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쟁이의 다락방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정성갑님을 이 책이 집필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래 전 우연히 알게 된 한 블로그때문이었다. 그 블로그의 주인은 부정기적으로 긴 글을 올리곤 했는데, 표현이 솔직하면서도 글에 담긴 성정이 따뜻해 마음에 와 닿는 게 있었다. 나만 느끼는 점이 아니었던 것이, 그녀가 한 번 글을 올리면 호응의 댓글이 많이 달리곤 했다. 배려, 슬픔, 감동, 외로움 등이 물결치며 잔잔하게 와 닿는 마력 때문에 한 번도 댓글을 남기는 용기를 못 내면서도 그녀의 글을 읽으러 블로그에 자주 들렀고, 여러 글을 통해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알 수밖에 없었다. 한 작가의 수필집 몇 권을 읽고나면 저절로 그 작가의 개인사에 대해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은밀한 독자였던 셈이다. 그녀가 SNS로 옮겨가면서는 그녀의 SNS의 숨은 팬이 됐고, 그녀의 남편의 SNS도 읽게 됐다. 물론 그녀의 글을 통해 남편의 직업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대강은 그녀의 블로그에도 올라온 이야기여서 나는 본의 아니게 배경지식이 풍부한 이 책의 독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읽으면서 보니, 그녀의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이 아내 시점의 이야기였다면 이 책의 내용은 그 이야기의 남편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점이 달라져서일까? 블로그의 글에서 느낀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재미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저자가 오랜 기자 생활로 명료하면서도 세련된 글을 쓰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저자가 SNS에 올리는 글을 통해 유머또한 넘치는 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글을 쓸 줄은 몰랐기에 그저 저자가 이끄는 대로 웃기도 하고 안스러워 하기도 하며 조련 당할 수밖에 없었다. 펼치고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내려간 책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한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 제목에 왜 '좇는'이 아니라 '쫓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둘째, 집에 대한 책인데 왜 사진이 하나도 없는지...

 국어사전을 검색해 보니,  '좇다'는 '목표, 이상, 행복 따위를 추구하다', '남의 말이나 뜻을 따르다'라는 뜻이고, '쫓다'는 '어떤 대상을 잡거나 만나기 위하여 뒤를 급히 따르다', '어떤 자리에서 떠나도록 몰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집을 만나기 위해 뒤를 따르는 모험'이라는 의미일까?' 하는 생각과 전세일지라도 이사할 때마다 자비를 들여 인테리어를 취향에 맞게 바꾸었던 부부의  행보로 미루어 볼 때 '집을 추구하는 모험'이라는 의미가 맞을 것 같고, 그렇다면 '제목은 '집을 좇는 모험'이어야 할 텐데...'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앞서 적은 대로 저자의 조련술에 이미 넘어갔기에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눈으로 책의 문장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아, 블로그의 그 글이 이런 상황에서 씌어진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연이어 떠올랐고, 그 두 개의 이해의 톱니바퀴가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책의 내용은 두 배로 확장되어 내 안에 들어왔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6억을 손해 봤다는 말로 시작한 작가 소개를 볼 때부터 '이렇게 솔직하게 다 드러내셔도 되나?' 하는 걱정이 들었었는데, 본문을 읽다보니 더 솔직한 손해의 내역이 씌어져 있었다. SNS를 통해 저자가 활달하고 긍적적이며 유머가 넘치는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텍스트로 알았다는 게 정말 다행스러웠다...ㅎㅎㅎ 만약 대면한 상태에서 저 내용을 들었다면 정말 표정 관리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이걸 '가련'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유머'로 받아들여야 할지...에효...

 이 책은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진이 하나도 없다. 책의 앞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그 점이 불편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녀의 블로그와 저자 부부의 SNS에서 본 사진이 내용에 맞게 머릿속에서 자동재생 되어 '아하~' 하며 읽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사진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텍스트에만 오롯이 집중해 읽는 것이 상상의 부피를 얼마나 풍성하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이 점을 예측해서 일부러 사진을 안 넣은 것이 아니었을까...?

 사진이 없는 대신 중간중간 파란 일러스트가 들어가있는데, 긴 시간의 스토리가 집약된 크로키나 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내용을 예측할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미를 추구하는 저자의 인문학적 특성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일러스트도 한참을 요모조모 뜯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일러스트를 보면서는 저절로 빙그레 웃음짓게 되었다. 새로 지은 협소주택 안에서 고양이 핀을 안고 창 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저자 가족의 평화로운 모습이라니... 역광으로 찍은 단란한 가족사진 한 장을 보고 있는 따뜻한 느낌이 물씬 전해졌다, 일러스트 하나에... 이미지의 힘이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공감 가는 부분에 줄을 그었었는데 이내 포기했다. 스토리를 쫓아가며 읽다보니 줄 긋기가 재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문장이 너무도 많아 어록집을 만들어야 할 판... 내가 그토록 그녀의 글을 좋아했던 이유, 저자 부부의 SNS에 올라오는 글을 찾아 읽었던 이유가 저자 부부의 가치관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어나가며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ㅎㅎㅎ 이 부분 이후가 이 책의 백미였는데-적어도 내게는 그랬다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제목에 왜 '좇는'이 아니라 '쫓는'을 사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뒷부분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더 좋은 것은 또 다른 집을 꿈꾸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내게 더 맞는 집, 우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과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집을 갖고 싶다...(중략) 집이 집을 부르는 경험을 하는 중인데, 앞으로도 집을 찾는 모험을 계속하고 싶다. 좋아하는 집에 살면서 한옥 구조를 차용해 지은 양옥도 좋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계속 또 다른 집을 꿈꾸는 것. 집을 중심으로 펼쳐진 그간의 모험과 여정이 내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중략) 돌아보니 집을 찾는 모험은 나를 찾아가는 모험이기도 했다. 집의 모험을 통해 진정 나답게 사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세상에나, 그 고생을 하고도 또 다른 집을 꿈꾼다니... 집을 '쫓는' 모험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이상의 매력이 있는 게 확실하다. 내게 이 책이 저자가 어느 수다자리에서 들려준 재미있는 이야기로 기억되면 좋겠다. 그래서 집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불쑥 떠올라 내게 잘 맞는 집을 선택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해주길... 그래서 나도 내게 잘 맞는 편안한 옷 같은 그런 집을 누릴 수 있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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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의 3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났다. 그 다음 주는 원격수업이었다. 고3도 이제 격주 등교라는 학교의 알림을 받았으나, 그래봐야 수능 전 고3이 등교하는 주는 이번 주와 11월초의 한 주가 전부였다.

중간고사와 이어진 원격수업 후 등교한 첫날이 이번 주 월요일이었다. 이번 주에 중간고사 답안지 확인도 해야 했고 고3용 학사일정들이 몰려 있었는데, 월요일 아침부터 11월에 등교하는 5일 모두 가정학습을 신청하겠다는 아이들이 많았나 보다. 담임교사가 11월에 가정학습을 신청할 학생의 수를 조사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고 한다. 하긴, 기말고사 범위는 교과서 전체라고 하며 자습만 시키는 교실 상황에 등교하겠다는 고3이 얼마나 있겠는가. 몇몇 어이 없는 담임교사의 대응이 이어졌으나,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아이네 학급에서 8명을 제외한 모두가 가정학습을 신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이 아이가 수능 전에 마지막으로 등교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수능 전날, 수험표를 받으러 학교에 가긴 하지만 그건 수업일은 아니니까...

돌이켜 보면, 아이를 제도권 교육으로 들여보낸 뒤의 12년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강에 아이를 보내는 마음이었다. 매일매일이 그랬다. 아침마다 그랬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아슬아슬함이 더 심했다. 그래서 오늘, 하교한 아이가 담임교사의 분통 터지는-내가 보기엔 유치할 정도로 감정적인... 물론 내 아이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대응 때문에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말들을 다 들은 후 이렇게 말했다, 12년 동안 고생했다고... 진심이다. 그 12년 동안 아이를 학교에 볼모로 보내는 심정을 참고 참아온 나도 고생했다.

이제 아이는 수능 전까지 오롯이 내게 맡겨졌다. 긴장된다. 하지만 학교에 보낼 때와 비교도 할 수 없게 마음이 편하다.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 24시간을 함께 보내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기도 하다. 누가 아이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할까봐 불안해 할 필요 없이 나만 잘 하면 되니까... 한달여가 남았다. 잘 먹이고 잘 키워야지. 3년 동안 받은 상처, 다 아물도록 많이 쓰다듬어 주고 토닥거려 주어야지.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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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오랫동안 비워놓은 게 티가 난다. 여기에 안 오는 동안 휴면처리가 되어있었다는 걸 오늘 알았다...ㅠㅠ

다시 들락거릴 거야. 그 동안 외롭게 두어서 미안...

이유를 들자면, 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난생 처음 겪는-남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팬데믹 상황에 초예민해져서 살다가 잠깐 정신줄을 놓았었나 보다. 그 틈을 비집고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다. 그게 아마 5월 중순쯤... 다행히 내가 정신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는지, 그들이-남자 하나, 여자 하나였다.- 사칭한 AK몰 고객센터와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직접 전화를 해서 확인했기에 그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자임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기사에서나 읽던 그런 사기꾼들과 직접 통화를 하고 대화를 했다는 사실이 가장 소름끼쳤다. 다들 살기 힘들어 하는 이런 팬데믹 와중에도 보이스피싱으로 남의 돈을 갈취하려고 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어이 없기도 했다. 나쁜 것들. 다행히 나는 기분말고는 손해본 것은 없었지만, 이 일로 인해 이 다락방에 발길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뭘 쓰려고 해도 이 일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심적 충격이 컸나 보다...ㅠㅠ

다락방에 안 오는 동안, 고3 엄마로 충실하게 살았다. 원격수업하는 기간엔 뭘 먹여야 하나 고심하며 틈틈이 아이 공부하는 것 잔소리하고, 대입에 대한 자료 찾아 공부하고 뉴스 확인하고... 집 밖은 위험하니 가급적 외출을 삼가다 보니 장 보기도 주로 온라인으로 하고, 과일과 채소를 사야 할 때만 집에서 제일 가까운 가게에 후다닥 다녀왔다. 그것도 열흘에 한 번이었다. 아이가 등교를 시작하고 나서는 더욱 더 긴장 백배해 위생에 신경 썼다.

평소 교육부 장관이 누구인지 이름도 모르고 살아왔기에 아무리 이상한 결정을 내려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 교육부 장관은 정말 싫어서 이름이 외워졌다. 하는 말마다 어찌나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지... 아무것도 책임지긴 싫으니 모든 구체적인 결정은 다 학교장 재량으로 돌려버리고, 플랜B가 없으니 수능은 절대 연기할 수 없고... 그럼 교육부 장관이 하는 일은 도대체 뭔지... 하필 이 엄중한 시기에 저런 사람이 결정권자라니...ㅠㅠ 30명이 넘는 인원이 책상 간격만 몇cm 더 띄운 채 하루종일 한 교실에서 생활해야 하는 긴장감,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해서 오는 호흡 곤란과 두통과 귀 아픔, 이런 것을 교육부 장관이 단 하루만이라도 꼬박 학교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겪어보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도 '고3 매일 등교'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지쳐서 두어 시간은 자야 했다. 하필 이런 시국에 고3인 아이가 안스러워서 눈물이 날 때가 많다. 

2학기 들어서도 고3은 매일 등교했는데, 하루 6-7교시 중 거의 대부분이 자습시간이라는 말을 듣고 학교의 처사에도 실망이 컸다. 다른 학년의 격주 등교로 빈 교실이 남는데도 30명이 넘는 학급인원을 분반하지 않을 때부터 이미 학교에 실망은 했지만... 학교생활하느라 버려지는 시간이 올해의 고3들에게 얼마나 금쪽같은지 정말 모르는 걸까. 입시때문이라면 필요한 학생만 학교에 부르고 고3 전체는 다른 학년들처럼 격주 원격수업을 하면 될 텐데... 결국 아이의 공교육 기간 12년 중 단 한 번도 이용한 적 없는 체험학습을 올해 2학기에 신청했다. 아이를 키우며 우리나라의 교육을 점점 더 신뢰하지 않게 되긴 했지만 올해는 정말 대실망이다. 교육부 장관과 학교의 콜라보가 이룬 결과다. feat. 코로나바이러스ㅠㅠ

보이스 피싱 사건 이후에도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쓰지 않으련다. 이 곳에 적느라 다시 생각하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올해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이 '끝까지 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올해가 갈 때까지 이 마음으로 버텨보려고 한다. 당장은 뭘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 와중에 얻은 게 있지 않을까. 

다음 일기엔 좋은 말들을 쓰고 싶다. 올해 집순이로 살면서 내 생활습관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쓸 일이 있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적기엔 맥락이 영 아니어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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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다. 어린이 있는 가정들은 다들 놀러 갔는지 동네가 조용했다. 물론 그래서 좋았다는 뜻...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부터 우리 집에서 어린이날은 그저 휴일일 뿐이지만, 난 어린이날이면 혼자 속으로 아이의 어린 시절을 조용히 꺼내어 본다. 후회한다고 해도 소용 없고 그 당시에는 분명 최선을 다한다고 한 것이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미안한 것투성이다. '제발'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바라기는, 그 미안한 일들이 아이에게 상처로 남지 않는 것. 이상하게도 올해는 자꾸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앞을 봐야 할 텐데...

이번 주 들어 기온이 많이 올라 한낮엔 이미 여름 느낌이다. 이제는 냉면을 먹어야 할 때가 온 것 같기도 하고, 오이부추김치를 거의 다 먹어 김칫물만 남을 조짐이 보여 얼른 면을 주문했다. 오이부추김치의 김칫물에 약간의 양념을 더해 냉면을 말아서 먹으면 매운 맛 없이 정말 시원하다. 매운 것 못 먹는 아이가 좋아할 맛. 등교 개학 일정 발표를 보고 나니, 아이가 집에 있을 때 더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큰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등교 이후 매우 바쁜 일정을 보내야 할 것이 뻔하게 보여서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도울 수 있을지 생각 중이다. 일단은 잘 먹이자.

이 동네의 밤공기는 서늘하다.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그 서늘함이 좋아 어제부터 밤이면 창을 조금 열어놓는다. 가을밤과도 비슷한 공기인데, 가을밤이 서글픈 느낌이라면 요즘의 밤공기는 그렇지 않아서 더 좋은지도... 그저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 손을 잡고 천천히 밤골목을 같이 산책하고픈 느낌... 그래서 이 밤에 뭘 자꾸 사부작사부작 하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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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어제 오후부터다, 텁텁하고 후줄근한 대기. 창을 열어놓아도 닫아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적으로 대기가 매우 건조하다는 안전안내문자는 매일 오는데, 이 동네의 어제 오후부터의 습도는 60%가 넘는다. 이렇게 전국을 하나로 퉁쳐서 보내는 성의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안전안내문자, 왜 보내는지 모르겠다. 안 보내느니만 못하다.

꿉꿉한 집안 공기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과일을 사러 나갔다왔다. 늘 다니는 길을 벗어나 조금 더 돌아가는 길로. 연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나도 마스크를 쓴지 1시간이 넘어가니 답답해져왔으니까... 등교개학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기온이 이렇게 올라가니 아이가 하루 종일 학교에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확실한 치료법이나 백신, 어느 것이라도 빨리 명확히 나오면 좋겠다. 

과일들을 사면서 채소도 사왔다. 돼지고기를 굽고 쌈채소를 준비하고, 도라지를 돼지기름에 볶고, 꽈리고추와 마늘로 향을 낸 기름에 콩나물을 볶아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 사 온 뽀얀 가래떡이 맛있어 보여 식사 후에 조금 먹으려고 했는데, 저녁식사와 사과만으로도 배가 꽉 차버렸다. 아쉽지만 내일 먹어야지. 사과를 자르는데 드라마 '화양연화' 3회가 나왔다. 오며가며 드문드문 보는 드라마다. 유지태는 나이가 드니 20대 때보다 더 멋있구나 하는 생각, 유지태의 캐릭터가 영화 '귀여운 여인'의 리처드 기어 캐릭터 같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이 참 마음을 끈다는 생각을 하며... 뻔한 불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고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음악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될 것 같다.

요즘 요일 개념이 많이 흐려지긴 했지만, 주말이 되면 미루어 둔 정리도 하게 되고 청소도 하고 싶어진다. 아무래도 일주일의 매듭을 잘 짓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오늘도 장 보고 들어온 후 채소들을 다듬어 냉장고에 넣고 반찬을 만들고 하다 보니 저절로 묵은 짐을 치우고 청소도 하게 되더라는...

몸을 많이 움직인 날이니 꿈 없는 단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다. 깊고 짧은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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