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이제는 여기가 삶의 터전이니 날짜를 세지 말아야겠다.

 

여전히 이사 후유증 속에 있어서 아직 안정된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갖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언젠가 쓰일 데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가지고만 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버리고 버려도 계속 나왔다.

눈에 띄는 대로 수리가 필요한 곳들을 손보고

우리 생활방식에 맞게 물건들을 재배치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전의 집과는 완전히 다른 위치에 놓아야 해서

눈에 익숙해지고 손에 익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쓸데없이 전기요금, 수도요금 많이 나오는 것 질색하는지라

그런 부분도 고려하다 보니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

정신이 천 갈래 만 갈래인 것만 같다.

집중하기 어려운 나날이지만 얼른 적응하고 정신차리려고 한다.

그게 내가 살 길이고 우리에게 최선임을 알고 있으니까...

당장은 몸컨디션이나 얼른 회복되면 좋겠다.

이럴 줄 알았지만

이사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감기몸살이 와서 고전 중이다.

내 손이 가야 할 일이 산재해 있으니 아프면 안 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를 땐 무조건 감사하라는 말씀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마음이 팍팍해지니 감사하기가 쉽지 않아 입으로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

'감사합니다. 다 감사합니다.'하고.

얼른 모든 것이 안정되어

이곳에서 진심으로 마음으로부터 감사가 흘러넘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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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루는 정말 길었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어도 힘든 하루였을 텐데,

힘들게 힘들게 간신히 진행된 탓에 하루종일 이를 악물고 지냈다.

'도대체 이 일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뭘까?' 생각하는 것이

어제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스펙타클한 하루였기에 시간도 없고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

아침식사 이후 약간의 물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이삿짐을 새 집에 다 들여놓은 시간이 저녁 9시가 다 되었을 때였다.

짐을 제 자리에 놓은 것도 아니고 그저 집 안에 들여놓기만 한 시간이

그랬다는 것이다...ㅠㅠ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내가 이사업체 운이 없는 건지

이사를 할 때마다 거짓말쟁이 이사업체를 만나는 것 같고, 마음에 든 적이 없다...ㅠㅠ

폭탄 맞은 것 같은 집을 두고 나와 늦은 저녁으로 사골곰탕을 사 먹었는데,

밥알이 넘어가지 않아 나도 모르게 곰탕 국물만 먹고 있었나 보다.

원래 국은 국물 안 먹고 건더기만 먹는데...

보다 못한 아이가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야 한다고 걱정할 정도였으니...

새로 이사한 집에서 보내는 첫날인 어젯밤은

'내 몸이 내 몸같지 않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엊그제부터 계속 춥더니 어젯밤에는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게 온몸이 감각이 없었다.

하루종일 너무 많이 뛰어다녀서 그냥 몸이 힘들어서 잠이 들었다.

늦게 잤는데 그러고도 오늘 아침에 6시도 안 되어서 잠에서 깼다.

아이 덕분에 이른 기상이 몸에 뱄나 보다.

잠에서 깬 후 가만 생각해 보니

'과연 그 날이 올까?' 싶은 이삿날이 어제였고,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든 하루였지만 어쨌든 그 하루가 갔고,

나는 새 아침을 새로운 집에서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Exodus를 한 마음이랄까.

여전히 춥고 몸 여기저기가 슬슬 아파와서 얼른 종합감기약부터 먹었다.

그러고 나서 새 집에서의 첫 집밥을 먹었다.

새 집에서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이삿날 아침에 미리 준비해 둔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니 이 집이 우리의 아지트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전의 집보다 좁아졌지만 우리가 원했던 대로 아파트가 아니어서 좋고,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 여기저기 남아있는 동네여서 좋고,

무엇보다 아이가 학교에 지각할까봐 아침마다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고

수업이 끝나면 교통정체가 시작되는 퇴근시간 전에 집에 오기 위해 종종거릴 필요도 없고

오롯이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나도 전보다 일터에 출퇴근하기 편해져서 좋다.

아침, 오후로 한강을 바라보는 일상이라니...

오늘은 집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걸어서 서울역과 남대문시장에 다녀왔다.

늘 버스를 한참 타고 가야 도착할 수 있던 곳을 산책하듯 걸어서 가다니...

내 생활의 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절감했다.

이 동네에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동안 지경을 넓혀달라는 기도를 했었는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고 오늘이 그 첫날인 것이다.

섞여있는 이삿짐을 다시 분류하여 정리해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려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되는 대로 하기로...

어젯밤에는 잠 잘 공간을 마련해야 해서 침실의 짐부터 정리했다.

오늘은 오전에 욕실을 정리했고,

그 와중에 문틀에 수리가 필요한 곳을 발견하여 백시멘트를 개어 바르기도 했다.

오후에는 주방 정리를 완료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힘들었다.

아... 이사를 하기로 한 이후 '힘들다'는 말이 입에 달린 것 같다...ㅠㅠ

이제는 이사 왔으니 '힘들다'는 말은 그만 해야지.

아무도 아는 이 없고 동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완전히 새로운 동네여서

서울 온 시골쥐마냥 여기저기 어슬렁거리게 될 것 같다.

여기 사는 동안 감사하고 기쁜 일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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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끊임없이 메모하고 확인하고 있지만, 그래도 뭔가 빠진 게 있을까봐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나의 고질병인 불안증폭증 때문에 스스로를 들볶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처음 치르는 정기고사 마지막날이었다. 한 달여 전 기숙사에서 나와 집에서 통학을 시작하면서 이번 중간고사 성적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을 했었다. 왕복 2시간 거리를 매일 다니는 것만 해도 아이에게는 힘에 부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사하기 전까지는 아이가 아프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 학교 다니기만을 혼자 조용히 바랐었다. 그랬는데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중간고사 점수를 듣자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중학생 시절에도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점수는 공부한 양 이상으로 나왔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그게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인가 보다. 아이가 먼저 자기 점수에 충격을 받아 내 잔소리는 짧게 끝냈다. 지난 겨울 내내 공부의 양을 늘여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귓가에 스치는 바람소리처럼 듣더니, 꼭 이렇게 직접 당해봐야 깨달아지는지... 점수보다 아이의 이런 동물적인 우둔함에 더 속이 상한다. 왜 미리 예상하고 대비할 생각은 못하는지...

 시험기간 4일 중 3일 내내 속상함의 연속이었기에 마지막 날인 오늘은 무슨 말을 들어도 더 속상해 하지는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시험이 모두 끝나고 종례가 끝난지 1시간이 넘었는데 집으로 가고 있다는 의례적인 문자가 오지 않자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오늘 시험을 너무 못 봤나?',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등등... 참다 못해 전화를 해 보니 휴대전화가 꺼져있다는 안내가 나왔다. '보통 하교하면서 휴대전화를 켜는데 왜 전화를 아직 켜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걱정이 더 증폭되었다. 아이가 너무 속상해서 나와 말하고 싶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더 참았다가 걱정하고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 계속 전화해 보는데 아이의 휴대전화는 계속 꺼져 있고...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 되어서 그냥 화장실로 갔다. 문을 걸어잠그고 앉아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가 집에서 통학하게 되면서 가졌던 나의 첫마음이 떠올랐다. 아프지 않고 학교 잘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이번 중간고사 성적은 마음에서 내려놓자고 했던 그 때의 그 생각들... 그 간절했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점수에 연연하는 모진 엄마가 되어 있었다. 성적 때문에 가장 자존심 상했을 것은 아이 자신인데 말이다. 아이에게 전화가 오면 시험 점수를 물어보지는 말자고 다짐한 잠시 후 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조금 전에 집에 들어왔다고... 얼른 전화해 보니, 기숙사 퇴소 신청을 하기 위해 찾아간 담당선생님과 못 만나서 기다리느라 늦어졌고, 휴대전화는 배터리가 없어서 꺼진 것이었다고 했다. 나의 마음 졸임이 기우로 끝나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시험 결과는 역시나 기대 이하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점심부터 챙겨먹고 쉬라고 했다. 아이가 무사하면 그걸로 되었지, 성적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아이의 무사함보다 앞서지 않는다는 걸 기도하면서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이 학교로 인도해주신 것이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모르지만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지 않을까, 이 상황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아이의 점수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도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앞에 놓인 이사부터 해결해 놓고 고민해 보려고 한다.

 3월말, 이사 갈 집을 계약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새 일터에서 연락이 와서 다음 날부터 바로 출근하게 되었었다. 그 타이밍이 얼마나 절묘했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여서 '이건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 일터에서의 일도 아무 조건도 따지지 않은 채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거라 생각하니 아무 것도 물어볼 것이 없었다. 낯선 환경이지만 일해 보니 역시나 좋은 사람들이 많고 내 능력을 인정 받는 분위기라 마음도 편안하다.

 아침에 전철역에서 일터까지 15분을 오솔길 같은 길을 따라 걸어오는데, 매일 기도하면서 걷는다. 새 날과 새 힘을 주셔서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힘과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나와 아이에게 감사한 일이 넘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시고, 우리가 복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그래서 더 좋은 것들을 많이 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우리가 욕심 때문에 인간적인 선택을 할지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달라고... 우리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길 원한다고... 물론 이사의 전과정도 하나님께 의탁하고 기도하고 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더 깨닫게 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풍족하심을 믿고 나의 짐을 내려놓게 된다. 내가 지고 있으면 짐일 뿐이지만 하나님께는 정말 별 것 아닌 일일 테니까...

 이사 준비가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머리와 마음이 복잡했는데 오랜만에 이곳에 들러 지난 번에 쓴 기숙사 이야기를 읽고 나니 어수선한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맞다,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었지', '저 때의 저 마음을 왜 잃어버렸을까?'하면서... 그리고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왜 지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종종거리면서 속상해 하는지... 부끄러운 기록이지만 이 글 역시 나중에 언젠가 읽었을 때 반성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남겨본다.

 오늘도 역시 내 몫은 '절대믿음', '오로지순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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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기숙사 생활은 열흘 정도로 끝날 듯하다. 끝나게 되어서 아이에게나 나에게나 다행이다 싶다. 아이의 짧은 기숙사 생활은 평생 기숙사 생활 해 본 적 없는 내게 큰 경험이 되었다. 불합리함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아이와 나-의 성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고, 세상에는 아직도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배운, 값지지만 열불 나는 일이 되었다. 정말 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속에서 열불이 났다...ㅠㅠ

 아이는 3월 19일 학교 기숙사에 입소해서 5일 지낸 후 집에서 주말을 보냈는데, 그 다음 주 1학년 기숙사생 중에 수두환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1학년 기숙사생들은 1주일 동안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에서 통학해야 했다. 고등학생이 수두에 걸리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럴 거면 뭐하러 기숙사에 들어간 건지...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 12월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에 맞는 학교 3군데에 지원을 해 놓고 나는 선택권을 하나님께 맡겼었다. 이 중에 어디로 가게 될지 저는 모르니 하나님께서 보내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고 아이가 가게 된 곳이 지금의 고등학교였다. 우리가 지원한 3개의 학교 중에서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은 가장 마음에 들지만 집에서 가장 거리가 먼 곳이라 만약 여기로 가게 되어도 통학할 일이 염려스러운 곳이었다. 알아보니 학년당 20명 정도씩 들어갈 수 있는 기숙사가 있었고 기숙사 입사생 선발 기준이 성적이라고 해서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면 기숙사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지원했던 곳이었다. 중학교 3년을 성실하게 생활한 덕분에 아이의 성적이 매우 좋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문제는 아이가 기숙사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느냐였다. 그래서 아이가 기숙사에서 생활하더라도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자는 결심을 했고, 이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는지 이제 와서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순차적으로 일이 착착 진행되어 이사를 앞두고 있다.

 아이는 기숙사 생활을 힘들어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들어 해서 아이가 기숙사에 있었던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나는 이틀에 한 번꼴로 기숙사에 갔었다. 집에서 통학할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은 몸이 힘들어서 그렇지 참을 수 있는데, 전형적인 꼰대스타일의 사감 선생님이 사사건건 감시하고 소리 지르고 이유 없이 벌점을 주면서 모욕감을 주는 것은 정신까지 피폐하게 만들어 너무 힘들다고, 사감 선생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턱 막힌다고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라는 건 나도 아이의 기숙사 입소 첫날 눈으로 확인한 바라 아이가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되었다. 내가 본 바로는 사감 선생님은 '기숙사는 감옥이고, 자신은 죄수들 위에 군림하는 교도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감 선생님과 몇 번 이야기해 보니 강압적으로 대하고 통제해야 아이들이 말을 듣고, 그래야 공부를 잘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새마을운동 때도 아니고 정말 '헐~' 할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감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면서도 개별 어머니들의 연락 받기를 원치 않았기에-딱 그 사감 선생님다운 태도다. 겉 다르고 속 다른... 학부모 대하는 태도 다르고 아이들 대하는 태도 다른... 전형적인 이중적인 태도.- 기숙사 대표어머니를 통해 의견을 전달했다.  '스스로 규정을 지킬 줄 아는 아이니 강압적으로 대하지 말아 달라, 건강이 안 좋으니 야간자습시간에 쉬고 싶다고 하면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나중에 아이의 짐을 가지러 간 내게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일부러 와서 변명을 늘어놓은 걸 보면 내 의견이 전달되긴 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사감 선생님은 자신의 문제가 뭔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앞으로도 전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지나친 억압과 규제가 아이들의 학습의욕을 높이고 성적을 향상 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 기숙사에 관련된 어른들 중 나만 하는 것 같았다. 기숙사 대표어머니조차도 청에 세자를 볼모로 보낸 고려 임금마냥 사감 선생님 눈치를 살피는 전형적인 치맛바람맘이어서 뒷담화를 하면서도 사감 선생님 앞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기숙사에 들어간 이후 아이는 계속 아팠다. 장에 문제가 생겼고, 감기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계속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어야 했다. 아이의 문제는 내 생각에도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었고, 의사 선생님의 소견도 나와 같았다. 학교 근처라서 가게 된 가정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다행히 좋은 성품을 가진 스마트한 분이셔서 아이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 주셨다, 상황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코 끝이 찡해질 정도로 고마웠다. 내가 이틀에 한 번 꼴로 학교에 갔던 것은 아이에게 힘 내라는 응원을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녀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다. 낮엔 학교 근처에 집을 보러 다니고 저녁엔 아이를 만나러 학교에 가고 하느라 일터에 출근할 때보다 교통비가 더 많이 나온 시기였고, 힘들어 하는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어서 입 안이 깔깔해 하루에 한 끼도 간신히 넘기던 때였다. 당연히 몸무게가 쭉쭉 내려갔다. 아이도 나도 힘든 강을 건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숙사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한데, 당장 기숙사에서 나와 집에서 통학을 하게 하자니 등하교에 소모되는 아이의 체력과 시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이의 기숙사 퇴소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이사까지는 아직 1개월여가 남아있을 때라서 '집으로의 정기외출은 1주일에 최대한 2회'라는 기숙사 규정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월요일 방과후에 기숙사에 입소하면 주중에 하루는 방과후에 바로 정기외출해서 집에 와서 자고, 금요일에도 방과후에 바로 집으로 정기외출하는 걸로... 그게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쾌하게 결론을 내려 주셨다. 바로 집에서 통학하라고.

 집에서 1주일 통학하는 동안 1학년생 1명 이후로 추가로 수두환자가 발생하지 않아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1학년 기숙사생들이 예정대로 기숙사에 다시 입소했는데, 5일 후 이번에는 수두환자가 2명 발생했다. 사실 3월초에 1학년 중에 수두환자가 발생한 적이 있었고 그 후로 1주일 간격으로 계속 수두환자가 나오고 있는 셈이었다. 생활관 같은 층에서 2명이 수두 확진을 받은 데다가 1명은 1학년, 1명은 2학년이라 학교에서 확산될 우려가 있다 해서 이번에는 1, 2학년 기숙사생이 모두 1개월 동안 퇴소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개월 뒤라 하면 학교 근처로 이사한 직후라 아이는 이번에 퇴소하면 기숙사에 다시 입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의 추이를 보면서 나는 '내가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숙사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이 다 힘든 것보다는 집에서 통학하면서 몸만 힘든 게 낫다는...

 역시 침구류를 다 가지고 가라는 연락을 받았고, 기숙사에 가서는 침구류뿐만 아니라 아예 아이의 짐을 다 챙겨서 가지고 왔다. 다시 올 일 없게 하려고 아이의 옷장과 침대를 몇 번을 확인했는지... 아이가 있지 못할 곳, 같이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는 곳에서 내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그러나 반이사 수준의 짐 나르기 4번은 정말 힘들었다...ㅠㅠ 집에 와서 세탁기 3번 돌리는 것도 역시...ㅠㅠ

 지금 아이는 집에서 통학을 하고 있다. 지옥 같은 기숙사 생활을 겪은 후라 그런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잘 하고, 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유 없이 모욕감을 주는 사람을 안 봐도 되니 정신적으로 편안해져 기숙사에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도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이번 일로 아이는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올 수 있었음에 정말로 감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기까지 얼마나 처절한 백조의 발놀림이 그 뒤에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니까... 낯선 지역의 학교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입학해서 이기적인 아이, 비열한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도 있었는데, 아이가 사교적인 성격이라 마음 맞는 친구들도 여럿 사귀어서 지금은 그 후유증도 이겨나가고 있다.

 어제 장학증서 수여식이 있었는데, 아이가 학교 동창회에서 성적우수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400명 정도 되는 그 학교 1학년 중 전교 2등으로 입학한 덕분이다. 중학교 생활 3년 동안 한결같이 성실하게 잘 생활해 준 아이가 다시금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아울러 고등학교 생활도 중학교 때만큼만 해 주기를 기도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보다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무엇도 두려워 하지 말고 비전을 향해 최선을 다 해서 노력하라고, 그렇게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나도 열심히 돕고 기도하겠다고...

 기숙사에 아이를 들여보내며 "힘 내. 엄마가 기도할게!"라고 말했던 저녁들이 떠올라 눈물이 어린다. '열흘 간의 기숙사 체험'이라고 짧게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들고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아이도 이번 기회에 세상에 대해 크게 배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불만과 원망으로 남지 않고 부디 아이의 인생에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기숙사로 인도하신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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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이 아이러니.

짧게 몇 줄로 끄적이고 말고자 한다.

 

강자와는 눈도 못 마주치면서

상대방이 약자라고 판단하면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야비하고 저급한 천성은

나이 불문, 생활수준 불문이더라는 것.

머리에 든 것 없이 입만 가지고 허세 부리는 자의 최후는

지금 내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결국 스스로 겪을 테니 그리 두고 싶고,

그 때가 되더라도 반성은 못 할 게다, 뭘 잘못했는지 모를 테니까.

너를 이대로 그냥 두는 게 내가 주는 벌이다.

손바닥보다 좁은 너의 세계 속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자족하며 살아라.

나는 넓은 세상에서 멀쩡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 테니.

혹시 나중에 잘못을 깨닫더라도 사과하지 말아라, 받지 않을 테니까.

나는 네 사과를 받아주어야 할 의무가 없다. 네가 뭔데!!!

 

아, 왜 나는 철없는 것들이 야비하게 굴면 냉정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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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에 아이가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다. 수학여행을 제외하면 긴 시간 동안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게 된 것이다. 같은 서울 안에 있고 한 시간 남짓 가면 만날 수 있지만, 아이의 얼굴을 못 본 채 24시간을 넘겨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참... 괴.로.웠.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 학교에 통학하느라 눈이 퀭해진 아이를 보는 것만큼... 집에서 통학하는 것보다 시간이나 체력 면에서 아이에게 더 잘 된 일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는데도 그랬다. 집 문제로 몸도, 마음도 힘든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물도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입사식을 하고, 준이사 수준으로 가져간 아이의 짐을 정리해주고, 기숙사 일과에 따라 자율학습을 하는 중인 아이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아이의 옷장에 급하게 쓴 메모를 남겨두고 돌아오는 길은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의 손길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살짝 흐트러진 이불, 벗어놓은 아이 실내복과 수면양말, 설거지통에 담겨있는 아이의 아침식사 밥그릇, 소지불가라 집에 두고 간 아이의 휴대전화,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된 아이의 방... 무엇보다 아이의 방을 보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전날 밤 마치 '떠나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한참을 청소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는데, 휑한 아이의 책상을 보니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금요일이면 올 텐데, 머리로는 그걸 아는데 마음은 아니었다.

 이렇게 마음이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사감 때문이다. 기숙사 입사 첫날이라 잔뜩 긴장해 있는 아이들을 권위적이고 고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았고 나도 겪고 나니 신뢰감이 생길 겨를도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질서를 잡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다는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사감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휴대전화도 못 가져갔는데 아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떡하지?', '나도 싫은 저런 사람을 아이가 참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기숙사에 아이를 보낸 것이 잘못한 일은 아닐까 하는 공포가 밀려왔다. 그런 곳에 아이를 두고 왔으니 내가 자지도 먹지도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입사 다음 날 수업이 끝났을 무렵 학교 공중전화로 전화를 했다. 사감이 '-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감시, 통제해서 감옥에 있는 것 같다고, 집에 가면 안 되냐고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자니 당장 데리러 가겠다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집에서 통학하면서 힘들었던 걸 생각해 보라며 아이를 달랬다. 나 역시 그걸 생각하니 아이를 데리러 갈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돈이 많았더라면 학교 근처에 바로 집을 사서 아이가 기숙사에 안 들어가고 편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아이가 고생을 하는 것 같아 그래서 더 괴로웠다.

 수요일, 기숙사 입사 서류를 갖다주러 학교에 가서 만난 아이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병원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가까운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원인은 역시 스트레스...ㅠㅠ 아이의 상황을 대충 말씀드렸더니 나이 지긋한 의사선생님께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며 여러가지 친절한 조언을 해 주셨고, 약을 사러 들른 약국의 할머니 약사님께서도 처방전만 보고도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며 안스러워해 주셨다. 처음 만난 분들인데도 아이의 입장을 헤아려주고 이해해주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는 걸 보면서 아이도 조금은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나 고맙던지...

 목요일, 종례가 끝났을 무렵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도 학교 근처에서 볼 일이 있어 가던 중이었다. 기숙사 입사생 중에 수두 환자가 발생해서 전원 퇴실하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했다. 짐을 대강 챙겨두고 저녁식사 하고 있으라고 하고는 서둘러 갔다. 이유가 뭐건 간에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는 게 얼마나 좋던지... 가 보니 기숙사 소독은 다 끝난 상태라 했고 급한 대로 아이들이 짐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짐을 다 가지고 나왔고 수두 잠복기가 지난 후에 다시 입사하기로 결정되었다. 그 사이 아이는 감기에도 걸려서 지금 약을 한 수저씩 먹고 있다...ㅠㅠ

 금요일, 다시 집에서 일어나 등교하는 길.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등교하는 건데도 3월초처럼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기숙사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장도 집에 오자마자 증상이 확 나아졌다는...ㅠㅠ 웃프게도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나도 입맛이 생겨서 밥을 먹게 되었다는...ㅠㅠ 아이가 없는 동안에는 하루에 한 끼도 의무적으로 간신히 먹었는데... 이러다 큰 일 나지 싶었지만 정말 입맛이 없었다.

 집에서 통학하는 동안 아이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먹여서 몸의 건강도 회복하게 돕고, 어디에 있든 하나님이 항상 함께 있고 엄마가 기도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다독이고... 아울러 내 마음도 재정비해야겠다. 다시 아이를 기숙사에 들여보낼 때에는 이번 주처럼 힘들지 않도록...

 아이나 어른이나 변화를 받아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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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데만 한 시간 걸리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너를 보는 일은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는 너를 보는 것, 여느 때 같으면 냄새부터 싫다고 고개 돌렸을 인삼을 아침 저녁으로 군말 않고 받아 먹고 아침에만 먹던 비타민을 저녁에도 먹는 모습을 보는 것, 네 대답이 평소보다 조금만 곱지 않아도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지금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 알고 있다. 보는 나도 힘이 들어서 당사자인 너의 힘듦을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가슴이 먹먹했다. '마르고 심약한 네가 이 고단한 일상을 잘 버텨줄까?' 하는 생각에 내가 더 불안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니 나도 아이만할 때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는 이 시기가 긴장되었었다. 거칠게 자란 덕분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지만, 아니 어찌 보면 받았는데 그걸 드러내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낯선 이들 속에서 그걸 티내지 않으려고 데면데면한 척하며 살았던 것 같다. 다행히도 금세 친구 하자며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은, 오히려 남들이 보기에는 인기있는 아이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에게서 날 닮은 면을 볼 때마다 급긴장하곤 했는데, 요즘은 아이가 이런 나의 인복도 닮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며칠 간의 강행군이 힘들었는지 오늘은 커피도 마다하고, 점심식사도 생략하고 긴 낮잠을 잤다. 고생 중인 아이에게 미안해서 낮잠은 안 잤는데, 오늘은 기운이 없어 누워야 했다. 스트레스 받으면 잠이 몰려오는 이상한 체질 때문이기도 한 것 같고... 요 며칠 잘 버텼다 했는데...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손발이 금방 따뜻해지지 않아 혼자 신경질을 부리다가 잠들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머리의 무거움이 가셔서 좋았다.

 아이에게 줄 인삼을 끓이면서 즐겨 가는 인스타그램에 들렀다가 찜닭을 봤다. '당면 가득 넣은 뚝배기 반찬을 한 번 해 먹어야지.' 계속 생각하기도 했고, 마침 냉장고에 아이가 슬슬 싫증내는 것 같은 닭백숙도 있고, 당면도 있다. 쫄깃한 버섯과 아삭한 청경채가 좀 들어가면 더 맛있어질 것 같아 하교한 아이에게 인삼을 내주고는 얼른 나가서 사 왔다. 이럴 때는 시장이 5분 거리에 있다는 게 좋다.

 넓적한 팬에 물을 끓여 당면을 불린 후 물은 따라 버리고 그 팬에 닭백숙을 약간의 국물과 함께 넣었다. 국간장, 키위시럽을 넣어 단짠의 맛을 맞춘 후 방금 사온 청경채와 팽이버섯을 씻어서 수북하게 넣었다. 진간장의 순간적인 쨍한 짠맛이 싫어서 간장은 국간장만 쓴다. 키위시럽은 아이가 여름에 팥빙수에 넣고 싶다고 해서 산 건데 다 먹지 못했다. 그래서 재료 소진 차원에서 음식에 단맛이 필요할 때 넣고 있는데, 신맛이 없어 그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집에서 해 먹는 음식에 단맛이 거의 없어서 언제 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먹기 직전에 참기름 한 번 두르고 참깨 갈아 뿌리면 될 것 같다. 오늘 저녁의 메인 메뉴, 간장찜닭.

 올 겨울 내내 그 어느 때보다 먹는 일에 결사적이었는데, 아이의 몸무게가 하나도 늘지 않았고 볼도 홀쪽하다. 끼니 때마다 밥도 가득 주고 고기 종류를 돌아가며 해 먹였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 살찌게 하는 식단을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하교한 아이는 지금 낮잠 중... 잘 자고 잘 먹고, 해서 힘 내라. 잘 버텨서 얼른 뿌리 내리고 쭉쭉 자라서 너의 꽃을 피워라. 너의 곁에 서서 나도 힘껏 도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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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월요일부터 아침형 인간으로 살고 있다. 일터에 출근할 때에도 한 번도 일어나 본 적 없는 시간인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는 덕분이다. 이틀째까지는 일어나는 일이 너무 괴롭더니 오늘은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잠에서 깼다. 바뀐 생활이 드디어 몸에 스며들기 시작하는 걸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괴로울 때 생각한 것이 아이다. '달라진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네가 백만 배 더 힘들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 발딱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더라는...

 이번 주의 하루하루는 일 년보다 길게 느껴진다. 확 달라진 일상이 뿌리 내리지 못한 채 붕 떠 있고, 그래서 어떤 생각도 다 불안을 가격표처럼 달고 마음 속에 뒤섞여 있다. 예상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겪자니 예상했던 것 이상이라 마음 속이 더 복잡하다. 시간에 쫓겨 밥 한 그릇도 다 먹지 못한 채 교복을 입는 아이를 본 오늘 아침은 더... 어떻게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할지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출근시간에 시내에 간 것은 처음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나의 출근길은 대부분 시내와 역방향이었다. 도로도, 버스 안도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한 시간이 출근시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서점 문 여는 시간을 기다리며 가까이에 있는 커피가게에서 책을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나 보다. 서점 문은 진작 열렸을 시간에 옆 테이블에 앉는 타인의 코트 자락에 묻은 김치찌개 냄새에 정신을 차리고 책 속에서 빠져나왔다. '벌써 점심시간인가?' 하고.

 책을 사고 몇 권은 선 채로 급하게 훑어보고 서점을 나서니 빌딩 숲인 시내 거리에서 기분 좋은 활기가 느껴졌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뀔 때마다 길 바닥의 하얀 선이 안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아이, 기분 좋아!' 하는 느낌이 엄지발가락 끝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그들의 발걸음만으로도 점심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바쁜 일에서 벗어나 여유 있게 맛있는 점심식사 하기를~' 기도하며 스쳐 지나왔다.

 버스를 타고 한강대교를 건너는데 인도 옆에 경찰차, 119차 여러 대가 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경찰과 119대원들의 두런두런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한 쪽에서는 점심을 먹을 때 한 쪽에서는 삶을 놓아버리는 게 인간세상일까.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며 하늘을 보았다. 언뜻 든 나의 생각은 그저 기우이기를...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간의 삶이라지만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으면 좋겠다. 힘든 가운데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오늘도 일 년 같은 하루가 가고 있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 누리지 못하고 보내는 이 하루가 아쉽긴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 볼 때 아깝지는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다. '나를 지금 여기에 둔 것도 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고, 내 뜻, 내 계획과 다르다고 그냥 흘려보내기엔 오늘 하루도 소중한 내 인생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기도하며 지금 여기에서 내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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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일상적인 수다 2018. 3. 6. 22:39

 

 어제부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너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침 7시 50분까지 등교'가 웬 말이냐...ㅠㅠ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도 어제부터 실감하고 있다. 분명 나도 다 겪었는데 그건 다 잊어버리고 네가 겪는 걸 보는 것은 아프다, 많이...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과 '어쩌나... 어쩌나...'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어떻게 하는 것이 너를 돕는 일인지 계속 생각하고 있다. 너 혼자 힘들게 두지는 않을 거야.

힘껏 도울 테니 힘내라!!! 거기서도 네 빛을 발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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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내 마음을 토닥토닥 한 글.

 

두려움은 왜 생긴 것일까

이런 일은 내게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 내 삶에 문제가 있으면 안 된다라

는 전제에서 오는 것 같다.

불편한 일들에 대해 좀 더 유연한 마음이 있다면 세상 살기 훨씬 수월할 듯 싶

다. 내 삶이 뭐라고 괴로운 일들이 일어나면 안 되는가 말이다. 어차피 세상은

명암이 공존하는 곳인데.

 

가끔 가는 인스타그램에서 이 글을 읽고 '그러네...' 싶었다. 저 문장 중 어느 하나 틀린 것이 없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어쩔 줄 모르게 불안했던 오늘의 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2. 그리고 지난 연말 내가 읽고 읽고 또 읽었던 인스타그램의 글귀 하나.

 

어떻게 더 잘해요.
그만큼 애썼음 되는 거지.

 

난 이 말을 글자 하나 다르지 않게 똑같이 들은 적이 있다, 1년 반 전에 일터 관리자로부터... 그 때 내가 태어나서 들은 긍정적인 말들 중 최고의 찬사라는 생각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한 달 동안은 머릿속에서 저 말이 메아리쳐 울렸다. 그 이후 마음이 힘들 때면 가끔 스스로에게 저 말을 하곤 했다, "어떻게 더 잘해? 그만큼 애썼음 되는 거지!"

그런데 그 찬사를 자주 가는 인스타그램에서 다시 마주친 것이다, 내가 가장 우울해 하는 시기인 연말에... 처음 들었을 때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눈을 떼지 못하고 몇십 번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그러고는 주눅들어 있는 스스로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게 최선이었어. 애썼어!"

 

문장 하나, 글 하나에서 불시에 받는 위로도 가끔은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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