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순재 형님은 자상하게 얘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꼭 필요한 말 아니면 안 해. 나는 어렸을 때 너무 어렵게 자라가지고.. 고생은 그때 해봐서 웬만하면 참아. 참을 수가 있다고. 그때 훈련이 돼서. 그런데 조금 개인적이야 내가. 이게 잘못 보면 이기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이기적인 생각도 있지. 마음이 넉넉하지 못해요. 이렇게 베풀고. 어릴 때 어려웠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어 가지고."

 

 내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쩌면 그렇게 다 딱 내 이야기인지... 그래서 나는 힘든 순간을 너무 잘 참을 때, 선뜻 먼저 베풀지 못하고 주춤거릴 때마다 스스로가 참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실이니까...

 나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그렇게 고생하는 게 좋으면 너나 하라고 대꾸한 적도 있다. 그 말은 고생은 안 해 본 사람, 아니면 고생을 시키는 사람이나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이다. 정말로 젊어서 고생을 해 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젊어서 고생은 될 수 있으면 안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고... 곱게 자란 사람이 결국 끝까지 곱게 살더라고... 불공평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게 현실인 것 같다고...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하나님만이 아시겠지. 그래서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런 현실에 불평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 삶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니까... 불평하는 동안에도 소중한 나의 시간이 흘러가니까...

 신구 할아버지를 좋아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건강하셔서 방송에서 오래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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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매

---"아파..."

: 애신을 만나고 돌아온 구동매가 등을 때린 호타루에게 한 말이었는데, 내게는 저 말이 "마음이 아파."로 들렸다. 그리고 바로 칼 손잡이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 한 방울... 그건 구동매의 눈물 같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이미 알지만 그런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해 애신을 향한 직진밖에 할 수 없는 구동매의 눈물...

---"꼭 새치기 당한 기분이라...  단 한 번 가져본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 그 자리에도 없는 애신을 놓고 김희성과 유진초이가 신경전 벌이는 것을 보던 구동매가 한 말. 그러니까 가져보고는 싶단 말이지? 구동매는 늘 진심을 말하는데 중의적이라 들키지 않는 것 같다. 근데 혼잣말 같은 그의 중의적인 말들이 늘 슬프다.

---"사탕, 그딴 걸 왜 먹어? 너무 달아서 쓰던데..."

: 고애신이 먹으며 까르르 웃었던 사탕. 그 장면을 본 구동매도 사 먹었던 바로 그 사탕. 그건 고애신을 향한 구동매의 사랑 같다. 너무 달아서 쓰다는 말은 너무 사랑해서 아프다는 뜻으로 들렸다. 애신을 향한 구동매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사였다.

---"오지 말라니까 와 놓고 이제 그것까지 아신 것이냐...?"

: 사랑의 문제에선 늘 더 많이 사랑한 쪽이 패자다. 상대의 아픔까지 껴안게 되는 법이다. 구동매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졌다. 다 들켰고, 그 끝도 이미 다 결정되어 있다. 그래서 애신을 향한 구동매의 대사는 늘 아프다.

 

 

 

*김희성

---김희성의 능글능글하면서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저 모습. 여성에게는 완전 잘 먹히고, (애신은 제외) 구동매나 유진초이에게도 통하는 것 같다. 진지한 표정인 그 둘 사이에서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김희성 자체가 그 무거운 상황을 조금은 가볍게 받아들이게 하는 당의정 같다. 캐릭터에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정말 변요한의 재발견이 아닐 수 없다. 도련님 모드에서는 저 웃음이 싹 사라지는데 그 또한 애신의 아슬아슬한 앞날을 예고하는 것 같아 몰입해서 보게 만든다.

 

 

*유진초이

---"내가 하늘인지 검은 샌지 모르겠어서..."

: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고대감이 검은 새를 언급하면서 "어찌 컸을꼬?"한 걸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고대감은 어린 유진을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유진은 어릴 때에 뛰어난 글을 쓰는 영특한 아이였나 보다. 고대감과 유진초이의 숨은 인연이 기대되었던 대사...

---"그날 당신도 거기 있었소, 당신 어머니 태중에. 그날 당신 조부가 그랬지, '부모의 죄가 곧 자식의 죄다', 9살 짜리한테. 부모의 죄가 자식의 죄면 태중에 있었다고 해서 뭐가 다르겠소? 그러니까 당신 부모와 나 사이에 서지 마, 없는 죄도 만들고 싶어지니까. 누구나 제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플 수 있어. 근데 심장이 뜯겨 나가 본 사람 앞에서 아프단 소리는 말아야지. 그건 부끄러움의 문제거든."

: 유진초이의 말은 늘 짧고 분명해서 시원하다. 너무 빠르게 웅얼거려서 못 알아듣는 대사가 많다는 게 문제지... 좀 한 번에 알아듣게 말하면 좋겠다...ㅠㅠ

---"마음에 들였지. 이렇게 들키네."

: 결국 마음에 들였구나. 이렇게 유진초이는 애신으로 말미암아 조선을 조국으로 생각하게 되어버리나 보다. 고종을 만나온 후 다시 정문을 찾아가 하는 말에서 유진초이는 조선에 대한 사랑도 우리에게 들켰다. 그 끝이 새드엔딩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왜 이렇게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야?" "학당에서 공부 너무 열심히 하지 마시오."

: 유진초이의 대사들 중에서 나는 이렇게 흘려버리는 혼잣말처럼 다오는 대사가 특히 귀에 확 꽂힌다. 들을 때마다 혼자 큭~ 웃게 된다는... 그는 이렇게 힘을 빼고 연기할 때 더 빛난다.

 

 

*카일

---"미국은 이 작고 조용한 나라의 운명에 더이상 개입해서는 안 돼."

---"더 이상 위험해지지 마. 내 시의 마지막 문장이 '정말 소풍같은 파병이었다.'로 끝날 수 있도록."

: 낭만적이면서 정의로운 카일은 정말 유진과 조선을 좋아하나 보다. 결국 임관수와 함께 유진의 일을 돕는 걸 보니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 안에서는 그도 한 명의 의병이다.

 

 

 

*임관수

---"제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나으리."

: 난 임관수가 이 말을 하면 벌써 입가가 올라간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절대 어리숙하지 않아 저 말 뒤에는 늘 사안의 핵심을 꿰뚫는 말을 한다는 걸 아니까...

---"조선인이니까요. 그러니 저만 믿으십시오."

: 이 대사를 할 때의 임관수가 얼마나 멋지고 든든했는지... 전당포 주인 일식과 함께 어리숙한 듯 능청스런 매력이 넘치는, 이 드라마의 필수 캐릭터... 그도 역시 일식과 함께 또 한 명의 의병...

 

 

 

*고애신

--- 오늘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고애신이 제물포에서 지붕 위를 질주하던 저 장면. 그리고 나중에 약방에서 유진초이를 만났을 때 순정만화 속 여주인공의 눈처럼 반짝였던 그녀의 그 눈빛... 내겐 낯선 얼굴이라 김태리가 누군가 좀 검색을 해 봤더니 '아가씨'라는 영화에서 시선을 끄는 배역을 잘 해낸 배우였다. 역시 내공이 있는 이였다.

---"난 해도 자넨 못 할 듯 싶은데..."

: 이전 회에서 유진초이에게 고백 세 번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한 이후 두 번째로 그녀의 진가를 보여 준 장면. 아무것도 모르는, 새장 속의 새 같은 대가댁 영애에 불과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 장면이다. 자신을 향한 구동매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자신의 치맛자락을 잡은 구동매를 보고 눈물이 그득했나 보다, 그녀의 눈에... 그녀는 아마 앞으로도 구동매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구동매와의 대결에서 번번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구동매가 안스러웠던 장면.

---"오늘은 걷던 쪽으로 한 걸음 더..."

---"H는 내 이미 다 배웠소."

: 그리고 유진초이의 품으로 달려들 듯이 이어진 애신의 허그... 그녀의 적극적인 성격이 다시 한 번 실력발휘를 한 장면. 그녀는 자신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스스로의 팔에 총을 쏜 유진초이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미워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자신을 다른 조선인 남자들처럼 '대가댁 영애'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이니까, 그러면서 사소한 말대답에서조차 조금도 봐주지 않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녀의 안전을 누구보다도 걱정하는 사람임을 아니까... 그녀에게 그런 그와의 '러브'는 미지의 세계, 그래서 신비로운 세계, 더 끌리는 세계일 것이다. 그녀가 불꽃처럼 타오르되 스스로 재가 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쿠도 히나

--- 그녀의 아비는 딱 '꺼삐딴 리' 같다. 지금은 친일의 선봉에 서 있지만 조선에서 일본의 세력이 약해졌다고 느끼면 바로 강한 세력에 빌붙을 이. 가족도 그에게는 그저 도구일 뿐이니 쿠도 히나가 그를 미워하는 이유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 없이 그저 일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것 같던 그녀였는데, 고종의 친서를 은밀히 유진초이에게 전한 걸 보니 그녀도 또 한 명의 의병이 아닐까 싶다. 유진초이를 향한 그녀의 마음, 애신에 대한 질투가 걸림돌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함안댁과 행랑아범

--- 늘 무심한 듯한 표정이었으나 애기씨 일에서만큼은 낫을 품고 가 죽여버리겠다고까지 말하는 행랑아범, 늘 애기씨 일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라 그저 마음 약한 노복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병활동으로 상처 입은 애기씨가 비밀리에 수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는 대담한 함안댁 모두 시선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들이 품은 나라를 위한 마음이 총 든 의병보다 부족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이렇게 회를 더해가면서 하나씩 드러나는 캐릭터들의 정체가 매우 흥미롭다. 가만 보면 등장 인물 중 의병 아닌 이가 없다, 친일하는 무리 빼고...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 시선이 간다는 점이다. 작은 인물에게까지도 작가의 노력과 다정한 손길이 미친다는 게 인물의 성격을 통해 드러난다. 기다려지는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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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스캔들', 검색해 보니 벌써 10년도 더 전의 드라마였다.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라고 짐작하고 보기 시작한 그 드라마를 나는 결국 마지막회까지 대사 하나하나 곱씹으며 아주 열심히 봤었다. 특히 마지막회의 맨마지막 부분에서 나온 이 글귀는 내게 관점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먼저 가신 분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이 땅에서 마음껏 연애하고 마음껏 행복하십시오.'

 그렇다. 나는 일제강점기라 하면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느라 인간적인 감정은 뒤로 한 채 치열하게만 살았을 거라 생각했고, 일반 백성들은 암울한 정세의 눈치를 보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드라마를 보면서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 모두가 지금의 우리처럼 생활 속 소소한 것에 기뻐하고 서로 사랑하며 행복해하기도 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립운동가도 사람이고, 장사꾼이나 종도 사람이니까...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감정이나 삶의 흐름은 다 거기서 거기일 텐데 왜 내 사고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갇혀있었는지... 심봉사가 눈을 뜬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 순간 '유레카~'라는 단어가 뒤통수를 탁 치고 지나가며 머릿속이 확 트였던 그 느낌은 잊을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래서 그 후 우리나라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 무렵의 역사와 관련된 사진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 시기를 다룬 책을 제법 깊이 찾아 읽기도 했다. 그랬기에 '경성스캔들'은 잊을 수 없는 드라마가 되었다, 적어도 내겐.

 그 후로 비슷한 시기를 다룬 드라마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가곤 했다. '미스터 션사인'도 그래서 관심이 갔는데, 주인공을 맡은 연예인 중에 한 이름을 보곤 '안 봐!'하고 바로 마음을 접어버렸다. 부도덕한 언행으로 오랫동안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사람이라 얼굴만 봐도 그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작품 속 캐릭터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보지 않는 걸로 정리한 건데, 자꾸만 그 드라마가 괜찮다는 주변의 평이 귀에 들어왔다. 흠... 그래서 방학하자마자 한 번 봤는데, 역시나 관심 있는 시기가 배경인 드라마라 결국 처음부터 찾아가며 보게 되었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길이로 이야기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며 그 안에 비유적인 의미, 중의적인 역할까지 심어 작은 것도 놓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대사, 언어유희를 이용해 가벼움과 진중함의 조화가 맛깔스럽게 버무려진 작가의 대사들은 몇 번을 들어도 그 자체가 만찬이었다. 뭐, 이미 그녀의 전작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그래서 결국 끌려버렸지만...ㅠㅠ

 한결같이 쓸쓸함을 그 밑바닥에 깔고 있는 구동매와 유진초이의 눈빛도 좋고, 작가의 전작들에 등장했던 낯익은 얼굴들이 이야기 곳곳에 아이셔처럼 등장하는 것도 반갑고 새롭다. 고애신과 유진초이, 구동매의 대사가 마냥 무겁기만 하지 않은 점도 매력적이다. 방심한 채 넋 놓고 보고 있자면 여지없이 허를 찌르는 새콤한 대사가 하나씩 톡톡 튀어나와 큭~하고 웃게 만든다. 특히 가볍고 세속적인 듯하나 두뇌회전이 빠르고 영리한 미공사관 역관, 애신의 정혼자이면서 여기저기에 해피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니는 룸펜 김희성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든 인물들이 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지금의 모습일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어 보이는 점도 기대감을 가지게 만든다. '경성스캔들'도 음악이 좋았는데 이 드라마 역시 음악이 드라마를 살리는 것 같다. 지금과 다른 개화기 무렵의 단어와 문장, 한글 표기, 고전적이면서 낭만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소품들, 이런 것들을 보고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렇게 결국 또 마지막회까지 이 드라마에 울고 웃으며 여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인물들의 대사가 웅얼웅얼 지나가버리는 게 많은 것이 흠이라면 흠인데, 여러 번 반복해서 보라는 큰 그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역사적인 논란은 마지막회까지 다 본 후에 생각해 보는 걸로... 픽션의 범위 내에서 작가의 창의성이 발휘된 걸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일지는 끝까지 봐야 알 수 있으니까.

 날이 덥다. 일찍이 덥기 시작해 계속 더우니 큰 일이다. 길게 가지 않길 바랐는데... 30도 정도에서만 오락가락해도 좋으련만 몸 안의 온도나 바깥 온도나 그게 그거라 너무 처진다. 저혈압이라 여름 나기가 늘 힘겨운 것 같다...ㅠㅠ 해가 나지 않고 가끔 바람 한 자락 불어오는 지금 날씨만 같으면 좋겠는데...

 그 동안 덥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계획한 일들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는데 벌써 방학한지 일 주일쯤 지났다.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방학인데 이쯤에서 정신 좀 차려봐야겠다, 드라마를 비타민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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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과의 협업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일러스트레이터 퀀틴 블레이크.

아이용으로 산 책들을 읽어서 나에게도 그의 그림이 낯익긴 하지만

사실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진 못했다.

그러다 보러 가게 된 그의 원화 전시...

 

 

 

언뜻 보면 대충 슥슥 그린 것 같은 선들, 그런데 그렇게 보기엔 너무 잘 그렸다.

안 그렸어야 하는 여분의 선이 없고 어색한 선이 없다.

그렇게 그가 그린 모든 선이 조화롭고 힘있어 보인다.

게다가 모든 캐릭터의 표정에 감정이 담겨 있고 잘 전달된다.

그렇다면 정말 고수 아닌가?

 

 

 

사용한 색감도 참 좋다.

어떤 색을 써도

연하게 한 번 스윽 칠한 것 같은데 선명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는다.

채도가 낮은 색조차도 탁하지 않고 부드럽다.

이 정도면 색 사용에 있어서도 달인 아닌가?

 

 

 

그런데 그림들을 잘 보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수정하거나 덧붙인 흔적들...

이 그림도 물고기 저마다의 표정과 움직임이 다 살아있는 것이 신기해서 구석구석 보다가

왼쪽 윗부분에 종이를 덧댄 것을 발견했다.

퀀틴 블레이크 같은 대가가 귀찮아서 그랬을 리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저렇게 덧붙인 이유가 궁금해졌다.

 

 

 

자세히 보니 아랫쪽의 캐릭터는

덧붙인 데다가 수정액까지 사용해서 완성한 흔적이 있었다.

이 그림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일부만 다시 그려서 붙인 부분, 수정액으로 덮은 위에 다시 그린 부분이 있는 그림이

제법 있었다.

 

 

 

이 그림은 부분 부분 덧붙여서 한 장을 완성한 것이었다.

이 것에 대한 궁금증은

퀸틴 블레이크가 일러스트를 완성하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하는

10분짜리 영상을 보고 풀렸다.

아마 초안을 완성한 후 수정하는 과정에서 일러스트의 위치를 이동한 결과인 것 같다.

 

 

 

그 영상과 이 전시물을 보고 대충 슥 그린 것 같았던 선과 색 선택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다.

특히 이 전시물은

대충 그린 것 같았던 선과 색 뒤에 숨은 그의 예민한 선택과 노력을 조금은 알 수 있어

그의 그림들이 다시 보였다.

 

 

 

한 장의 그림을 위해 선 하나까지도 연습하는 그는

대가가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가 사용했다는 펜과 수채화 붓은

손잡이의 나뭇결 속까지 색이 스며들어 있어

그의 노력과 열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그림책 한 권을 완성하기까지 그린 모든 그림을 모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 것이 영상에 나왔는데,

그림책 한 장의 완성본이 나오기까지 다시 그리고 수정한 것이 수십 장이었다.

절대로 재능만으로 대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코끼리가 악어를 360도로 마구 휘두르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정말 창의적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세히 보면 휘둘러지는 순간순간의 악어 얼굴에도 눈과 표정이 있고

몸통과 머리, 꼬리의 색이 다 다르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가 있는지...

그의 유머와 재치도 그가 사랑받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데 한 몫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코끼리 다리를 보다 보니 불쑥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얼마 전 '영재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어린이 화가 겸 작가 전이수였다.

 

 

 

이 그림을 보니 더 전이수 작가의 그림과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은 전이수 작가가 제주도의 미로공원 입구에 그렸던 벽화다.

물론 퀸틴 블레이크보다 섬세하거나 세련된 느낌은 덜 하지만

캐릭터의 표정이나 선에서 전이수 작가만의 개성이 잘 나타나 있지 않은가?

전이수 작가의 다른 그림들을 봐도 그가 '될 성 부른 나무'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가 대가가 될 수 있도록 뒷받침을 잘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영재'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던 터라

'영재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는데,

우연히 전이수, 이인후 두 화가의 이야기와 그림을 본 후 가끔 보게 되었다.

볼 때마다 바란다.

그 프로그램이 정말로 흙 속에 묻힌 재능을 캐내어주는 프로그램이 되면 좋겠다고.

어린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니까...

 

 

 

<달빛 아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가장 내 마음에 든 그림이다.

펜과 한 가지 색깔 물감으로 이토록 밤의 정취를 잘 표현할 수 있다니...

부족한 부분도 넘치는 부분도 없이 화면의 모든 부분이 조화롭다.

붓의 터치가 색깔 표현뿐만 아니라

짙고 옅음의 차이로 마치 다른 색 여러 개를 쓴 것 같은 느낌도 주고,

선을 대신해 사용된 느낌도 있다.

번짐을 잘 활용한 점도 정말 창의적이고...

황홀하면서도 신비로운, 그러면서 안온한 느낌이라

오래 바라보았다.

 

전시를 보러 간 1월 30일은 일기예보와는 달리 매운 바람이 남은 날이었다.

그러나 전시가 열리는 홍대 KT&G 상상마당까지 가며 본 얼음한강의 전경과

전시가 끝나고 나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흩날리기 시작한 눈송이 덕분에

전 과정이 다 좋았다.

그림을 보고 이렇게 들뜨고 행복했던 게 얼마만인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많은 것들이 느껴져서

머리와 마음이 동시에 행복했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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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온 책을 반납해야 해서

강추위 운운하는 협박성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저녁에 동네 도서관에 갔다.

(추울 때나 더울 때마다 '역대 최고' 어쩌고 하며

듣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리게 하는 그런 일기예보는

언제 들어도 참 마음에 안 든다.

못 느끼고 있다가도

그 호들갑 떠는 일기예보만으로도 10배는 더 춥거나 더운 것 같다고 느껴지게 만든다.

내 기억에, 최근 몇 년간 1월 이맘때면 며칠씩 이렇게 쨍~하니 추웠고,

내가 어릴 때엔 자고 일어나 보니 창 유리가 깨져있을 정도로 추운 겨울날도 있었다.)

새로 빌릴 책을 찾아보려고 도서관 서가를 어슬렁거리다다 우연히 발견한 책,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

지은이들의 이름이 유난히 낯익다 싶어서 몇 장 들추어 읽어봤더니, 오호~

내가 너무나 사고 싶어하는 책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를 쓴 그 노부부가 아닌가.

표지에 나온 노부부의 얼굴만 봐도 딱 알겠더라는...

어찌나 좋은지 얼른 빌려왔다.

 

 

 

2012년에 발간되었던 이 책은 절판되어 이제는 살 수 없다.

하지만 두고 두고 보고 싶어서 헌책으로라도 사려고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이 노부부의 이후 이야기가 다시 책으로 나온 것 같다.

새 책 뒷면을 보니 2017년 여름에 발간되었다는데,

한창 앓던 중이라 그때 내 레이더에 포착되지 못했나 보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자연 속에서

건강한 노동과 손맛 있는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시는 그분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아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빌려온 책은 야금야금 읽고 싶은 마음인데 가능할런지 모르겠다.

오늘 밤에 단숨에 다 읽고 바로 주문할 것 같다. ㅎㅎㅎ

계속된 호들갑 일기예보에 짜증스러웠던 마음이

새 책 덕분에 확 개었다.

이게 책의 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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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입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마음에서 내킬 때까지 모른 척하다가

12월초 어느 날 남는 시간을 채우러 들어간 서점에서

선 채로 정신없이 빠져든 이후 바로 산 책.

사 놓고나서는 또 한 동안 꽂아만 둔 책,

이 책은 한 번 펼치면 그대로 끝까지 죽 읽게 될 것만 같아서...

그럴 것 같은 마음을 누르고 누르면서

조금씩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있다, 읽는 사이사이 생각도 좀 하면서...

 

저자인 한동일이란 분이 어떤 분인지 서점에서 읽었을 때부터 궁금했는데,

책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얼마 되지 않고

궁금증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나 아껴가며 읽고 있는 중이고

그래서 검색해 보았다.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1113239&memberNo=34225985&vType=VERTICAL

 

단어 하나 설명해주시는 걸 이해만 하는 데도 어려운 그 라틴어를 공부하고

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가 되었다는 저자의 <라틴어 수업>을 읽노라면,

삶에 대한 열정못지 않게 글 깊이에 깔린 절제도 느껴졌기에

저자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 다 읽지 못했기에 정리된 감상을 적을 수는 없지만

<라틴어 수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은 단어는 저 두 개다.

절제, 열정...

그리고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저 언어 자체의 형식과 내용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와 관련된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기에

<라틴어 수업>은 정말 수업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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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앞을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어.

 원하는 모든 걸 이루게 될 거야."

 

"괜찮아, 니 옆에 내가 있잖아."

 

"간절한 기도가 쌓이면 이루어진다고 나는 믿어."

 

나와 친한 누군가가 내게 저런 말을 하며 따뜻하게 내 손을 잡는다면

눈물이 가득 차 오를 것 같다...

 

흑기사, 상상의 여지가 많은 드라마라서 자주 봤는데,

오늘 보다가 깨달은 게 저런 위로의 말들이 많이 나온다는 거다.

백희와 문수호의 입을 통해...

그걸 깨닫기 전에도 나는 이미 백희와 문수호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오늘 조금 전에 알았다.

나도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진심을 담아 저런 말들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 흑기사를 보다가 들었다.

내가 하는 위로의 말들이

백희가 했던 것처럼 큰 힘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흑기사, 처음에는 허무맹랑한 판타지라고 생각했는데...

위로를 주는 드라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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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의 인정도 아닌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숩

(이무석, 이인수 저/위즈덤하우스)

 

 

 “이겨낸 두려움만큼 자유로워진다!” -나로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저자들은 인정중독에 빠지기 쉬운 성격은 따로 있다고 밝힌다. 혼자 있는 것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거나(분리불안 성격), 완벽에 대한 강박이 있거나(완벽주의 성격), 희생하는 것이 익숙하거나(자기희생적 성격), 갈등 상황이 싫어 화를 참아버리고 만다면(분노 억제형 성격), 자신에게 숨겨진 인정심리를 추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변화 또는 관계의 상실을 앞두고 있을 때 불안이 증폭된다면, 분리가 슬픈 이별이 아닌 새로운 친밀감과 더 풍성한 관계의 시작이 될 것임을 특히 강조해 말한다. 또 스스로 채찍질하는 사람들이 삶을 어떻게 망치는지를 보여주면서, 어떤 모습이나 상태에서도 심리적 자유를 찾는 세 가지 수칙을 설명한다. 한편 늘 무거운 기분이 깔려 있고 ‘재미’가 배제된 삶을 살고 있다면 자기희생적 성격이 아닌지 의심해보고 희생양으로서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것을 주문한다. 저자들은 나아가 관계를 중단함으로써 생긴 빈 공간을 안전하고 건강한 관계로 대체하고, 위험 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자기희생으로 이끄는 감정적 압력을 조심하는 등 자신을 깊이 아끼고 사랑하게 되는 원칙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부모로부터 상처받았고, 충분한 보호방패도 없이 살았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지울 수는 없다. 부모를 바꾸거나 내가 속한 사회를 바꾸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저자들을 아직 희망은 있다고 전한다. “이겨낸 두려움만큼 자유로워진다”고 강조하면서 완벽주의와 흑백논리로 자신을 공격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거든, 그 목소리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스스로 설득하여 맞설 것 당부한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내면세계를 진지하게 이해하면, 자신의 진짜 가치를 재발견할 뿐만 아니라 자존감의 위기가 찾아와도 ‘나’를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저자들이 말하는 “인정중독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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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석 교수는 정신과 의사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로 유명하다는데 이 책의 목차만 읽어봐도 구미가 당긴다. 딱 지금 내가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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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 역시 처음부터 보지는 않았다.

송지나 작가가 쓴다는 것을 알고부터 보기 시작했다.

송지나 작가는 내게 소위, 믿고 보는 드라마를 쓰는 작가니까...

인터넷에서는 여러 부정적인 말들도 많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 유명한 모래시계, 카이스트 말고도

신의와 힐러도 나는 챙겨가며 보았었다.

내가 생각하는 송지나 작가표 드라마의 장점은

탄탄한 구조와 섬세한 감정표현...

처음에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퍼즐을 맞추듯 그 뭐가 뭔지 잘 몰랐던 부분이 이해가 되는 마법이 펼쳐지는 게

송지나 작가표 드라마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요즘 드라마들은

1회부터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게 보통이다보니

신의 때부터는 대다수의 시청자들로부터 그다지 호평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왕은 사랑한다'도 역시...

하지만 나는 그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고부터는

매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다려졌었고

마지막회에서

이 모든 이야기의 실타래를 어떻게 묶을지 궁금했다.

오늘 드디어 그 마지막회가 끝났다.

늘 그래왔듯이 역시 왕린은 왕원을 위해 세상에서 자신을 숨겼다.

어쩌면 그렇게 철저하게 벗이자 왕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매번 안스러운 선택을 하는 그를 보는 것이 찡했지만

마지막회에서 은산과 함께 떠나는 모습을 보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모든 안스러운 선택에 대한 작가의 선물이 아닐까?

은산은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왕린과 함께 갔다.

그건 은산을 위해서도, 왕린을 위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원을 위해서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왕원을 위해 서슴없이 독차를 마신 은산을

왕원은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왕원 곁에 있으면 은산은 끊임없이 위험하게 될 테니까...

누구든 왕원 곁에 있으면 결국 왕원의 약점이 되어버릴 테니까...

그래서 끝까지 외로웠던 왕 왕원...

왕원의 마지막 나레이션이 마음 아팠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난 원나라에서의 10년 동안, 그는 행복했을까?

은산에 대한 왕원의 사랑은 현재형이니까...

언제까지나 아직 끝나지 않을 테니까...

은산에게 달려가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피해

더 먼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 먼 곳에서 왕원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왕원을 연기한 임시완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은

바로 이 표졍이 아닐까 싶다.

나는 '미생'을 보지 않았다.

남들이 다 장그래를 이야기할 때에도 줄거리조차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왕원이 세자가 아닌,

자유로운 청년으로 저자거리를 돌아다닐 때의 저 표정을 보고는

'미생'이 궁금해졌다.

 

은산을 바라볼 때의 왕린의 눈빛은 늘 저랬다.

상대에 빨려들어갈 듯한 저 진중한 눈빛과 신뢰감 가는 입매.

은산의 마음이 왕린에게 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왕린의 표정 중 내가 가장 좋아한 표정.

 

윤아가 예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웃는 모습, 당연히 예쁘다.

눈, 코, 입, 표정까지 어쩌면 저렇게 다 예쁠까 싶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은산의 우는 표정에 만점을 주고 싶다.

소녀시대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던 사람으로서

연기자로서의 윤아에 대해서도 관심 없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우는 모습을 보고 윤아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걸 연기라 할 수 있을까?

카메라에 예쁘게 보이고 싶은 사심은 1도 없는 듯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마냥

실제 감정이 철철 흘러나오는 듯 우는 그녀의 표정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말괄량이 같으면서 소녀 같기도 했던 은산은

윤아가 연기해서 더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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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연말에 했던 프로그램인 것 같은데, 지금 KBS1에서 나온다.

<2017 김광석, 시대를 노래하다>

영상에 나온 모습도, 목소리도 너무나도 생생해서 더 마음이 저리지만,

20년 전 하늘나라로 간 가수를 살려내다니 과학의 힘은 정말 놀랍다.

난 김광석씨의 노래 중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나의 노래'를 가장 좋아하는데,

김광석씨의 동갑내기 친구인 박학기씨도 그러하다고...

 

아까 낮에 본 기사를 옮겨본다. (http://news1.kr/articles/?289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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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학-환생', 왜 김광석이냐고 물으신다면(인터뷰)

 

홀로 세월을 비켜간 듯, 그리웠던 목소리를 들려주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고(故) 김광석(1964~1996). 텔레비전에서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시청자들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흰색 스트라이프 셔츠에 도트 무늬 넥타이, 낡은 청바지, 갈색 통기타까지, 모든 게 21년 전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28일과 29일 방송된 KBS1 시사 교양 프로그램 '감성과학 프로젝트-환생' 1, 2부는 '가객' 김광석을 우리 앞에 소환해 놀라움을 안겼다. 이 새로운 시도의 프로그램은 고인의 모습을 재현한 정교함은 물론, 그를 가슴속에 묻은 지인들을 위로하고 현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특히 '환생'은 21세기 디지털 방송 기술의 집약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다큐멘터리가 일반적으로 택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과는 달리, 김광석 본인의 관점에서 이뤄지는 스토리텔링도 인상적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김광석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그가 새롭게 선사한 컬래버레이션 무대도 감상할 수 있었다.
KBS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는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매년 새로운 인물들을 재조명할 계획이라고. 이에 뉴스1스타는 '환생'을 기획한 전인태 PD와 시각특수효과팀을 총괄한 배수연 감독을 만나 프로그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하 전인태 PD, 배수연 감독과의 일문일답.

Q. 방송을 보고 너무 사실 같아서 놀랐어요. 그래서 인터뷰를 요청했고요. 어떻게 이 작업을 기획하게 됐나요?

"저희 프로젝트 이름이 '감성 과학'이잖아요. PD로서 기획한 건 7~8년 전이에요. 당시 과학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하다가 과학 자체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것보다 기존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반 사람들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던 중 고인이 된 사람들의 영상을 봤는데 묘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 것 같았어요. KBS 다운 콘텐츠로 만들 만한 무언가가 말이에요.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감성과 과학의 융합이에요. 과학을 도구로써 사용해 감성을 어떻게 터치하는지가 중요하죠. 기존에 불가능했다고 여겼던 감정 연대, 그리고 현재 감정적으로 분열돼 있는 대한민국 사회를 좀 더 인간적인 관계로 맺어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이를 위해 홀로그램이라는 기술을 사용한 거고요. 하지만 기술이 먼저는 아니에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기술은 감성의 폭을 확장시켜주는 콘텐츠일 뿐이죠. 우리는 그걸 계속 콘트롤하며 어떤 스토리를 이야기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해요. 그게 바로 감성이고요. 전 그래서 '환생'을 보실 때 시청자분들이 과학보단 감성에 초점을 맞춰주셨으면 좋겠어요."

Q. 첫 번째 주인공으로 김광석씨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우선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처음엔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대학 시절 동아리 선배들이 김광석씨의 노래를 따라 하곤 그랬죠. 나이를 먹다 보니 '왜 그토록 그 형들은 그때 여학생들 앞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하고 궁금해지더라고요. 음악적 팬이라는 의미보다 김광석씨가 왜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지가 궁금했죠.

이와 더불어 이 프로그램의 제작이 결정됐을 때, 일반 대중들이 사랑하는 콘텐츠를 좀 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프로그램이 감성 과학 프로젝트인데 따뜻한 공학 기술과 세련된 인문 과학의 만남이라는 뜻이거든요. 따뜻한 공학 기술의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가장 아날로그적인 인물을 선택하고 싶었고 그러던 중 김광석씨가 떠올랐죠."

Q. '환생'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나요?

"저는 김광석씨와 동시대 청춘을 보낸 386세대에게 한 번 묻고 싶어요. 이미 기득권이 돼버렸지만 한때는 순수했던 그분들에게요. 제가 대학을 대닐 때도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 아래 모인 커뮤니티가 있었거든요. 당시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청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크고요. 앞으로 더욱 진심으로 청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을 건네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년 전 분명히 있었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 지금은 나뉘어버린 두 세대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Q.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요?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3가지 목표를 세웠어요. 개인으로서의 김광석, 직업인으로서의 김광석,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김광석을 담아내고 싶었죠.
먼저 개인적으로서 김광석씨가 지난 1996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지키지 못했던 친구와의 약속을 복원시키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대표적으로 박학기씨, 김창기씨와의 만남을 들 수 있죠. 직업적으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분의 무대를 복원하는 거였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팽목항, 구의역 등을 방문하는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김광석씨가 등장해요. 김광석씨의 지인분들이 대부분 '광석이가 살아있었으면 광화문에서 노래했을 거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 또한 더 좋은 세상을 꿈꾸던 청춘이었어요. 실제로 생전에 미혼모를 위한 공연, 불우이웃을 위한 공연 등에 참석하셨고요.
'대한민국의 현 시국이 과연 김광석씨를 비롯한 과거 청춘들이 꿈꾸던 세상이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뒤 '만약 김광석씨가 살아있었다면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진행하게 됐죠. 이 세 가지 포인트 중에서 시청자분들이 어떤 부분을 바라봐 주실지는 각자의 재량인 것 같아요."

Q. 김광석씨라 든 의문인데요, 정부 지원을 받아 이미 대구에서 김광석씨를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적이 있더군요. 혹시 활용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아니에요. '환생'은 CG 작업만 외부에 맡겼고 나머지는 저희 KBS의 기술이에요. 프로그램과 관련해 따로 정부 지원도 없었고요."

'환생'이 홀로그램을 통해 김광석의 콘서트 모습을 탄생시켰다. © News1star / KBS 미디어

 

Q. 어떤 기술적인 원리로 김광석씨의 모습이 완성됐는지 궁금해요.

 

"일단 김광석씨의 대역 배우가 등장해 재연을 하세요. 특수 분장을 한 상태에서요.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뽑았고요. 하지만 저희가 워낙 고화질의 카메라로 촬영하다 보니 특수 분장이 다 드러나게 돼요. 그래서 그런 걸 보정하는 후반 작업이 이어지죠. 
대역을 쓰게 된 이유는 간단해요. 시간과 비용이 한정됐기 때문이죠.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22억 정도인 것으로 알아요. 하지만 저희는 전체 제작비가 3억 정도였죠. CG 작업도 필요했고요.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게 주니까 도저히 모든 장면을 홀로그램으로 할 수는 없었어요. 아직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도 못했고요.
그래서 오디션을 통해 대역을 구하게 됐고 특수분장을 정밀하게 한 뒤 보정 작업을 진행했어요. 2부에 나오는 홀로그램도 '얼마나 실감 있게 다가가느냐'에 중점을 뒀고요. 영상적인 측면에서 '최선의 방법의 무엇인가', '감정선이 무엇인가'를 항상 염두에 뒀죠.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단언컨대 대역 얼굴 그대로 나온 부분은 단 한 장면도 없다는 거예요."

Q. 그럼 홀로그램뿐만이 아닌 좀 더 세밀한 과정이 궁금해지네요.

 

"방송 제작 환경에 대한 기술 지원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제작을 할 때 크게 프로덕션(스튜디오 촬영)과 포스트 프로덕션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요. 프로덕션 부분에 사용됐던 게 홀로그램, 360도 촬영이죠. 특수 분장도 들어가 있고요.
포스트 프로덕션에서는 특수 분장을 지우는 작업만 있는 게 아니라 재현하신 배우분의 턱이 튀어나왔거나 귀 모양이 다를 경우 그래픽 작업이 같이 들어가는 식이에요. 그런 걸 프레임 단위로 작업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됐어요. 컷을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앞신과 뒷신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작업했고요. 촬영 자체를 UHD 로우 파일로 작업했기 때문에 그걸 영상화 시키는 컨버팅 과정도 필요했어요. 로우 파일은 그림 파일이 아닌 데이터 파일이거든요. 현재 방송은 HD로 통일되기 때문에 이 파일을 HD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했고요."

 

Q. 김광석씨가 직접 말하는 기법도 독특한 것 같아요.

"감성 과학인 만큼 시나리오 측면에서도 새로운 공학적인 기법을 적용하고 싶었어요. '이런 것도 해?'라는 세련된 느낌을 주고 싶었죠.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PD가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어떤 감정을 100% 드러내기에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좋겠다 싶었어요. 기존 프로그램들이 해왔던 간접적인 인터뷰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죠. 그래서 연역법이 아닌 귀납법으로 선택했어요.
대본을 쓰기 위해 김광석씨의 말과 글을 전부 다 수집했고 오랜 팬들이 가지고 있던 녹음 파일들까지 찾아 들었어요. 이걸 가공 문학이라고 하는데, 말뭉치 단위로 실현을 시켜서 재조합을 하는 방식이에요. 이런 방식으로 원고를 썼고 이를 위해 김광석씨가 남긴 말과 글들을 계속 듣고 읽었죠.
제가 썼다기보단 그분이 갖고 있던 콘텐츠들을 가지고 제가 재조합해서 썼다고 보시면 돼요. 이걸 김광석씨의 지인들에게 보여주면서 계속 확인을 했고요. 목소리도 육성을 활용하는 게 목표였어요. 말이 도저히 연결이 안 될 땐 목소리가 비슷한 분의 목소리를 합성했고요. 그래도 그분 목소리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부분은 단 하나도 없어요. 영상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방법이 제게 있어선 정말 새로운 시도였어요. 글쓰기 방법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일반화된 것에 대해 큰 회의감을 느꼈고, 이에 새로운 포맷을 발굴하기 위한 취지로 작업하게 됐어요."

Q. 새로운 시도에 스스로 만족하시나요? 

"일단 새로운 시도여서 좋았어요. '환생'은 KBS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가장 잘 접목시켜 표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요."

Q. 그럼에도 보완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일단 구성 자체가 드라마, 공연, 독백 등이 골고루 섞여 있어요. 한가지 감정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제대로 됐나 싶은 걱정이 있어요. 다음 편이 제작된다면 VR 등의 새로운 기술들도 도입해 보고 싶고요."

Q. '환생'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방송계에 기여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홀로그램의 상용화는 어느 정도까지 이뤄졌다고 생각하나요?

"내달부터 주파수 정책에 의해 UHD로 의무 송출을 해야 해요. 촬영을 하고 데이터를 처리하는 노하우들이 '환생'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쌓이면 빨리 처리가 될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실 홀로그램의 상용화는 현재 방송 시스템에서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렌더링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에요. 사전 제작 시스템이나 길게 텀을 가지지 않는 한, 보편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봐요. 기술적으로는 많이 좋아졌지만요. 현재 홀로그램은 콘서트 쪽에서 많이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방송용으로 찍는 조명이 있고 공연장에서 멋있는 조명이 있어서 그런 부분의 차이도 있을 거예요."


Q. '환생'의 반응이 좋아 프로젝트성으로 제작된다고 들었어요. 다음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기획안을 쓸 때부터 염두에 둔 부분이 있어요. 주인공은 대중문화예술인으로 한정했으면 좋겠다는 점이에요. 정치, 경제 부문의 종사자들은 위인전이 있으니까요.(웃음) 대중에게 웃음과 울음을 줬지만 너무 일찍 떠나간 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다행히 회사 내부에서도 좋아해 주셔서 매년 한편씩 제작될 것 같아요. KBS가 공영 방송으로서 '환생'을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로 가져가기로 결정했거든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 감성 과학 프로젝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마디 부탁드려요.

"다음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이에요. 이 프로젝트의 실험 정신을 인정해줘서 KBS의 다른 사람들도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여건이 됐으면 좋겠어요. 과학 기술 쪽보다 감성 콘텐츠의 측면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고요. 디지털 시대에 맞춰 실험에 기반으로 한 부분은 좋은 관심을 받고 더 조명 받았으면 좋겠어요." 

한편 '환생'의 못다한 이야기를 담은 디렉터스컷 특집 1, 2부는 각각 28일과 29일 밤 10시30분 방송된다.

nahee12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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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니 꼭 타임슬립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가 환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20년 전으로 되돌아간 기분. 뭉클하기도 하고, 촉촉하기도 하고...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지금 이 시대에 살아있다면 그는 과연 어떤 노래를 부를까. 당장 지금은 오랜만에 보는 김민기, 한동준, 박학기, 김창기씨의 모습만으로도 좋다, 시청역에서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를 들어본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하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생각하면서 눈물짓는 그들의 모습은 참 마음 아팠다.

모든 것이 첨단 디지털시대로 달려가고 있는 지금,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감성'이라는 생각이 들고,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지 몸 가는 대로 마음도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 프로그램이 프로젝트성으로 계속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 누가 또 환생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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