 적당히 습습한 바람이 좋아 피곤한 줄 몰랐다. 다음 날인 금요일에도 몸이 조금 무겁다는 느낌만 있었지 피곤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퇴근 후 집안일을 마치고 잠깐 누워 TV를 보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잠결에 아이가 문단속하는 소리, 웅웅거리는 TV소리를 들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결박 당한 듯 꼼짝할 수 없었다는... 알람소리 때문에 평일과 같은 시간에 일어난 오늘 아침, 알람을 맞추어 놓지 않았더라면 아침도 못 먹인 채 아이를 영재학급 수업에 보낼 뻔했다. 날짜를 잘못 체크해 놓아서 오늘 수업인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것저것 집안일을 해 놓고 오후에도 잠깐 잤다. 역시 누워 있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목요일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피곤하면 피곤하다는 걸 바로 알아채야 하는데, 그래야 바로 해결을 할 수 있을 텐데 모른 채 누적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 둔한 건지, 아님 모자란 건지... 일의 강도는 예년보다 훨씬 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닌 걸까?

 주말에 하겠다고 일거리를 가져오긴 했는데 꺼내지도 않았다. 그저 푹 쉬면서 주말에 에너지를 충전해 놓는 것이 다음 주를 잘 보낼 비결인 것 같아서... 소소한 집안일을 해 놓고 히든싱어 베스트, 비긴어게인2 재방송해주는 걸 보면서 빈둥거리고 있다. 날씨가 화창하거나 말거나 나갈 생각도 전혀 안 하고, 지금 당장의 걱정이 아니면 아무 걱정도 떠올리지 않으면서... 오늘의 염려는 오늘로 족하고, 내일의 걱정은 내일 하면 되니까... 그랬더니 오늘 하루가 어찌나 긴지... 조바심 내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이렇게 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렇게 주말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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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비한 인간은 남녀노소 불문인지 아이의 고등학교 생활이 녹록치 않아 나도 더불어 계속 신경이 쓰이고 있다. 제발 그런 인간들은 그들끼리 모여 놀면 좋겠고, 강자와 약자도 그들 내에서 그들끼리만 나누면 좋겠고, 그들이 한 짓의 댓가가 그들에게 더블로 돌아가면 좋겠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그래야 그들로 인해 고통 받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 헛되지 않을 테니까... 그나마 세상이 이렇게나마 돌아가는 것도 친절하고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 덕분일 텐데 그런 사람들을 짓밟은 댓가는 치러야지, 그래야 공평한 거지... 

 야비한 그들 때문에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아이와 종종 이야기 나누는데, 그러면서 삶의 자세나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선한 마음으로만 살라고 말하지 못한다. 남에게 배려하기만 하라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으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살면 더 힘들어지는 게 현실이란 걸 아니까... 나는 내 아이가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엄마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사 온 후 케이블TV가 나오게 되어 지나간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도깨비' 15회, 16회는 몇 번을 봐도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한편 가슴이 아프다. 볼 때마다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이 앞에 놓인 부당하고 억울하고 힘든 나날의 총량이 있다면 어서 끝나면 좋겠고, 그 나날이 아이에게 필수조건이라면 좋은 거름이 되면 좋겠다. 당장은 그 거름 어서 썩어서 곧 아이 인생에 알찬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길 기도한다.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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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나를 빚으실 때 넣어준 장점 중 하나라고 요즘 확실히 느끼는 것이, 문제해결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가끔은 지나쳐서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놓지 못할 때도 있지만 눈 앞에 문제가 닥쳤을 때 불평하거나 원망하기보다 해결책부터 먼저 생각하려고 한다는 것, 그리고 기어이 해결해내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장점임에 분명하다.

 이사 온 집에서 세탁기를 놓은 곳이 수도꼭지에서 세탁기까지의 거리가 좀 멀어 세탁기의 급수호스로는 수도꼭지에 연결할 수가 없었다. 이사업체 아저씨가 철물점에 가면 긴 길이의 급수호스를 파니 그걸로 연결해서 쓰면 된다기에 들은 대로 했는데... 호스가 세탁기의 급수호스보다 덜 튼튼해 보이는 데다가 수도꼭지에 연결하는 부분도 부실해 보여 처음부터 믿음이 가지 않더니-실제로, 연결할 때 잘 되지 않아 고생 좀 했다.- 사용한지 한 달만에 망가져 버렸다. 수압을 견디지 못해 호스 연결부위가 터져 버린 것 같았다. 고쳐서 써야 하나 하는 생각에 물세례를 몇 번 맞아가며 애써봤지만 새로 사야 할 것 같았다. 그게 금요일 저녁의 일...

 세탁기를 돌리던 중이었기에 어찌어찌해서 세탁하던 것은 마무리했는데 이후가 문제였다. 기온이 올라가고 있어 빨래거리는 계속 나올 테니 말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나처럼 사제 호스를 사서 연결했다가 낭패 본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좀 더 검색한 결과 세탁기 제조사의 서비스센터에서 정품 연결호스를 판다는 것을 알았고, 마침 집 가까이에 서비스센터가 있는데 토요일에도 운영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토요일인 어제 오전에 바로 가서 사 와 연결해 놓았다. 진작 이렇게 했으면 돈도 버리지 않고 낭패감에 당황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아무나 한 말을 그냥 믿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배웠다. 이사 후유증의 하나로 접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사 온 집이 빌라라 내가 집에 없을 때 도착할 택배를 어떻게 보관할까도 작은 고민거리 중 하나였는데 '여성안심택배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것이 있다는 사실은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이용할 필요가 없어 잊고 있었는데, 경비실이 없는 빌라에 살게 되니 이용해 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마침 집과 아주 가까운 거리의 큰길가에 여성안심택배함이 있어서 얼마 전에 한 번 이용해 보았는데 택배기사님이나 나나 서로에게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배기사님 입장에서는 분실 우려 없이 안전하게 물건을 전달해서 좋고,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면대면 방식보다 오히려 안전하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물건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부피가 너무 큰 것은 택배함에 들어가지 않을 테니 불가능하겠지만 어지간한 물건들은 모두 여성안심택배함을 이용하면 편리하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며칠 전 여러가지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그게 어제 오후에 와르르 도착한 것이다. 택배함 3개에서 물건을 꺼내 카트에 실어와야 했고, 부피가 커서 어쩔 수 없이 집 현관문 앞에 두고 가면 된다고 했던 플라스틱서랍장은 마침 토요일에 배송해 주어서 내가 직접 받을 수 있었다.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새 가구를 들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산 서랍장이었다. 정리를 끝내고 보니 이전보다 자리도 덜 차지하고 깔끔해져서 사길 잘 했다 싶었다. 문제는 그 정리를 하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다는 점... 택배로 온 것 중 하나가 제습제였는데 집안 곳곳에 제습제를 두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 오전에 서비스센터 다녀오면서 사 온 시트지를 상에 붙이는 것도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이전 집에서의 생활이 건조함과의 전쟁이었다면 이번 집에서는 습기와의 전쟁이 생활이 될 것 같다. 제습제가 도움이 될 것 같아 일단 20개 사서 습하면 안 될 옷장과 이불장, 책장 등에 집중적으로 놓았다. 살펴보고 이후에는 염화칼슘을 사서 보충할 생각이다.

 택배로 온 것 중 하나가 열무김치였다. 이전 동네에는 짜지 않고 첨가물 맛 나지 않는 맛있는 열무김치를 파는 반찬가게가 있어 여름이면 늘 사다 먹었었는데, 이 동네에서는 아직 그렇게 내 입맛에 맞는 곳을 발견하지 못해 인터넷으로 한 번 사 본 것이다. 스티로폼 상자의 뚜껑을 열자마자 풍기는 맛있는 김치 특유의 냄새가 어찌나 기분 좋던지, 어제 점심에 바로 국수 삶아 열무국수를 해 먹었다는... 아직 다 익지 않아 짠 맛이 있었지만 며칠 익히면 맛있어질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

 힘 쓰고 시간 써야 할 일이 많아 바쁜 하루를 보낸 탓인지 오늘 아침 일어나는데 몸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예배에 다녀온 후 오후에 다림질 등 집안일을 다 해 놓고 잠깐 누워서 졸았다. 하수구마다 세정제 매달아 놓고, 다른 상에도 시트지 붙여서 리폼해 놓고, 오늘도 집안 정리는 계속되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집안 여기저기를 살펴 일거리를 찾아내는 성격 탓인지, 아님 원래 이렇게 집안일이라는 게 끝이 없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일들을 다 끝내고 잠깐 누워 있는데, 침실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을 만치 서늘했다. 그래서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그렇게라도 자고 나니 몸이 가벼워졌다. 소소한 일들이라도 계속 이어지니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런 주말이 가고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될 것이다. 다시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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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살던 집에서도 창의 방향이 좋아 볕이 잘 들면 커텐을 달지 않고 살았었다. 이상하게도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은 무엇으로도 가리기 아깝다. 이사 오고 나서 보니 침실은 북동향, 아이 방은 남서향쯤 되는 것 같았다. 침실은 아침 해 뜰 때 창으로 가장 많은 볕이 쏟아져 들어오고 이후에는 조금 어둑어득, 아이 방은 해 뜨고 난 직후부터 하루종일 볕이 들어오니 말이다. 그래서 침실에는 당장에는 커텐을 걸 생각이 없었다. 추워지고 나면 방한용으로나 걸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오후, 처음으로 침실 창을 열어놓으니 시원한 바람이 솨아~ 하고 불어들어오는 게 아닌가. 집안의 습도도 조금 떨어지고 해서 앞으로는 침실 창도 열어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니 밖에서 안이 보일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그래서 생각했을 때 움직이자 싶어서 바로 침실 창에는 대나무 발을 걸고 아이 방 창에는 마음대로 다루어도 괜찮은 발을 걸었다. 발만 걸었을 뿐인데 집안이 좀 더 안정감 있는 것 같아졌다면 그건 그저 기분뿐인 건지...

 모처럼 집에 있는 토요일이라 오전에는 그렇게 망치와 드라이버 들고 발 걸고, 그러면서 구석에 방치했던 커텐 봉들도 치워서 아이 방도 좀 더 정리가 되었고, 점심에는 냉면 해 먹고, 저녁에는 고기 구워 먹고, 그렇게 부지런을 떨었다.

 오늘 아침에도 평일과 비숫하게 일어나 빨래 걷고 다림질도 하고, 밥도 하고... 교회에 다녀 온 후 시간에 쫓기며 집안일하는 걸로 주일 오후를 보내고 싶지 않아 아침에 부지런히 움직인 것이다. 교회에 다녀오면서는 교회 앞의 마트에서 장도 좀 봐 왔다. 아직 장 보기의 루틴을 만들지 못 해서 당분간 주일 예배 후에 교회 앞 마트도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점심으로 콩국수를 사 먹었는데, 그 가게에서 파주의 장단콩으로 직접 콩물을 만든다고 하더니 오늘 그 장면을 눈으로 보았기에 콩물도 사 왔다. 콩가루로 만든 콩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고소하고 진해서 안 사올 수가 없었다. 절반은 냉동실에 넣어놓고 주중에 먹고, 절반은 오늘과 내일 사이에 먹을 생각이다. 5월이 시작된 것도 빠르다 했는데, 벌써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콩국수를 먹는 계절이 되다니...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꼭 장점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래저래 이 동네에서의 생활에 적응해가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아직까지도 이 동네에서의 생활에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이 동네로 이사 온 가장 큰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ㅠㅠ 오늘은 "내가 널 너무 철 없는 아이로 키운 것 같다, 내 잘못이다."라는 말까지 해 버렸다. 그 동안 한 이사 중 가장 최악의 이사였던 이번 이사 과정을 알고 있고, 학교에 입학한지 몇 달이 지났는데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어 한 말이었다. 자신이 마음을 다잡고 적응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도 남을 나이인데, 어쩌라고 투덜거리기만 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잔소리와 기도뿐이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우리를 들어 움직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니 더더욱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주말이 가고 있다. 침실 창 밖 바로 앞에서 새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지나가는, 창 바로 앞에 새끼라도 떨어진 것 아냐 싶게 창 가까이에서 여러 새 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런 주말 오후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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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네에 살기 전, 아이 등교길에 학교 앞까지 데려다 주고, 아이가 기숙사에 있는 동안은 오후나 저녁시간에 아이를 만나러 학교에 가면서, 그렇게 3월 내내 아침, 저녁으로 N타워를 보면서 한 생각이 '이 동네에 살면 N타워를 실컷 보겠구나.'였다. 아침에는 새소리와 나무냄새가 묻어있는 공기를 배경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N타워가 마치 한 그루 나무 같아 좋았고, 저녁에는 온갖 조명으로 반짝거리는 N타워가 보석기둥 같아 보여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그걸 실컷 볼 수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설렜다.

 그런데 이 동네에 이사온 후 현실은, 아침에는 출근하느라 바빠 N타워를 쳐다 볼 여유가 없고, 퇴근하면서는 헤매지 않으려고 길만 보며 가다 보니 N타워를 쳐다보지 못하고 있다. 퇴근길이 설레기는 하다. 이사를 왔다는 게 아직도 실감나지 않아 집까지 잘 찾아가기 위해서 아직도 긴장하며 집까지 가고 있느라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폭좁은 꼬불꼬불한 골목이 미로처럼 도처에 있는 동네. 두리번거리느라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어 버리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될까봐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두렵다기보다는 재미있기도 하고, 아직도 그런 골목이 살아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고 좋기도 하다. 하지만 무사히 집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 들어 N타워를 바라 볼 여유까지는 아직 가지지 못했다. 고개만 들면 바로 눈 앞에 딱 보이는데도...

 내일 출근길에는 꼭 N타워를 봐야겠다. 아침 바람을 타고 퍼지는 옅은 소나무 냄새도 킁킁거려봐야겠다. 저녁에도 반짝거리는 N타워를 봐야지. 지금 봐도 3월 그 밤처럼 설렐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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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 있는 며칠 동안 이불커버 세탁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점검하고 손이 가야 하는 곳들을 수리했다. 수학여행이 마음에 안 들었으면 뻔질나게 문자를 보냈을 아이가 문자 한 번 없는 걸 보니 수학여행이 마음에 드나 보다 싶은 생각에 이 어수선한 중에 아이가 집에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이사후유증인지 집안환경이 바뀐 탓인지 이사 후 감기 증상이 계속 있었는데 미루던 병원에도 아이 없는 동안 다녀왔다. 장도 봐 놓고... 아이가 돌아왔을 때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여기에서의 생활에 전념할 수 있게...

 이 곳에서의 생활은 아파트 4층에서 살던 것과는 분명 다르다. 이것은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문제니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 재차 진료 받으러 간 병원의 의사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했다. 우리 몸도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증상이 금방 낫지 않는 거라고...

 며칠 비가 오는 동안 안 열었던 창을 해가 나자마자 모두 열었다. 그랬더니 확 밀려드는 게 두 가지 있었다. 진한 아카시아 향기와 여러 가지 새 소리... 남산이 가까이 있어서인지 집 주변에 나무가 많은 게 아닌데도 여러 종류의 새가 모이는 것 같다. 다양하게 들리는 새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만은 않는 걸 보면 새 소리에는 금방 적응할 것 같다. 아카시아 향기는 어디서 나나 했더니 집 바로 뒤에 흰 꽃이 가득 핀 아까시나무가 있었다. 창을 열어두면 집안 가득 퍼져 들어오는 아카시아 향기는 쿰쿰한 냄새가 나는 것보다 오히려 나으니 반갑고 고맙다. 하지만 창으로 반가운 것만 들어오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집안에 하루살이가 몇 마리씩 날아다니고, 벌써부터 모기도 보인다. 여름을 대비해서 방충망 어디에 구멍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하수구를 통해 들어오나 좀 더 살펴봐야겠다.

 당장은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누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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