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며칠 전 아침부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내다 보니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집이 이사 가는지 사다리차로 짐들이 연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이 난리 중에 이사를 진행해야 하는 마음은 어떨지, 보는 것만으로도 심란했다. 그러더니 오늘은 이사 들어오는 소리로 또 오후 내내 시끄러웠다. 짐이 많은지 해가 진 뒤까지 오랫동안 사다리차 소리가 이어졌다. 하필 집 바로 옆에서 벌어진 일이라 소음이 큰 데다가 시간도 너무 길어지니 나중엔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든 생각이 '그래 이런 게 일상이지.'였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로 인해 화도 나고, 그래도 어쨌든 시간이 지나 해결이 되고... 그런 게 일상이었지.' 하는... 

TV에서 새롭게 시작된 '유퀴즈' 제 47화 Warriors를 보고 있는데, 저절로 눈물이 난다. 직시하고 싶지 않아서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것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의 위급함, 끝날 듯 끝날 듯하면서도 끝나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 내가 지켜야 할 사람에 대한 절박함 이런 것들...

이번 주부터는 정신건강을 위해 뉴스는 하루에 두 번만 본다. 일부러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밝은 감정을 가져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몽긍몽글해질 드라마를 찾아서 보고 있다. 버텨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먹는 양이 줄어 반찬이라도 이것저것 연이어 새로 만들며 영양가 있는 식단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커피도 맛 때문이 아닌 양으로 먹는 것 중 하나였는지 입맛이 없어지니 아침에 정신 차리기 위한 한 잔만 마시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줄커피를 마시고 살았었는데... 타투 스티커는 하루만에 지워졌다. 반찬을 만드느라 불 위에 손이 몇 번 왔다갔다 하면서 녹은 것 같았다. 다음에 다시 하면 되지. 표고버섯을 가위로 다듬다가 왼쪽 손가락 끝부분을 아주 조금 자른 사건도 있었다. 피가 많이 났지만 정말 아주 조금 잘린 거라 이 시기에 병원에 가야 하나 하는 심란한 고민은 오래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아프다...ㅠㅠ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다. 이전과 같은 패턴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많은 것이 이전과 달라진 나날을 살고 있다. 

콜센터 감염 사태를 보면서는 과연 이 상황의 마침표가 있긴 할까 하는 생각에 답답해졌다. 하지만 이 또한 현재의 일상이다. 그러니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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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집순이라고 해도 일 주일에 한 번은 나가야 한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배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오늘은 마침 주민센터에 들러야 하는 일도 있어 제법 걸었기에 일 주일만에 거리 구경도 했다. 확실히 어린이나 청소년은 안 보였지만, 큰 커피숍엔 마스크 안 한 채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어른들이 보였다. 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가급적 인적이 드문 길을 택해 걸었고, 바깥에 있던 내내 마스크와 장갑을 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얼른 이 사태가 진정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고, 내가 어떤 피해를 입기도 싫고 남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기도 싫기 때문이다.

집에서만 보내는 나날이 재미 없긴 했나 보다. 가끔씩 보며 키득거릴 요량으로 타투스티커를 샀다. 내가 이런 걸 하고 다닐 수 있을까 조금 두근거리긴 했으나 설명을 읽어보니 어렸을 때 곧잘 하던 판박이가 아닌가. '오호~ 그렇담...?'하며 잘 되나 작은 것으로 먼저 해 봤다. 아~주 잘 된다. 이제 지워질 때까지 보고 즐길 일만 남았다. 오늘의 재미있는 일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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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드라마가 이도우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을 알고 원작 소설의 내용을 검색해봤었다. 1회와 2회를 보고 나니 드라마에서 앞으로 펼쳐질 내용이 궁금해서였다. 과연 해원과 은섭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해원의 이모는 왜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지, 해원의 어머니는 왜 남편을 죽였는지, 은섭은 왜 산에 남다르게 익숙한지 궁금한 게 많았다. 이쯤 되면 차라리 책을 후다닥 읽는 게 더 낫겠다 싶었으나, 언젠가부터 나는 소설책은 사지 않는다. 나를 홀릴 만한 소설책을 찾아 늘 기웃거렸으나 찾지 못했고, 그래서 소설책을 사지 않은지 한참 됐다. 내용이 궁금한 소설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곤 했다. 그러고 나서 소장하고 싶어지면 살 생각이었는데, 책욕심 많은 내게 그런 욕구를 불러 일으킨 소설은 한참 동안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변수가 됐다. 도서관이 장기휴관에 들어가면서 책을 빌릴 수 없게 되었는데, 내용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사기는 싫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전자도서관이었다. 문제는 전자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의 종류가 많지 않다는 것. '날씨가...'는 없고 이도우 작가가가 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라는 소설만 있었다. 안 그래도 이도우 작가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많이 본 글이 '날씨가...'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게 '사서함...'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바로 대출하고는 읽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 먹은 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밤이 깊어가도 뒤의 내용이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잡으면 결국 끝을 보고야 마는 성향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성향 때문에 소설책을 쉽게 손에 잡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 내 현실에는 소설책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가하니까... 결국 밤을 새워가며 읽은 끝에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서야 잠들었다.

앞부분에 등장하는 공진솔의 오랜 습관을 보고 이미 내 마음은 진솔에게 기울 수밖에 없었다. 일이 손에 안 잡히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 연필 몇 자루를 깎는 습관은 내게도 오래된 습관이라... 그것말고도 긴 종로 거리를 걸어 교보문고에 도착해서는 아픈 다리를 쉬어간다는 개념으로 오래 책을 읽곤 한 청춘시절의 이야기도... 시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생각도... '어쩌면 이 여자는 '나'일지도 모르겠구나.'하는 생각으로 계속 읽게 되었다. 세상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무의식적인 끌림이었다.

'비죽거렸다, 민숭민숭하네, 거치적거리다, 피식 실소했다,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나왔더니 복장도 헐렁하고, 도 닦는 사람처럼 헐렁헐렁, 입가에 미소가 묻은 채로' 등 흔하게 볼 수 없는 단어를 접한 반가운 느낌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함께 쓰여 오히려 빛을 발하는 데서 오는 신선한 느낌,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질 정도로 상황과 대상을 구체적이면서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서술 방식, 인물이 머릿속으로 생각하거나 혼자 읊조렸을 법한 문장까지도 서술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여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세련됨 이 모든 것이 차분하지만 힘 있게 느껴졌다. 앞 부분을 어느 정도 읽었을 때 이미 '아... 이 작가는 이 이야기를 깔끔하게 잘 마무리 짓겠구나.'하는 믿음이 갔다.

처음엔 뭐든 가볍게 여기고 멋대로 행동하는 한량 같아 보였으나 100%의 진정성을 가지고 사랑 앞에 섰던 남자 이건, 그의 군대 시절 이야기로 인해 '양떼같이'의 새로운 쓰임을 알았다. 사랑 앞에서 주춤거리다가 결국 도망을 선택한 진솔의 마음을 돌린 그의 진정성, 자신의 마음을 용기 있게 직시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 인생에서 달아나지 말라고 말하는 그의 용기는 잔잔하지만 뜨거웠다. 매사에 심드렁하게 보였지만 적어도 자신의 현재의 삶에 대해서는 진솔하고 열정적이었으니까... 그의 모습에서 그의 할아버지 이필관의 모습도 보이는 것도 재미있었다. 호탕하고 자유분방하게 산 것처럼 보였지만 그 분도 매순간 자신을 들여다 보고 뜨겁게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주춤거리는 진솔의 마음을 잡아 이건에게 건네준 분.

읽어가다 보면 어느 새 이야기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이 때는 진솔이 이런 표정을 지었겠구나, 이 장면에서는 이건이 이렇게 행동했겠구나 하며 저절로 머릿속에서 드라마로 바꿔 상영하게 만드는 것도 이도우 작가의 필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다. 이래서 그 많은 서평에서 오랜만에 마음을 설레게 만든 소설이라는 찬사가 쏟아졌구나, 나도 저절로 이해 당하고 말았다. 인물의 정서를 이토록 따뜻하게, 그러면서 섬세하게 표현하니 저절로 빠져들 수밖에...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도 아마 그럴 것이다. 매 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보게 되겠지. 기대가 된다.

이틀 동안 이 작품을 읽으면서 현실에서 쌓인 불안감과 초조함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이것이 설렘이 가진 치유의 능력이고, 소설이 가진 힘이 아닐까. 이도우, 그녀의 작품 안에서 이틀 동안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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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이렇게 일기를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오늘이 며칠인지 알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중 한 번도 달력을 볼 일이 없다. 집에서만 있다 보니 시계도 잘 확인하지 않게 된다. 활동량이 준 탓인지 배고픔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전시같은 지금의 이 상황때문에 입맛이 없는 것일 지도... 그저 배가 고프면 그제서야 먹을 생각을 하니 이래저래 하루에 세 끼를 챙겨먹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부실하게 대충 먹지는 않는다. 오늘은 모처럼 아침에 제 때에 일어났다. 드디어 바뀐 밤낮의 위치가 제대로 돌아오려나?

점심 무렵 간장떡볶이를 해 먹었다. 떡볶이집에서 나는 간간하고 달큰한 냄새로 채워진 주방이 따뜻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신동아쇼핑센터 지하에서 자주 사 먹던 떡볶이와 찰순대가 생각났다. 언젠가 이 사태가 진정되고 난 후 다시 먹는다면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오늘의 간장떡볶이는 대파와 양배추를 듬뿍 넣어서 만들었다. 그래서 그랬나? 유난히 달달했다. 아침밥이 다 소화되지 않아 배가 고프지 않다던 아이도 한 입 먹어보고는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평소 내가 만든 음식 맛에 스스로 흡족해 하는 나도 맛있게 먹었고, 아이도 맛있다고 했다. 그랬으면 된 거지.

다시 밤이다. 다정한 느낌을 주는 책을 읽고 자야겠다. 짧고 깊게 잘 수 있기를... 꿈 꾸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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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길어지면서 일상은 흐트러졌고, 연초에 했던 다짐은 이미 깨졌다. 마음 깊이에 숨겨놓은 채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만약 내가...', '만약 아이가...'로 시작하는 내 불안의 크기는 적어도 아이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다. 그걸 알면 아이도 불안해 할 테니까... 아까 '올해 수능도 바뀌는데 개학 3주 연기라니, 대입 일정은 변동이 없을지... 이래저래 2002년생은 실험용 쥐냐?'하는 댓글을 아이와 함께 읽고는 둘 다 공감하며 웃고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불안의 덩어리에 1을 보탰다. 이 맘때가 되면 아이의 새 학년, 새 반은 늘 내 두근거림의 분량을 제곱해 버리곤 하는데, 올해는 거기에 새로운 분량이 더해진 것... 이번에도 역시 아이에게 들키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불안을 잊기 위해서라도 규칙적인 일상을 되찾아야 할 텐데, 밤은 늘 달콤하고 새벽은 언제나 아름답다. 어둠 속에 깨어 있는 시간이 이리 좋은 걸 보면 나의 밤낮은 이미 바뀌어 버린 것 같다. 잠이 오지 않는 그 시간, 마침 사람들도 덜 나오는 시간이니 바깥공기 마시며 산책이라도 다녀올까 하는 생각도 든다. 흐트러져 버린 일상이 그 산책으로 인해 오히려 돌아오지 않을까.

다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담담한 일상을 평온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비록 어둠 속에 깨어 있는 시간이 좋을지라도. 다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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