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으로 바람이 제법 부는 것이 느껴진다.
일주일 전까지 4년 동안 살던 집은 우리 집보다 높은 건물이 많이 있던 지역의 2층이라
바람에 창이 덜컹거리는 걸 느낄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여기는
주변에 낮은 빌라들이 주로 있는 주택가의 아파트 4층이다 보니
베란다에서 보면 주변의 옥상들만 주르르 보인다.
본의 아니게 우뚝 솟은 셈이라 바람이 부니 막아줄 것이 없어 바로 창을 흔드는 것.
이 집으로 이사하기로 한 이후 엄마 집에서 피난생활한 것이 7주.
엄마도 힘들었겠지만, 아이도 힘들어했고 나도 더 할 나위 없이 지쳤다.
그래서 막상 이사를 하고나자 그만 긴장이 풀려버렸나 보다.
빨리 짐정리를 해야 겠다는 생각도 없고,
페인트칠 할 곳도 있고 도배해야 할 곳도 있는데
서둘러 해야 겠다는 생각이 안 든다.
당장 써야 하는 주방과 침실, 욕실만 정리해 놓고는
쉬엄쉬엄 정리하자고, 그것도 생각만 하고 있는 중이다.
이사하기까지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기적인 면과 위선, 악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1초 뒤면 드러날 일인데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뻔뻔하게 이기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 참으로 많지 않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고,
이런 악한 세상에 내 주변에는 그래도 사람다운 사람이 많음을 다시 한번 감사 드렸다.
새 집이라 좋긴 했지만 좁은 집에서 4년을 살았던 터라
이번에는 오래 되긴 해도 넓은 집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아이가 자유롭게 뛰어다니게 하고 싶어서 아랫층 없는 빌라를 주셨으면 했는데,
집 보러 나간 첫 날 운명처럼 이 집을 만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알고 이리로 이사하기로 했다.
아파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는 아파트라도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라 많이 건조하지도 않고
높은 건물 없는 높이에 정남향이라 햇빛이 잘 들고 따뜻하다.
하늘도 훨씬 많이 보인다.
제일 좋은 점은 아이 학교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다는 점.
이전 집도 걸어서 10분 거리이긴 했지만 건널목을 두 개나 건너야 하는 데다가
아이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 아니어서 등하굣길의 위험성에 늘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졸업하기 전에 학교 가까이에서 살게 되어 그 점이 제일 감사하다.
전보다 방이 하나 더 늘어나 방 하나는 아이의 책상만 둔 아이 방으로 하고
제일 작은 방에 책장을 다 넣고 책은 모두 거기에 꽂기로 했다.
일명 책방을 따로 두기로 한 것.
아이 방과 마주 보고 있는 그 방은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벽면이 다 책장이다.
아이도 나도 제일 좋아하는 방이 될 것 같다.
넓은 집에 오니 무엇보다도 아이가 참 좋아해서
모처럼 엄마 노릇을 한 것 같아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더 넓은 집으로 옮길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셔서 어제보다 오늘이 더 부유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심란했던 2월 중순부터 읽기 시작했던 신약성경을
출퇴근 시간 짬짬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에 요한계시록까지 다 읽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어서 내려놓아야 했던 문제들이 그 기간 동안
다 해결되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내가 해야 했던 것은 그저 믿고 따르는 것뿐이었던 것이다.
실제로도 그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요한계시록의 가장 마지막 장을 덮고나자 제일 먼저 든 깨달음이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갈아타며 출퇴근하는 지하철 속에서 정말 잠깐씩 읽었을 뿐인데
수십 년 동안의 믿음생활 동안 한번도 해내지 못했던 신약 통독을 해냈으니,
작은 것의 힘이 새삼 놀라웠다.
마찬가지로 나의 이 작은, 보잘 것 없는 믿음도
차곡차곡 쌓여서 하나님의 큰 일에 쓰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이 집에서
더욱 더 기쁘고 감사한 일이 많이 생기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인도하여 주시길...
하나님의 자녀로 부를 누릴 수 있도록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길...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먼저 그 놀라우신 능력으로 해결하여 주시길...
그리하여 순종하며 사는 우리의 삶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저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에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