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2019년의 마지막 업무가 오늘 오전에 끝났다. 내일도 또 볼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끝까지 착하고 따뜻한 사람들과 이별해야 하는 시간이었기에 마음이 조금 아렸다. '일이 힘에 부쳐 길게 느껴지던 한 해였는데, 내 일상에 이토록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난 2019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나 보다.' '하지만 올해도 또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일터에서 돌아오는 길... 이런 날에는 우울에 가라앉기 전에 일상의 정신없는 영역으로 빨리 들어가야 한다.

계획했던 대로 대형마트에 들렀다. 바이러스 때문인지, 오전이어서인지 한가해서 휴대전화 메모장의 리스트를 체크하며 천천히 장을 봤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음악덕분에 긴 쇼핑 시간이 지루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눈으로 물건을 직접 보고 만져보고 하는 이런 쇼핑은 인터넷으로 하는 쇼핑이 대신할 수 없는 정취가 있다. 뭘 그리 많이 사지 않았지만 충분히 보고 생각하고 고른 물건들을 품에 안고 돌아오는 길은 기분 좋았다. 

연휴 동안에 오랫동안 써온 좌탁의 다리가 하나 망가졌다. 철제다리가 부러진 것이고, 그것이 충분히 오래 사용한 결과가 초래한 자연스런 결과라는 걸 인정하기에 굳이 고칠 마음이 없었다. 쓰던 물건이 망가지면 고쳐 쓰고 또 고쳐 쓸 정도로 소유한 물건의 양을 늘이기 싫어하고 쓰레기를 만들기 싫어하지만 이번에는 얼른 인터넷에서 적당한 물건을 골라 주문해버렸었다. 오늘 드디어 좌탁이 배송되었는데, 예상한 것보다 더 쓰임에 적합한 사이즈인 데다가 이전의 것보다 크기가 작아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니 방도 좀 더 넓어보여서 또 기분이 좋아졌다.

TV를 켜니 '귀여운 여인'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어른아이의 성장, 타인과의 진정한 교감을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아직까지 0순위에서 밀려나지 않은 영화이고, 이 영화 때문에 나는 줄리아 로버츠를 좋아하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어 그것만으로도 좋은데, 다시 봐도 역시 마음에 든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게 되고, 올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마음을 다잡게도 된다. 우울하고 슬플 때 그 기분이 나를 잠식하게 두지 않고 이렇게 좋은 것들을 보내 나를 위로해주고 품어주는 그분덕분에 오늘은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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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로 독감약 복용이 끝나고 아이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콧물도 많고 호흡기 전반이 안 좋긴 하지만, 아이의 상태가 안정적이고 가벼워 보여 이제야 마음을 놓은, 그런 하루가 갔다.

고생은 아이가 다 했겠지만, 늘 아이가 아프면 어릴 때 아이가 앓던 밤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내가 고생한 기억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아이의 모습, 아프다고 말하는 옹알거림,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재생되는 것이다. 그 때도 아이는 어지간하면 아픈 내색을 안 해서, 나중에 발견한 후 더 속상해 했던 그런 기억... 내겐 아프면서 미안한 기억이어서, 열로 끙끙 앓으면서도 어릴 적에 앓던 이야기들을 들려달라고 하고는 남의 이야기처럼 듣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망각은 정말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아이라도 그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전염력도 없다 해서 앓는 동안 덮었던 아이의 이불커버며 패드, 베개커버를 몽땅 세탁해서 널었다. 목화솜이라 세탁하기 어려운 이불 속통은 환기가 잘 되는 곳에 널었다가 알콜을 흠뻑 뿌려 말린 후 새 커버를 씌웠다, 베개도 마찬가지로 알콜을 뿌린 후 새 커버를 씌웠다. 이것만 하는 데에도 몇 시간이 훌쩍 갔다. 어제는 쇠고기를 큰 덩어리로 배송 받았다. 앓는 동안 아이는 차려주는 대로 평소와 같은 양의 밥을 꼬박꼬박 먹었지만 숟가락질의 속도는 슬로우모션이었다. 입맛이 없지만 나 생각해서 먹어주는 것...ㅠㅠ 단백질 보충해 빠진 살 좀 붙여 볼 생각으로 아이가 앓는 동안 주문한 것이었다. 문제는 한 덩어리로 와서 내가 직접 잘라야 했다는 것. 근막이나 힘줄은 구우면 쫄깃해지는 식감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부위라 슬라이스해서 따로 모으고, 살코기는 스테이크로 먹을 수 있게 잘라서 소분했다. 냉동실에 넣으니 마음이 든든... 오늘 그 중 한 봉지를 꺼내 구웠는데 다행히 맛도 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대로 소금, 참기름에 찍어 먹게 했더니 먹는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다. 그것만으로도 뿌듯... 걸려오는 전화 한 통화, 문자 하나 없이 그저 오늘 하기로 계획한 일들을 조용히 하나씩 해나가는 하루... 그게 내가 바란 일상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마음이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더욱 더 감사하다.

'슈가맨' 7회, 귀가 즐거워서 이미 본 방송임에도 또 보고 있다. 별이 진다네, 옛 친구에게, 운명은 지금도 여전히 즐겨 듣는 여행스케치의 노래들인데 이제야 소개되다니... 대중에게 메이저급의 인기를 끈 팀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시인과 촌장도 소개될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싶다. 귀도, 마음도 감사한 하루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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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젯밤에도 열이 많이 올랐다. 인후통도 계속 있고, 콧물도 여전히 많이 난다고 했다. 독감약을 먹는다고 바이러스가 바로 죽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따뜻한 물을 마시면 좀 나아지는 것 같다고 해서 텀블러를 아이 머리맡에 두고 잔 밤이었다. 열 때문인지 손발이 계속 차가웠지만 몸은 좀 가벼워진 것 같다고 해서 그나마 조금은 긴장을 풀고 잤다.
아침에 깨자마자 아이 이마부터 짚어봤다. 아이는 밤새 잠을 설치다가 아침에야 단잠에 든 것 같았다. 다행히 열이 잡힌 것 같았다. 체온계로 재어보니 37도 조금 넘었다. 독감약을 먹어도 하루는 앓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걸 아이의 고생을 통해 배웠다는 게 마음 아프지만...ㅠㅠ 창문 열어 환기부터 하고 아이가 마실 물을 끓였다. 아이는 밤에 텀블러의 물을 다 마셔서 알아서 물을 더 채워넣어 마셨다고 했다. 평소 물을 너무 안 마셔서 물 마시라는 잔소리를 자주 했는데, 독감으로 앓는 동안에는 안 해도 될 것 같다. 서둘러 아침 먹이고, 독감약과 감기약도 먹였다. 그러고 나자 아이는 다시 잠들었다.
간병하는 사람이 할 일이라고는 관찰과 기다림밖에 없다. 그래서 킐팅조끼를 꺼냈다. 아이가 뱃속에 있던 겨울에도 입었던, 의미 있는 조끼다. 오래되어 바이어스가 헤져서 수선할 필요가 있었는데,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밀쳐두고 있었다. 간병하는 동안 하기에 딱 좋은 일감이다. 세탁기에서는 아이의 빨래가 세탁되고 있다. 다 낫고 난 후엔 이불 빨래도 대기 중... 얼른 낫기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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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도 열, 두통, 인후통, 오한, 약간의 종아리 통증과 온 몸 여기저기 아픔, 기침과 가래, 콧물... 아이에게 나타난 이 증상들은 어제 병원 다녀온 후에도 약 먹으면 좀 나아졌다가 약효 떨어질 쯤 되면 다시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약을 먹어도 열이 38도 가까이 오르고, 심한 인후통, 가래가 나아지지 않아 어제부터 독감 증상에 대해 계속 검색하고 있던 중이기도 했다. 게다가 어젯밤에 열이 오르지 않는데도 아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거리고 자는 걸 보고나니 더 고민할 수가 없었다. 어릴 때 고열 때문에 얇은 이불 하나 덮게 하고 창문도 열고 잤던 겨울밤들이 떠올라 나도 밤새 잠을 이루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이를 생으로 앓게 할 순 없다, 독감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독감 검사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병원에 갔다.
역시 의사는 문진 후 독감 검사부터 하자고 했다. 결과는 의심할 여지 없는 독.감... 주사 맞고 약 먹으면 1~2일 사이에 열도 떨어지고 몸도 가벼워진다고 하니, 아이가 더 이상 힘들지 않겠구나 싶어서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약국에서는 어제 독감 검사 하지, 괜히 하룻동안 고생했다며 아이를 안스러워 했다.
집에 오자마자 간식 먹인 후 바로 약을 먹였다. 주사 덕분인지, 약효 덕분인지 몰라도 고통스러웠던 인후통이 사라졌고 아이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혹시 나타날지도 모를 약의 부작용을 조심스레 설명하며 집이 몇 층인지, 1~2일은 아이 혼자 두지 말고 지켜보라고 한 의사선생님의 말이 마음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지만, 그건 내 몫의 일이니 지금은 그저 아이가 살 만한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도 좋다.
사실 어제부터 격리 중이긴 했지만 5일간 격리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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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블랙커피원샷

 

한 동안 잘 버틴다 싶었다. 늘 겨울이면 아이가 아팠다. 크리스마스 전후면 드러내지 않아도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3살 무렵 아이가 그 시기에 정말 크게 아픈 이후 그 맘때엔 늘 그랬다. 그러다 이젠 다컸으니 괜찮겠지 하고 마음 놓고 있었나 보다. 그랬는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 날이다., 오늘은...

독감이 의심되는 증상들이 나타나 아이가 병원에 다녀왔다. 열이 나면 순식간에 40도까지 확 오르는 게 아이의 열 진행방식이었기에 열이 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긴장했다. 병원에서는 내일까지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병원에 와서 독감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기침이 계속되어서 일단 아이 호흡기의 습도 유지를 위해 마스크를 쓰게 하고, 약 기운이 잘 퍼지도록 자게 했다. 다행히 조금 자고 일어난 아이는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열은 그대로다...ㅠㅠ 아무래도 정말 내일까지 지켜본 후 판단해야 할 것 같다. 그때까지 나의 역할은 관찰자...

스탠바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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